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사냥을 결심하다
“지...지금...저...저놈이...”
가슴에서 치솟는 분기에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그러자 모리슨은 주먹을 쥐고 식탁을 내리쳤고,
지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흐흑, 네. 지금 저놈이 우리 아들의 흉내를...”
“어떻게 그럴 수가-!!”
그렇다.
지금 밖에서 돌연변이가 이쪽을 도발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들 아들의 목소리를 훔쳐서.
‘아, 이건 진짜 아닌데? 선 넘었는데?’
최대한 모른 척하려고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에서 최대한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나가 부탁했을 때도 나는 거절했다.
그런데 실제로 밖에서 들려오는 간악한 목소리를 들으니 분기가 치솟는 것을 억누르기 힘들 지경이었다.
“지...지금까지 저런 식으로 사람들을 꾀어내서 해친 거군요?”
“...네. 크-흑-. 이곳에 남은 사람들이 각별하게 아끼는 이들의 목소리. 그걸 이용해서 차례로 우리를 유인했죠. 흐흑-.”
실제로 겪으니 훨씬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얼마나 영악하면 저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분노와 당혹감이 가득한 눈길로 실비아와 레이나를 바라봤다.
그녀들은 어느새 서로 부둥켜안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빠, 왜 오지 않는 거야? 내가 싫어진 거예요?”
“그...그만-!!! 그마아아아안-!!!!”
“으-흐흐흑~~! 핸슨-! 핸슨-!! 핸스으으은-!!”
고통과 분노에 휩싸여 소리치는 모리슨 부부.
그들의 외침은 이제 절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붙잡고 뜯으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갑자기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서로 억누르고 있었다.
온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남은 상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서로를 말리고 있었다.
“엄마, 나 너무 추워요. 얼른 안아주세요~.”
“흐-아아아악-!!! 제발-! 제발-!! 그만해-!! 이 악마야-!!!”
“흑, 흑, 아아악-!! 흐흐흑-! 흑, 흑-! 해...핸슨..꺼으흑-! 핸-스은-!!”
“이런 썅-!!”
[우다다닷-!!]
나도 모르게 발이 움직였다.
더는 이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자리를 박차고 나서자 뒤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흑, 훌쩍-. 지...지금 놈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어두운 밤에 혼자 밖으로 나가는 건 위험합니다-!! 훌쩍-.”
“알고 있어요-!!”
고통에 몸부림치던 지나는 내가 갑자기 뛰쳐나가자 다급하게 외쳤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도 나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도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감정이 북받쳐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지만,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같잖은 짓거리를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지!’
분기에 휩쓸려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격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저 빌어먹을 짓거리를 멈추게 하고 싶을 뿐.
나는 그대로 달려가서 화룡궁과 깎아 만든 화살 세 대를 챙겼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곳을 가늠하면서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지만...’
최근에 눈에 띄게 신체능력이 좋아졌다.
그건 오감도 마찬가지였다.
좋아진 시력은 멀리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밤.
몸을 숨기고 입을 털면서 같잖은 도발을 걸어대는 요물.
그 요물의 모습까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다.
[끼리릭-!!]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들린다!’
역겨운 연기를 하면서 모리슨 부부를 도발하는 괴물.
그 괴물의 목소리가 위치를 가늠하게 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풀었다.
[퉁-!!]
[쐐-애애애액-!!]
[챙-!!]
[투-둑-.]
“!!!”
뭐지?
뭔가 이질적인 소리가 났다.
마치 금속에 화살이 튕기는 듯한 소리.
손에 전해지는 감각도 시원스럽지가 않았다.
이럴 때는 뻔하다.
필시 화살이 적중하지 않은 것이리라.
나는 놀란 마음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엄마, 아빠. 나 죽이려는 거야? 왜 화살을 쏘는 거야?”
“!!!”
놈에게 적중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놈은 화살을 막아낸 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모리슨 부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샹-! 닥쳐-!’
[끼리리릭-!]
[핑-!!]
[쐐-애애애액-!!]
[끼리릭-!!]
[퉁-!!]
[쐐-애애애액-!!]
이번에는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연속해서 두 대의 화살을 날렸다.
[챙-!]
[퍽-!]
“끄이이익-!!!”
[쿵-!!]
[타다다다닥-!!]
마지막 화살을 날리자 비로소 손에 느낌이 왔다.
놈은 화살에 맞았는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것도 모자라서 어딘가에서 떨어졌는지 묵직한 낙하음까지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황급한 발소리.
그렇게 놈은 더러운 주둥아리를 닥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진기 씨가 쫓은 거예요?”
“네. 이 활로...”
놈을 쫓아내고 다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레이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힘없는 얼굴로 손에 들려있는 화룡궁을 내보였다.
“휴~~.”
“흐흑~. 가...감사합니다-.”
“으흐흑~. 핸슨-.”
무사히 돌아온 내 모습에 실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와 모리슨도 나의 안전을 확인한 후에 조금은 누그러진 표정으로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사냥법이 악질적이군.’
