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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빌런은 범죄현장에 다시 돌아온다.


장사를 시작한 지 슬슬 한 달이 되어가는 시기. 이제 한 달을 채우기는 삼일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루 수입의 상승곡선은 점점 아래로 기울기 시작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인기몰이를 크게 하고 난 이후로 단순히 이 특별한 장사와 도심에서의 입소문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귀족들이나 잘사는 집안은 다들 집에서 뜨거운 물을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을 테고, 장사층이 평민인 이상 가격이 비쌀 수도 없었을뿐더러 매일 찾아와서 목욕할 정도의 여유를 가진 평민들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도시까지 입소문을 타고 갈 방법도 없었고, 결국 하루에 3골드씩 벌던 수입도 조금 줄어들어 2골드 근처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삼 일 더 장사를 한다고 친다면 한 달 수익은 많아봐야 70골드. 한 달분 이자를 납부하면 약 50골드 정도 남게 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수입이 아니냐고 할 법 하지만 이 돈을 전부 이자를 갚는데에 사용을 한다면 이 수익을 유지한다 쳐도 20개월. 내 욕심을 채우기에는 훨씬 부족한 금액이었다.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서라면 뭐가 있을까. 펜대로 종이에 끄적끄적 계산해가며 머리를 굴리다가 문에 걸어놓은 작은 종이 짤랑짤랑 울리자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서 오세요 손님.” “어, 안... 안녕.” “누구... 아?” 카운터 위에 15실버를 짤랑 내려놓는 손님. 이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 그 괴팍녀.” “괴, 괴팍녀라니...!” 나에게 전생체험을 한 번 더 시켜 주려던 그 용병녀가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손님은 우리 가게에서 받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그때의 분노는 다 잊었다. 말끔하게 잊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미워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세계에서나 꼰대는 존재하고 빌런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꼰대빌런.’ “들여보내 주지 않을래? 그때는 조금 실수를 했달까. 그 뭐냐. 알잖아? 용병들은 원래 조금 괴팍한 거.” “네, 네. 알죠. 그러니까 받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사람이 실수를 좀 할 수 있지 않겠어?” “아, 네. 실수할 수 있죠. 그래서 제가 죽을 뻔했잖아요?” ‘양심도 없지 그 지랄을 하고 가놓고 또 얼굴을 들이밀 생각을 했네.’ 내 강경한 태도에 그녀는 그날의 모습 답지 않게 내 앞에서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 진짜 미안 해. 내가 그때는 술에 취해서 그만... 여기 들어오기 전부터 몇 잔 걸치고 와서 그랬어.” 그녀의 말대로 용병들은 성격이 괴팍한 사람들이 많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고개까지 숙여가며 사과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솔직히 놀랍기는 했지만 사람을 죽일 뻔했으니 이 정도의 사과는 당연한 것 아닌가. 여자의 자존심을 굽히고 숙이는 것은 칭찬할 만 했지만 내 처지에서는 이 사과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나와야 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저기. 일단 그 사례금을 내기도 했고. 가게는 사용하게 해주지 않겠어?” 그 낯짝을 다시 들고 올 만큼 목욕탕의 시설은 마음에 들었다 이건가? ‘뭐, 그 정도의 평가는 고맙기는 하지만.’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례금만 달랑 내놓고 도망간 것도 그렇고. 자존심을 벅벅 세워가며 말을 끄는 것도 그렇고. 이전의 나 같았다면 너 같은 여자 손님은 넘치니 너 하나쯤 필요 없어. 라고 말을 했겠지만 수입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 돌아갈까?” 카운터 위에 올려 둔 돈을 다시 손으로 집으려고 하자 그녀의 손목을 낚아챈다. “일단 오늘은 들어가요. 15번이예요.” 블랙리스트에 올리려고 했었지만, 이 손님 하나라도 붙잡고 싶은 것이 내 입장이었다. ‘그래, 다시 올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면 앞으로 계속 올 손님이니까.’ 본인 입으로 술 때문에 실수했다고 하니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괜찮겠지. 탈의실로 들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텔라가 튀어나왔다. “사장님, 방금 그 손님...” “알아요. 다 알아요. 알고 들여보낸거예요.” “괜찮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믿어보죠 뭐. 자기 입으로 실수라고 하니까.” “솔직히 저는 마음에 안 드는데요.” “솔직히 저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아직 장사 초반이니까 손님 하나라도 더 잡고 싶어서요.” 