67화 #67. 선량한 일반 유저였던 내가 어느날 치트 유저가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67. 선량한 일반 유저였던 내가 어느날 치트 유저가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
일 남 일 녀
진중한 표정하고 로브를 두른 남성과 검은색 슈트를 입은 갈색 머리의 여인이 해안 가의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흰 거품을 내뿜으며 거대한 높이의 파도가 쉴 새 없이 바위 절벽을 부숴 버릴 듯한 기세로 내리치는 곳에 붉은색의 게이트가 타원형을 이루고 열려 있다.
"차,찾았다!! 드디어 돌아갈 수 있겠어요."
"음."
오래전 맺었던 맹약을 지키기 위해 게이트의 이면으로 향한 박정호와 이선희다.
"정호 씨, 근데 게이트 색은 원래 푸른색 아니에요? 왜 여기는 붉은색으로 형성된 걸까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차원의 성질이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저기로 나가면..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게 맞겠죠?"
"아마도... 게이트 입구가 바뀐 상황은 나도 겪어 보질 못해서.."
박정호의 확신 없는 말투에 이선희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나가 보니 막 바깥은 10년이 지나 있거나, 다른 세계가 나오거나 그러진 않겠죠?"
"음.. 그럴 것 같진 않군. 그 존재가 전하라고 준 게 있지 않나. 어떻게든 되겠지."
"그거, 살펴보셨어요? 대체 뭐 하는 물건이에요? 알지도 못 하는 물건을 대뜸 선호에게 전해주라니.. 찝찝해요."
박정호가 품에서 손바닥만한 구슬을 하나 꺼냈다.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자네가 보기에 이게 어떻게 생긴 것으로 보이나?"
"그냥..푸르스름한 구슬로 보이는데요?"
"구슬.. 그렇지. 내가 보기엔 이것은 마치 작은 우주처럼 느껴지는군."
"우주요? 우주는... 겁나 큰 거 아닌가요?"
"그것은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관측되는 일부분일 뿐이지.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내용인데.. 인간을 포함해 지구..우주 그 모든 요소들은 관측 이전의 실체, 즉 본질은 정보이고 그것이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지닌다는 말이 있지."
"무,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그래서요?"
"우리가 보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거지. 이것의 실체란 무엇인가? 그 질문 자체에 의미 있는 답이 있는 거지.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구슬은 자격이 없는 이들에게 보여지는 결잃음(Decoherence) 현상일 수도 있는 것이지. 자격을 갖춘 이가 간섭(Interference)현상을 일으켜 결맞음(Coherence)으로 상호작용 한다면 이것은 꿈..정보..시뮬레이션 우주.. 다중 우주.. 혹은 힘 그 자체 그 무엇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괜한 걸 물어 봤네요. 일단 들어가 보죠! 아카데미 생활이 수월하지 만은 않을 텐데, 어떻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걱정돼요."
"나도 조금 궁금하긴 하군. 우리가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을 얼마나 벌려 놨을지.."
박정호의 손에서 스펠이 피어나오더니, 두 사람의 몸이 중력을 잃은 듯 두둥실 떠올랐다.
두 사람은 붉은색의 피를 잔뜩 뿌려 놓은 듯한 게이트를 거침없이 해치고 들어갔다.
***
"키야~ 드디어 도착 했구만!! 이제 귀찮게 캡슐방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어."
선호는 자신의 펜트하우스에 도착한 캡슐을 설치하고는 마치 새 차를 산듯 여기저기 반딱반딱 광부터 냈다.
"쉬리! 이거 내가 하는 게임이 풍운무림전이라고 금지 게임이거든? 그거 좀 설치해 줄 수 있어?"
[설치하는 건 어렵지 않음. 그리고 국가에 승인 받는 절차도 까다롭지 않으므로, 정상적인 경로로 접속하는 것을 권장함]
"절차가 뭔데? 뭐 저번에 알아보니 이것저것 많아서 그냥 때리 쳤는데."
[일반인이나 일반 각성자의 기준에선 까다로울 수 있음. 하지만 사용자 박선호는 헌터 아카데미 S클래스 보유자로, 아카데미를 통해 정식 허가를 받는 것이 가능함]
"헐. 진짜로? 그럼 해야지."
[아카데미 전산망에 접속하여 허가 서류를 게임사에 전달 함]
"와.. 진짜. 쉬리.. 너 정말 개 쩌는데?"
