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56. 이심전심(以心傳心)
#56. 이심전심(以心傳心)
***
팅!!
동전이 튕겨 올라 갔다.
탁!
동전을 잡아 챈 손을 조금씩 조금씩 감질나게 폈다.
"빨리 펴봐요!"
서연주가 많이 궁금했는지 내 손가락을 잡고 강제로 펴버렸다.
동전은 뒷면.
펼친 순간 서연주가 고른 앞면이 나온다면 바로바로 돌렸다.
무려 6번이나 연속으로 앞이 나온 다음 겨우 뒤가 나왔다.
그녀 스스로 운이 좋다고 하더니 빈말은 아닌가 보다.
"뒷면이네요."
"으…으!!!"
서연주는 덩치에 비해 앙증맞은 손과 발을 가졌다.
다리는 긴 데 반해서, 발목이 얇고 발이 작으니 상당히 라인이 예쁘다.
저렇게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하는 모습도 작은 손 때문에 뭔가 귀엽다.
앙증맞은 주먹에 먼지 나도록 맞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또 부탁해야겠네요."
"하세요…."
계속 부탁을 들어 주는 식으로 지지부진 끄는 것보단 빡센 부탁을 한 다음, 빨리 소원을 받아서 이 전쟁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서연주가 무조건 거절할 만한 것이 뭐 있을까.
"현재 연주 씨한테 제일 소중한 것. 저한테 주실 수 있나요?"
이 정도면 적당하다.
처음엔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게 뭘까 고민하는 듯 갸우뚱하던 서연주는 이내 뭔가 생각 났는지, 얼굴을 잔뜩 붉히기 시작했다.
'뭐지..?'
"뭐예요?"
"아…, 그…, 이건 주면 안 되는데…. 거,거절 할게요! 이건 절대로 줄 수 없어욕!"
'누가 잡아먹나, 혀까지 씹으면서 거절하네.'
"반응을 보니까, 뭔지 궁금하네요? 나중에 소원이 생기면 그거 달라고 할 겁니다."
"으…. 다,다음 내기로 가요!"
"연주 씨가 고를 차례네요."
잠시 고민하던 서연주는 괜찮은 것이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수도 이름 맞추기! 그거로 할게요."
'쩝.. 자신 없는데.'
아까의 암산 내기와 비슷하게 스크린에 나라 이름이 뜨면, 버튼을 먼저 누르고 답을 말하는 형식이었다.
"쉬리, 문제 띄워줘~"
『중국』
삑-!
'뭐지? 겁나 쉽누. 개꽁승이네. 크크크큭. 쉬리 나이스~'
"정답! 상하이."
당연히 0.05초 만에 버튼을 누른 나의 승리다.
[틀렸습니다]
"정답! 베이징!!!! 야호!!!!!!"
'아 십라.. 아마따,아마따. 상하이가 아니라 베이징이었지.'
시간을 돌렸다.
"쉬리, 문제 띄워줘~"
『중국』
삑-!
0.05초 만에 다시 버튼을 눌렀다.
"정답! 베이징!"
서연주가 버튼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아니 쉬리야!! 문제를 그렇게 쉬운 걸 내면 어떻게 해!! 지금 내기하는 건데에~~!!"
[출제 난이도에 대한 기준은 없었습니다. 현재 나라의 형태를 유지하는 107개 나라 중, 무작위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래~ 잘한다. 쉬리!!'
"흐으…. 부탁 뭔데요오…."
'이번에 무조건 거부할 만한 거로 거절 3스택으로 만들고, 다음 판부터 부탁 들어 줄 만한 것으로 뽕 좀 뽑은 다음에 소원 받아야겠다.'
마침 내일부터 주말이다.
2박 3일의 시간이 있는데 급하게 갈 이유가 없다.
덕질을 한다는 것은 탈덕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매력적인 아가씨를 철저히 조교 해서 완전히 내 사람,내 여자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음습한 상상으로 심연의 혼돈이 눈에 묻어 나온 탓일까, 눈이 마주친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흠.. 뭘로 할까요? 제일 소중한 걸 안 주셨으니, 그다음 소중한 거로 받아 볼까요?"
서연주의 눈이 고민으로 가득 찼다.
"으…, 아무리 그래도 쉬리는 줄 수 없어요. 거절할게요.."
'뭐? 쉬리가 제일 소중한 거 아니었나? 그럼 대체 첫 번째는 얼마나 대단한 보물이길래?'
솔직히 놀랐다.
당연히 서연주에게 제일 소중한 것, 쉬리일 거로 생각했다.
근데 두 번째였다 말이지?
뭐 여튼, 거절 3스택.
목적은 달성했다.
이제 살살 갖고 놀 타이밍이다.
거절하기는 모호하고, 그렇다고 들어 주기에도 애매한 그런 것들을 잘 선택해야 한다.
"하아…. 연달아 패배하니 뭔가 의욕이 안 사네요. 선호 씨 상대하다 보니 뭔가 벽 같은 게 느껴진다 해야 하나, 도저히 이길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어요.. 지금 제 직감이 계속 선호 씨와 승부 하면 안 된다고 비명을 지르는 중이예요."