아무래도 나를 해하려고 했던 여자였기에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강경하게 자기 생각을 어필하는 스텔라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내 말은 다 맞다며 따라주었겠지만 불만이 많다는 듯 따지기 시작했지만 내 태도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알았어요, 뭐 사장님의 선택이니까 믿어보죠.” “믿어 줘서 고마워요 스텔라.” 너스레를 떨듯한 번 웃어 주자 그녀는 가까이 다가와 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음 휴일에 두고 봐. 내 말에 꼼짝도 하지 못하게 잔뜩 짜낼 테니까.” 본 모습을 슬쩍 드러내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는 홀연히 돌아가 사라진다. 그간 또 바뀌었던 모습이라면 바로 이것일까. 그녀는 내 앞에서, 가게에서는 언제나 내가 알던 그 모범생 스텔라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나와 따로 있을 때나 일주일에 한 번 맞이하는 휴일에는 본 모습으로 돌아가곤 했다. 뭐, 자기에게 정기를 바치지 않는다면 주변에 사는 남자들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협박을 했었던가. 사실 씨알도 안 먹히는 협박이긴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즐기고 있으니 귀엽게 넘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는지 별 소동 없이 용병이 돌아왔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오래도 했네. 카운터에 자기가 받았던 키를 돌려주고선 곧바로 떠나지 않고 내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요?” 내 자존심이 밀리는 것 같았지만 한참을 앞에 서 있는 것이 답답해서 먼저 입을 열었더니 카운터를 툭툭 치면서 내 눈을 바라본다. “그, 그으... 뭐냐. 미안 해서 그런데 말이야. 사실... 그 저기, 사례비도 너무 조금 준 것 같기도하고... 그, 뭐냐. 뭔가 보상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남자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래서 뭐요, 용건이 뭔데요.” “그으... 남자도 뭘 먹긴 먹을 거아냐? 배도... 많이 고플테고, 호, 혼자 밥 먹으면 이상해 보이기도하고, 옆에... 그, 뭐냐... 든든한 여자 있으면 남자도 좋지?” 사람이랑 대화를 안 해봤나? 빙빙 돌기만 하는 대화가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카운터를 쿵 내리쳤다. “용건이요 용건. 그래서 뭐요?” “그, 그으... 친구가 이럴 때에는 밥이라도 대접하라고 말을 해 줘서.” “그래서요?” “저기, 그러니까... 사죄하는 의미로 나랑 바... 밥 한 끼 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고개를 푹 숙여 눈길을 피해 버린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원래 이런 여자인가? 순식간에 바뀐 그녀의 캐릭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면, 이게 본래 모습인가? 세상 그 누구보다 찐따 같은 여자의 모습. 마치 남중 남고 군대 공대를 거친 쑥맥마냥 우물쭈물거리는 찐따의 모습에 한심하면서도 솔직히 외모가 조금 받쳐주는 여자가 이런 말을 하니 생각보다 귀엽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휴, 세상 찐따가 따로 없네요. 그 성격으로 용병 일은 어떻게 해요?” “그, 그게... 용병에는... 그, 저기... 남자 용병은 없으니까...” “어휴, 대화를 계속하려니까 답답해서 못 참겠네.” “그, 그래...?” “방금 왔을 때는 그래도 말 좀 하더니 지금은 왜 그래요?” “그게... 데이, 데이트 신청하는 거는 처음이라서...” 데이트? 오호라, 그러니까 지금, 이건 사죄로 밥을 사겠다는 말 속에 흑심은 사실 남자랑 어떻게 한 번 데이트라도 해 보겠다 이거였구만? “네?”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 그녀에게 되묻자. 그녀는 꼼질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힘겹게 눈을 마주 봤다. 동공이 잔뜩 좌우로 흔들리는채로. “그, 그게 아니라.. 응, 사례요. 사례를 하고 싶은거예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기는 할까? 데이트라고 자기 속내를 내비쳤다가 내가 제대로 못 들은 척을 하니 은근슬쩍 단어를 바꿔가며 도망치고 있었다. 동정 쑥맥을 좋아하는 누님의 마음이 이런 걸까. “푸핫, 그래요? 아. 뭐 그렇죠. 하긴, 저는 죽을 뻔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렇죠?” “으, 응... 그렇지...요...” 막상 남자 앞에 서니 소심해지는 그녀의 모습이 덩치에 안 맞게 생각보다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큭큭 소리내어 웃어 버렸다. “흐음, 뭐 좋아요. 그럼 오늘 어때요? 내일 장사 쉬어서 오늘 밤은 시간 많거든요.” “저, 정말이야요?” “네, 정말이야요.” 놀라서 입도 꼬였는지 그 한마디 대답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따라 하며 놀렸는데도 화는커녕 입가에 슬쩍 미소까지 짓는 모습을 보니 부끄럽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럼 오늘 장사 끝나고 찾아올래요? 그쪽이 사는 거 맞죠?” “네,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10시에 끝나니까 잊지 말고 오세요.” “네! 늦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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