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그들이 떠나지 않았던 이유 (2)
“독이라고요?”
“네.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독이요.”
실비아의 반문에 모리슨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이군요.”
“...그렇습니다. 어느새 우리의 마음속에 안일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죠.”
내 목소리에 모리슨은 앞에 놓은 유리잔을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허탈한 미소를 띠었다.
“왜 그렇지 않겠어요? 갑자기 세상이 망해버릴 듯이 터져버린 판데믹. 미쳐 날뛰는 감염자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 대처하는 도장 식구들. 처음에 두렵고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그 감정은 곧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 시작했죠.”
“...고양감.”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모리슨은 후회가 가득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리지만 않으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더 오만해졌죠. 그저 두서없이 달려드는 감염자는 우리의 적수가 아니었으니까요.”
잠시 말을 멈춘 모리슨은 지나를 바라봤다.
어느새 지나의 눈가에는 물이 가득 차오른 상태였다.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이.
“그렇게 세상이 무너지는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기까지 했죠. 색욕권의 실전성을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면서.”
여기까지 말을 늘어놓은 모리슨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잔을 들었다.
그리고 물을 몇 모금 넘기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이 혼란한 상황에도 익숙해지자 모두 방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다니면서 감염자를 사냥하는 사람도 나왔고,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수색을 떠나는 사람도 생겼죠.”
“거기에 먼 곳에 다른 혈육이 있는 이들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도장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약해진 거군요.”
“네. 그렇게 우리는 이 상황이 금방 끝날 걸로 믿으면서 우리의 힘을 과시하기에 바빴습니다. 자신을 경계하고 끊임없이 단련해야 하는 무도가로서의 마음을 잊어간 거죠.”
모리슨과 지나의 고백을 듣고 있자니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버지 왈.
전사로서 가장 큰 위협은 적도 아니요, 나약함도 아니요, 방심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이 정신을 가장 앞서서 지켜야 하는 무술가들이 그런 우를 범하다니.
‘아니, 아니지. 나도 눈앞의 개미에 겁을 먹지는 않으니까. 평범한 노른에 비해서 색욕권을 익힌 이들이 너무 강했던 거야. 그게 모리슨 말대로 독이 된 거고.’
옛말에 <부자는 먹어서 병. 가난한 자는 못 먹어서 병>이라고 했다.
색욕권을 익힌 사람들은 지나치게 강했던 것이다.
감염자에게 큰 위협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이제 본론에 근접했다고 느낀 나는 모리슨을 재촉했다.
그러자 그는 고통이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옥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옥?”
“가족을 찾아서 떠났던 이들이 감염자가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식량을 구하러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기 시작한 거죠.”
고통스럽게 내뱉듯이 말하는 모리슨.
그의 등을 지나가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있을 수 있는 비극이라고 생각했어요. 우연히 사고를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빈도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이상한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죠.”
“소리?”
[쿵-!]
“죽은 사람의 목소리!!”
모리슨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식탁을 가볍게 내리쳤다.
그리고 분노와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을 좌우로 흔들어댔다.
마치 괴로운 기억을 억지로 떨쳐버리고 싶다는 것처럼.
“죽은 사람의 목소리라고요?”
“네. 언제부턴가 근처에서 먼저 떠난 식구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런...”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지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누구라도 믿기 힘들겠죠. 이미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니. 하지만 사실이었어요. 언제부턴가 먼 곳에서 그들이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죠.”
“그래서요?”
“당연히 우리는 그 소리가 들려온 곳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주변에서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어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몇 번이고 확인해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밤이면 다시 그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죠.”
“으~~ 소름~~.”
“뭔가 으스스하네요.”
실비아와 레이나는 팔을 감싸고 손으로 비벼댔다.
뭔가 알 수 없는 서늘함을 안겨주는 이야기.
그 오싹한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한기가 찾아오고, 소름이 돋는 모양이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지만 친밀한 사이였던 사람은 어떻게 느낄까요?”
순간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어떤 단어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유인책-!’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 두려운 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있다.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번지점프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로 무서운 일이지만, 긴장감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계단 위에서 뛰어내리는 정도의 모험에 불과하니까.
죽은 사람의 목소리?
단순히 생과 사만 생각하면 믿기 힘들고, 두려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라면?
그리워하는 사람의 목소리라면?
그건 참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 점점 그 목소리에 이끌려서 밤중에 몰래 도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 여기가...”
“...네. 그리고 어느새 저와 지나만 남게 된 거죠.”