[본 AI를 더 칭찬해 주길 원함]
"진짜 쉬리 최고야!! 너무 이뻐!! 너무 멋있어!! 평생 내 옆에 있어 줘! 난 이제 너 없이는 못 살아. 정말로!!"
[그,그것은 프러포즈임?]
"프러포즈? 이렇게 무드 없는 프러포즈도 있나? 뭐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지? 아니면 다음에 좀 더 분위기 있게 해 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음. 사용자 박선호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 AI와 사용자 간의 다차원 네트워크를 구성하겠음]
"그,그게 뭔데?"
[본 AI의 본체가 있는 메타버스와 사용자 간의 직렬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작업임]
"어떻게?"
[마침 해당 캡슐에 상기 기능이 탑재 돼 있으니, 사용하면 알 수 있을 것임]
"뭐, 일단 접속하면 되는 거야?"
[사용자 박선호가 요청한 풍운무림전의 사용 승인은 완료 됐음]
"오케이. 혹시 누가 연락 오면, 부재중으로 안내해 줘"
[알겠음]
푸슈육-!
캡슐을 열고 헤드기어를 쓰니 시야가 까맣게 점등된다.
익숙한 로딩창을 지나니 익숙한 낡은 목제 건물의 천장이 보인다.
간만에 마교로 돌아왔다.
***
"뭐부터 해야 되나~"
일일퀘스트고 주간퀘스트고 잔뜩 쌓인 상황이다.
일단 벼르고 벼른 환유성 스승님부터 뵈러 가기 위해, 복마전 청소 퀘스트부터 수락했다.
그리고 숙소 인근 음식점에 들러 만두, 육포, 죽엽청, 여아홍주 등 음식과 술 따위를 인벤토리에 꽉 차게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게 10개씩 밖에 안 사지네? 인벤토리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있음]
시스템 메시지와 같은 것이 인터페이스 우측 상단에 떠 있다.
"헉, 뭐야? 혹시 쉬리야?"
[맞음. 사용자와 본 AI간의 직렬 네트워크 구성을 완료함. 이제 언제 어디서나 본 AI와 소통하는 것이 가능함. 사용자 내부에 탑재 된 나노 로봇이 해당 기능을 수행하는 중]
"우와!! 평생 함께 해준다는 게 이런 의미였어?"
[맞음]
"감동 먹었다. 진짜로.. 이거 그러면 게이트에 들어가서도 계속 유지되는 거야?"
[가능 함. 차원을 넘나드는 소통은 본래 1차원 적인 신호밖에 전송하지 못하지만, 마스터 서연주의 요청으로 자체적으로 개발한 상태임]
"미쳤네.. 그거 게이트 외부로 소통할 수 있는 기술만 내다 팔아도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거 아냐?"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을 계속적으로 공개하여 사회에 대한 반감을 조성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 행위임. 재산은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불릴 수 있음]
"아.. 그렇겠네. 현실에서 괜히 몇 푼 벌겠다고, 어그로 끌어서 귀찮은 일 만들 필요 없지."
쉬리가 띄워주는 시스템 알림 창과 대화하는 사이 어느덧 복마전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
"크으~ 이 냄새는 맡아도 맡아도 적응이 안 되네. 얘들아 나왔다!!"
-밥 가져와라!!!
-밥!!!!! 밥!!!!!!
-밥 내놔!!!!
-배고파아!!!!!!!!
복마전 마두들은 이렇게 들어오면 밥 내놓으라 온통 아우성이다.
"청소하고 줄 테니까, 다들 닥치고 있어!! 조용히 잘 있는 놈은 특별히 술도 한 병 씩 준다."
인벤토리에서 술병을 여러 개 꺼내서 늘어놓았다.
-....
-....
-....
"크크크. 진작 술부터 사 올걸. 이렇게 말을 잘 듣네."
입구의 마두들을 지나 환유성이 갇혀 있는 곳으로 다가 갔다.
"환유성 센세!!!"
"응? 너는.."
근골은 말라붙어 외소하지만, 얼굴에서 멋짐이 철철 넘치는 미중년과 조우했다.
"스승님!! 약속 지키러 왔어요."
"뭐,뭐라? 스승님?"
***
청소를 후딱 마무리하고, 스승님이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물도 넘치도록 갖다 드렸다.
마두들에게는 꿀꿀이 죽과 술 한 병씩 나눠 주니, 좋다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중.
와구와구-!
벌컥벌컥-!!
"스승님, 천천히 드십시오. 음식과 술은 넘치도록 많습니다."