'감이 좋은 여자다. 슬슬 티 안 나게 져 줘야 되겠군.'
원래 승부는 펠레 스코어가 제일 재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번엔 내가 내기를 정할 차례다.
가위바위보를 골라서 순순히 져 줬다.
한판 이기니 좋다고 방방 뛰는데, 미드가 펄쩍펄쩍 널뛰기하는 장면이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저 그럼 부탁할게요. 초상권 주세욥~"
"거,거절입니다."
마치 내놓으라는 것처럼 앙증맞은 두 손을 모아 내미는데, '당장 가져가!!'라고 외치며 쿨하게 줄 뻔했다.
크.. 성아리에 이어 신지윤, 그리고 서연주까지 각자마다 각양각색의 매력이 톡톡 튄다.
정말 넷이 어딘가 다닌다면, 심지어 지옥을 가더라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판 더 져 줘야 펠레 스코어가 된다.
내가 승부를 고를 차례.
어차피 지는 게 목적이니, 조절이 가능한 손바닥 씨름으로 결정했다.
"손바닥 씨름 아세요?"
"그게 뭐예요?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요.."
"한 발자국 거리에서 마주 본 채로 손바닥으로 상대 손바닥만 칠 수 있습니다. 상대방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면 이기는 거예요. 간단하죠?"
'적당히 흘리다가 어어! 하면서 뒤로 자빠지면 자연스럽게 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아니지, 앞으로 자빠지면...? '
크윽! 박선호.. 반성하자! 이런 기회를 놓칠 뻔하다니!
나중에 혼자만의 시간에 소중이를 잡고 반성하기로 했다.
남자의 진심 반성 자세다.
"쉽네요. 해볼까요? 당연히 마력은 안 쓰는 거죠?"
"그럼요."
S클래스 짬바가 있지, 마력을 쓰던 안 쓰던 서연주에게 질 일은 없다.
다만 이 판은 자연스레 져 주는 게 포인트.
서연주와 두 손을 앞으로 내민 채 마주 보고 섰다.
"자, 그럼. 시작!"
내가 시작 신호를 주기 무섭게 서연주가 공격해 왔다.
타격 지점에 닿기 일보 직전에 살짝 뒤로 손을 빼니 첫 턴에 서연주가 앞으로 자빠질 뻔했다.
"꺄~! 피하는 게 어딨어요!"
"피하면 안 된다고 한 적 있었나요? 단순한 힘 싸움이면 연주 씨한테 오히려 불리 할 텐데."
서연주가 입술을 굳게 다문다.
정말로 이기고 싶나보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팔을 뻗어 온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정확하게 손뼉끼리 타격해서 서연주가 이번엔 뒤로 자빠질 뻔했다.
"으…, 으읏~~~!!!"
텁!
2초만 놔뒀어도 자기 혼자 자빠졌을 것이다.
손목을 잡아 한번 봐줬다.
"뭐,뭐예요? 봐주는 거예요?"
"네. 처음 하신다고 하니 목숨 하나 드렸습니다. 이제 안 봐줘요."
"후훗. 고마워요~"
슬슬 져 줄 각이 섰다.
원래 이렇게 건방지게 한번 봐준 놈이 꼭 지게 돼 있는 것이 게임의 순리다.
이번엔 내가 먼저 공격했는데, 또 맞부딪혀 오길래 슬쩍 옆으로 피했다.
그런데 그녀도 훼이크였는지 부딪힐 생각이 없었는데 손뼉이 부딪혀 버리고 말았다.
"어, 으아앗!!"
서연주가 뒤로 넘어 가려고 한다.
'엇? 내가 져야 되는데?'
고민하는 사이 서연주가 파닥거리면서 허리가 넘어가는데, 이미 허리가 반 이상 넘어갔다.
완벽한 철판교를 구사하고 있는 그녀다.
쩝 어쩔 수 없나.
"이익!!"
아무래도 가슴에 달고 있는 무거운 것 때문에 이런 중심 잡기 게임에 많이 약한 듯하다.
갑자기 허리가 앞으로 쑥 넘어오더니, 이번엔 앞으로 넘어 질랑말랑 허우적 댄다.
결국, 내 쪽으로 몸이 완전 넘어왔다.
'져주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겨버렸네..'
가슴에 뭉개지는 그녀의 가슴의 감촉을 느끼면서 허리를 감싸고 그녀를 세워주었다.
"후훗, 제가 이겼네요?"
서연주가 뜬금없이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한다.
"네? 먼저 넘어지셨잖아요."
서연주가 안겨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발을 가르킨다.
"제 발, 안 떨어졌어요."
"헐."
그랬다.
그녀는 발을 떼지 않고 내게 온전히 기댔을 뿐이고, 나는 그걸 이겼다고 착각하고 발을 떼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몸 터치하면 진다는 조건을 얘기 안 했네.
'어차피 져 주려고 한 판인데, 잘됐네.'
그녀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 같다.