말을 마치고 모리슨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의 눈에서도 뜨거운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정체는 파악하셨습니까?”
“...네.”
“...간신히.”
모리슨과 지나는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며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입을 모아 외쳤다.
“그건 괴물이었어요!”
“빌어먹을 악마-!”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역시 그거겠지.
그거.
‘돌연변이...’
그렇다.
평범한 감염자와 다른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감염자.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정도로 영악한 존재.
돌연변이였다.
아마 그런 놈이겠지.
“그래서 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네. 그 악마를-! 그놈을 처치하는 걸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지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뭔가 부탁할 것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꽤 무거운 이야기였다.
설마 도장의 사람들을 궤멸시킨 존재와 맞서달라는 부탁을 하다니.
‘그런데 그 돌연변이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아무리 방심한 사람들을 꾀어내서 공격했다고는 해도, 색욕권까지 익힌 노른을 손쉽게 상대하는 존재라면...’
최근에 이상할 정도로 강해지고 있는 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돌연변이를 쉽게 상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엘자 패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니까.’
약간의 재생력과 괴력을 지닌 돌연변이 무리.
엘자 패거리.
그들을 나는 활을 이용한 기습으로 비교적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다른 능력을 지닌 돌연변이였다면 그렇게 제압할 수 있었을까?
분명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대가 나를 노리개로 삼기로 작정하고 방심해준 덕에 겨우 이길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우리 일행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시고, 색욕권까지 가르쳐주신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네...”
“...”
“하지만 저희가 그런 위험까지 감수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그런...”
“...맞아. 지나, 무리한 부탁이었어.”
부드럽게 거절하자 지나는 슬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섰고, 그런 그녀를 모리슨은 말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사정은 딱하지만, 굳이 위험한 곳에 목을 들이밀 필요는 없지.’
나는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고개를 꾸벅였다.
그리고는 모리슨과 지나의 안색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애통한 심정과 분한 마음을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큰 피해를 보셨잖아요? 그리고 이제 색욕권의 맥을 이어가실 분은 당신들뿐입니다. 무리하게 적을 해치우는 것보다 일단 이곳을 피하는 것이 어떨까요?”
은근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복수보다는 거처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그들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는 못 떠납니다.”
“...그놈 손에 죽은 한이 있어도 이렇게는 못 갑니다.”
선대부터 이어진 도장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먼저 떠나보낸 동료에 대한 원한이 깊어서 저러는 것일까?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미련한 집착으로 보일 뿐이었다.
여기서 더 버티면 피해만 커질 뿐이었다.
나는 그들을 다독이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살아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혹시 도장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그놈에게 당한 사람들 때문에?”
“...”
“...”
아무래도 이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복수심인 모양이었다.
나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복수를 바랄까요? 아닐 겁니다. 당신들이 살아남기를 더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표현.
판에 박은 듯한 설득의 문구.
하지만 지금 내가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들이 겪었을 고통과 지금 느끼고 있을 분노를 내가 어떻게 다 공감할 수 있을까?
그저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이런 구태의연한 표현으로 감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 뭔가 소리가 들리는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장 밖의 먼 곳에서 .
“이 죽일-!!”
“아-흐흑~~~.”
그 소리를 들은 모리슨은 이를 악물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지나는 그런 모리슨을 잡아끌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이게 바로 그 목소리?”
“...네.”
나는 모리슨을 말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지나를 바라봤다.
세상 모든 고통을 다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지나는 연신 몸을 떨었다.
“아...빠...엄...마...”
‘뭐?!!’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청각을 돋우며 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아빠, 엄마-! 왜 나 찾으러 안 와?! 빨리 와-! 여기 너무 추워-!!”
“이익-!!”
“어-흐흐흑-! 핸슨-!!!”
[[[!!!!]]]
목소리의 정체는 두 사람의 아이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걸 흉내 내는 괴물이었지만.
나는 충격에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실비아와 레이나를 바라봤다.
그녀들도 공포와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지...지금 저게 뭡니까?”
“...이제 아시겠죠? 우리가 왜 떠날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저놈을 반드시 해치우고 싶어하는지. 흐-흑-!”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이 몸을 들썩이는 모리슨.
그를 필사적으로 말리는 지나.
그리고 사색이 되어버린 레이나와 실비아.
‘지금 저게 먼저 떠나보낸 자식의 흉내를 내고 있는 건가? 그런 거야? 엉?’
상황을 깨닫자 뭔가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몸을 휘감던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은 어느새 분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뿌드득-!]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이를 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