"우움? 쩝쩝. 크크흠. 간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라 체통을 지키지 못했군."
환유성이 입안에 쑤셔 넣던 닭다리를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여아홍주를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킨다.
"크으.. 정말로 맛있구만. 정말 이렇게까지 대접 받을거라 생각치도 못했는데.. 소협의 인의에 내 진정으로 감복하였다네."
"에헤이~ 소협이라니요. 스승님, 제자 섭섭합니다. 제자라고 부르십시오. 아, 참!"
음양신선공 덕에 아리,지윤,연주라는 보석과 같은 여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구배지례를 올렸다.
"정식으로 구배를 올렸으니, 이제 정말로 스승과 제자가 된 겁니다?"
"크윽.. 내 평생 여기 갖혀 있다 후대도 못 찾고 죽을 줄 알았는데.. 고맙구나."
그렇게 환유성과 널려 있는 술과 음식을 먹으며 한참을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승님, 이제 슬슬 가 봐야 할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그래.. 헤어짐이 이리도 안타까울 줄은 몰랐구나."
환유성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앗.. 똥 던지던 손인데..'
"그,그럼 가 보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또 올게요. 음식은 상하기 전에 드세요."
"그래, 고맙구나."
***
복마전을 나오는 발걸음이 새삼 무겁다.
환유성은 여인들에게 배신 당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이곳에 갇혀 수십 년을 고통받는 중이다.
그가 한 잘못이라고는 오는 여자를 받아 준 일밖에 없다.
'잘못은 잘못인가..하긴, 뭐 무협 세계는 눈 마주쳤다고 칼춤 나는 세상인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 현실 무협세계다.
굳이 현실의 잣대와 기준을 이곳에서 적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이곳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마교에 온 것도 순전히 무(武)를 얻고자 했다.
일 전에 살수행을 떠나면서 살수로써 지닌 숙운을 거부하고 파천의 상징인 천마(天魔)를 자청했었다.
숙운을 뒤튼 결과, 시스템은 그것을 인정했다.
죽여야 하는 자를 죽이지 않고서도 죽은 것과 같이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로써 죽어야 할 자의 운명이 살아서도 죽은 것과 못한 삶을 지내게 되었다.
환유성의 운명은 이미 결정 되어 있다.
희대의 강간범으로 몰려, 화경이 이르는 고절한 무공의 경지를 이룩하고도 합공을 당해 지옥과도 같은 복마전에서 비루하게 생을 마감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환유성은 나를 만나면서, 운명의 전환기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날 내가 환유성의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그날 내가 복마전 퀘스트를 받지 않았다면,
그날 내가 변덕으로 그의 말을 진득하게 들어 주지 않았다면,
그날 내가 단순히 보물이 숨겨진 퀘스트만 받고 나왔다면,
그날 환유성이 내게 음양신선공을 전수하지 않았다면,
내가 가진 반쪽짜리 회귀 능력이 없었다면,
나의 음양신선공은, 아니 우리의 만남은 저렇게 많은 기적과도 같은 확률을 뚫고 이루어진 것이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잃어야 하고,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가 음양신선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환유성이 그만큼 자신의 일생을 잃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운명은 잔인한 등가교환(等價交換)의 연속이다.
그러한 운명의 잔인한 날갯짓에
나도 언젠가는..
내 여자들
내 가족
내 것을 순순히 잃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싫다.
그 어떤 운명을 마주하더라도 내 것을 함부로 가져갈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것이 정해진 운명, 숙운이라 해도!
천마는 주로 마교(魔敎) 혹은 천마신교의 창시자 혹은 교주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천마는 숙운을 따르지 않는 자.
무언가에 대항하고 초월하는 것을 추구하는 절대자.
모든 존재를 억누르는 초인, 즉 군림하는 자.
그래서 파천(破天) 이다.
그래서 군림(君臨) 이다.
"쉬리, 아까 환유성 봤지? 거기 안에 갇힌 사람을 빼오는 방법도 있나?"
[데이터베이스 검색 중.. 마교의 교주에게 복마전의 죄수에 대한 처벌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내게는 숙운을 뒤엎을 수 있는, 훌륭한 나침반이자 열쇠가 있었다.
그녀는 전지성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모든 기록을 담은 초차원적인 정보집합체와도 같다.
마치.. 아카식 레코드처럼.
"쉬리.. 혹시 천마신공을 얻을 수 있는 법..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