나는 거기에 당해 버린 거고, 매우 자연스러운 패배다.
그녀의 부탁은 동일하게 초상권 요구였고, 거부했다.
이제 거절 스택은 3:2 상황이다.
이번 승부는 서연주가 선택할 차례다.
뭐 적당히 퀴즈 맞추는 걸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서연주가 계속해서 밀기를 고수할 줄 알았는데, 궁지에 몰리니 당기기 시작했다.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초상권을 얻고 말겠다는 거대한 기세가 느껴졌다.
소원이 걸린 마지막 내기에서 살짝 지릴 뻔했다.
아니, 사실 조금 지렸다..
***
초상권 계약 정도는 가볍게 따낼 것이라는 예측은 물거품이 됐다.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입에 웃음기가 보이는 것이 아마도 따로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레이디 퍼스트. 뭐든 내기로 할 만한 것을 골라보세요.
자신 있는 암산 대결을 권했다가 참패했다.
그는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고, 성적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확실히 몸을 쓰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리도 좋은 것일까?
다섯자리 곱하기 네자리 곱셈의 정답 따위 외우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한다.
나도 1초면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기도하고.
하지만 그도 당연하다는 듯이 정답을 말했다.
의외였다.
다음 승부는 동전 앞뒤 고르기.
운이 없게도 져 버렸다.
그가 제일 소중한 것을 요구했다.
가장 소중한 것?
지금 머릿속에 떠 오르는 것은 눈앞에 있는 자신의 최애캐의 자료를 백업 해 둔 100TB 외장 하드였다.
그… 그런 거 줄 수 있을 리 없잖아…!!
하아…. 또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
이번엔 내가 문제를 고를 차례.
수도 맞추기 대결에서 쉬리가 중국이라는 쉬운 문제를 냈다.
필사적으로 버튼을 갈겨댔지만, 그의 반응 속도를 이기는 것은 무리였다.
흐아앙….
브루나이의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
스리랑카의 수도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울라룸푸르
등등!!
이렇게 어려운 걸 많이 알고 있는데, 문제로 중국이 출제 돼 버리는 바람에 져 버렸다.
쉬리에게 따져 봤지만 소용없었다.
무작위로 냈다는 데 어쩔 수 없지..
그는 두 번째로 소중한 것을 요구했는데, 쉬리가 떠 올랐다.
쉬리는 주고받고 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오직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과 성별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 외에는 그 어떤 코드도 넣지 않았다.
덕분에 가끔 엉뚱한 판단을 내릴 때가 있고, 딱딱하지 않게 됐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내 모든 발명품 중, 그녀는 최고의 결실이다.
나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의 내용은 잘 믿지 않는다.
미신, 종교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내 직감은 믿는다.
직감이 그와 절대로 맞서지 말라고 계속해서 경고를 주는 중인데도, 강행한 결과 세 번의 패배가 찾아왔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로 져 본 적은 거의 없던 일이라 조금 분한 느낌이다.
그가 손바닥 씨름을 제안 했다.
처음에 허무하게 질 뻔한 것을 그가 한번 봐줬다.
헤헤, 역시 아닌 척하면서 마음이 너무 착해.
게임을 이어서 진행하는데, 또다시 위기가 왔다.
어, 으아앗!!
이익!!
겨우겨우 무게중심을 앞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는데, 이 평생에 도움 안 되는 살덩어리들 때문에 완전 무너졌다.
이렇게 된 이상 그의 품에 안기기라도 해야겠어.
처음 집에 도착해서 그가 덕질 모드 버튼을 누르는 것을 말리려다 잠시 그의 품에 안겼었다.
그때 느꼈던 그의 체취, 단단한 근육, 가까이서 감미롭게 들리는 저음의 목소리, 손과 허리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그의 체온.
그러다 우연히 그가 나를 안은 채 넘어져 가슴이 그의 얼굴에 파묻혔을 때에는 뭔가 가슴에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이런 걸 모성애라고 표현해야 될까, 그를 꼬옥 껴안고 가슴에서 차오르는 무언가를 배불리 먹게 해주고 싶었다.
그 모든 상황과 망상들이 나를 흥분 시키기 시작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가랑이에는 수전이 터진 것같이 뭔가 자꾸 흐른다.
마침 승부의 종류는 내가 고를 차례.
사실 내기를 무조건 이겨서 소원으로 초상권을 받겠다는 집착은 희미해졌다.
그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의 모든 것을 탐하고 싶다.
그에게 내 몸을 온전히 맡기고 이런저런 것을 당하고 싶다.
지금 느끼는 충동을 해소하기에 적당한 것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예전에 호기심에 주문했던, 성인용 커플 젠가..!
무려 49금이라고 적혀있길래, 대체 무슨 내용이 들었나 궁금했다.
대충 살펴 보고 창고에 넣어 두고 그간 잊고 있었는데, 그 중 몇 가지는 그와 꼭 해 보고 싶었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흥분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갈아입은 팬티가 점점 따듯해지기 시작한다.
으으, 생리대라도 껴놔야 하나, 잠시 화장실 다녀와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