내 원수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만 쉬고 있어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란 존재였다.
그런데 그 원수가 찾아와서 저렇게 조롱한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또 사냥을 한다고?
아마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제 어쩐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모리슨 부부를 바라봤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우리가 이곳을 왜 떠나지 못했는지 아시겠죠?”
“...네. 저런 식으로 조롱하면 피하고 싶어도 피하기 힘들겠네요.”
모리슨 부부를 다독이며 그들의 눈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동자는 고통과 분노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든 눈빛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기필코 복수를 하겠다는 뜻이 확고해 보였다.
“정말 소름 끼치는 괴물이군요. 그런데 저런 괴물을 같이 처치하자고요?”
“...네. 그렇습니다.”
“음...”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레이나와 실비아의 기색을 살폈다.
그녀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최소한의 의지나 기백까지 꺾인 건 아닌 듯싶었다.
그저 모든 결정을 나에게 맡긴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지그시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와 처음 만났던 날에 그러면...”
“모리슨과 함께 녀석이 숨은 곳을 찾아내서 끝장을 볼 속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을 만난 것이었죠.”
“하~~~.”
한숨을 내쉬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우리가 만난 모리슨 부부는 살아남은 강자들이 아니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원수를 찾아 헤매던 일종의 ‘광전사’였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우리를 만나고서 잠시 계획을 멈췄던 것에 불과했다.
‘색욕권을 전수해준 것도 그걸 위해서였을까? 내가 가진 기술에 흥미를 보인 것도 복수를 위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호의가 전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감정을 자극해서 자신들의 복수를 돕게 할 생각이었던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묘한 불쾌감이 몸을 휘감았다.
이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복수극에 우리를 휘말리게 하려는 것이었을까?
“여보, 그만 하세요. 이건 우리 일입니다. 게다가 이분들마저 잘못되면 우리 색욕권은 정말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아요.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합시다.”
모리슨은 지나를 다독이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지나와 모리슨의 눈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복수심과 다른 온화한 감정도 같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
그 마음마저 느껴지자 나는 차마 매몰찬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잠시 상의를 해봐도 될까요?”
“네-에?! 예. 그럼요. 네...”
“그...그러세요.”
복수를 돕는 것에 난색을 보이던 나였다.
그런 내가 살짝 바뀐 분위기를 드러내자 모리슨 부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네.”
“그래요...”
나는 레이나와 실비아를 한쪽으로 불러냈다.
“상황은 알죠?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녀들에게 선택권을 넘기면서.
‘돕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녀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모리슨 부부를 돕고 싶었지만,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레이나와 실비아의 안전까지 걸린 문제니까.
“생각이 변한 건가요?”
“...네. 조금. 사실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하는 괴물을 봤으니...”
“결정은 두 사람이 하세요.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탓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부부를 돕고 싶다는 마음’과 ‘두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들이 여전히 내면에서 다투고 있었다.
나는 내심 그녀들이 거절해줬으면 하고 바랐다.
‘내가 나쁜 놈이 되기는 싫은 거지...’
그 양가적인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선택을 넘기는 꼴이었다.
그렇다.
나는 저들을 외면하고 편하게 지나칠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레이나와 실비아를 이끌고 위험한 곳에 발을 들이밀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결정한 방법이 협의.
협의라는 형태를 빌려서 선택과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혼자였을 때는 차라리 선택이 쉬웠는데. 죽어도 내 목숨으로 끝이니까.’
그랬다.
혼자였다면 과감하게 그들을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니까.
선택의 무게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면의 갈등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들이 말을 걸어왔다.
“돕고 싶은 거죠?”
“뭐, 가능하면...”
“그러면 도웁시다. 까짓 거-!”
“자칫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요?”
너무나 시원스럽게 말하는 두 사람.
나는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몰랐다면 모르지만...”
“그렇죠. 이런 사연이 있는 걸 알고 어떻게 지나치겠어요?”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사람들도 나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정의감이 넘치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정말 괜찮겠어요?”
“어차피 저런 괴물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는 게 내키지 않아요. 우리의 뒤를 노릴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차라리 모두 힘을 합쳐서 해치우는 게 속이 편할 것 같기도 해요.”
전략적으로 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뒤에서 덮칠 수도 있는 존재의 위협.
그걸 놔두고 떠나는 것도 현명한 것은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잠재적인 위협은 제거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 감염자나 돌연변이가 습격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불안함 속에서 또 다른 불안함까지 안고 돌아다니는 것은 심리적인 부분으로 봤을 때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더욱더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것은.
‘양심의 가책.’
그렇다.
간절히 도움을 요청한 모리슨 부부를 외면한다는.
그 가책을 안고 편히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뻔뻔함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당신들을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감사한 일이-!!”
“허-윽-! 이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두 사람은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 흘리는 눈물은 비통함에 젖은 눈물이 아니었다.
복수할 수 있다는 기쁨에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