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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탐식의 아마조네스 (13)


“이곳을 벗어나서 안전한 곳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겁니다. 차라리 이곳을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편이 빠르겠죠.” 어두워진 후에 이동하는 건 매우 위험했다. 우리를 위협하는 건 감염자만이 아니었다. 야생동물, 험한 길, 곤충, 독초 등등. 어두워지면 이 위협적인 것들이 몇 배는 더 위험하게 변하는 것이 야생의 세계였다. “네. 알겠어요.” “진기 씨의 의견에 따를게요.” 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보이던 레이나와 실비아도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시체를 정리하죠.” 나는 얼굴이 뭉개진 샤샤의 시체에 다가갔다. 그리고 다리를 잡고 질질 끌기 시작했다. 그 기괴한 광경에 레이나와 실비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진기 씨는 위험한 사람인가요?” “네?” “이런 세상이 되기 전에 뭔가 위험한 일을 했던 사람이라던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혹시 살인마나 청부업자 같은 거 아니었는지...” “실비아!” 내 정체를 궁금해하는 실비아. 그녀는 내 무지막지한 전투력에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모양이었다. 그게 불쾌했는지 레이나는 살짝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웃어 보이고는 계속 걸었다. “진기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좋은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진기 씨는 말이죠...” 레이나는 내 정체를 밝히려다가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그녀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줄 수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나도 동감이다. 실비아가 유명한 연예인이라지만, 그 진짜 모습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섣불리 모든 밑천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내가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것도, 그리고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아차-! 레이나와 실비아가 물렸지? 괜찮은 건가?’ 나는 질질 끌던 샤샤의 시신을 팽개치고는 레이나와 실비아에게도 다가갔다. “잠시 잊고 있었네요. 그들에게 물렸죠? 괜찮아요?” 내 질문에 레이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비아는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저도 바로 변하지는 않네요.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건지...” 실비아는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감염자로 변하면 진기 씨가 처리해 주세요. 험한 일을 부탁해서 죄송해요.”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자포자기해서 이상한 행동하지 마세요. 아셨죠? 지금부터 철저하게 제 지시에 따르는 겁니다.” “네? 그...그게 무슨?” “살아날 방도가 있다고요. 그러니까 자살 같은 거 생각하지 마시라고요. 아셨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나는 단단히 못을 박았다. 그러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레이나를 바라봤다. 레이나는 실비아의 시선에 확신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실비아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먹구름이 조금은 걷히는 듯했다. “으-차-!” [[“...”]] 그렇게 다시 우리는 기묘한 행군을 시작했다. 나는 샤샤의 시신을 끌고 걸었고, 그 뒤를 레이나와 실비아가 따랐다. “여기에서 모모를 해치웠죠. 그 시체도 가져갈 겁니다.” 나는 잡동사니 무더기에 잠시 감춰놨던 모모의 시신을 끄집어냈다. 그때였다. 실비아가 놀란 표정으로 잡동사니 무더기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를 급하게 부축하면서 외쳤다. “실비아, 갑자기 왜 그래요?!! 놀라서 그래요? 아니면 혹시 나쁜 생각이라도...” 절망한 나머지 패닉이라도 일으킨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절망보다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흑, 흑, 어...어떻게 해~~. 이걸 어떻게 해~~. 으-흑흑-! 어흐~~!” “실비아,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잡동사니 무더기에서 피가 묻은 시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우리 오빠~~. 시...시계~~. 으-흑흑-! 어떻게 해~~. 오빠-!!” 나에게 사정을 설명한 실비아는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걸 레이나가 얼른 옆에서 부축했다. 그녀는 오빠의 시계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했으리라. 이미 오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이 오두막의 괴물들에게 잡아먹혔다는 것을. ‘이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가족의 죽음을 알게 되다니. 게다가 그의 최후가 괴물에게 잡아먹힌 것이라니. 적절한 위로의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레이나와 실비아를 꼭 안아준 후에 천천히 발을 옮겼다. 한 손에는 샤샤의 발목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모모의 발목을 쥐고서. 그 뒤를 레이나가 실비아를 들쳐 엎은 모습으로 뒤따랐다. “여기에서 기다려요. 나머지 시체를 가지고 나올 테니까.” 모닥불 자리가 있는 공터에 도착했다. 나는 숨겨놨던 에일리와 크리스틴의 시신을 끌어낸 후에 레이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비아를 품에 꼭 껴안았다. 실비아는 몽롱한 표정으로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직도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피붙이의 비참한 죽음을 확인했으니 그 속이 오죽할까? 나는 실비아만큼은 반드시 살리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질질질-.] [털-썩-!] [털-썩-!] [털-썩-!] 나는 에냐, 알렌, 제니퍼의 시신을 오두막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마치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칠게 집어던졌다. 사실은 이렇게 무례하게 다룰 생각은 없었다. 감염자로 변한 것도 모자라서 돌연변이로 변한 괴물 중의 괴물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들이 원해서 변한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생존을 놓고 경쟁한 것이고, 그 결과로 생과 사가 갈린 것에 불과했다. 그들을 원초적인 악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실비아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이라도 그녀를 달래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짐짓 시신을 모독적으로 대하고 말았다. 신사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실비아의 마음이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남은 건 엘자의 시신인가?’ 나는 천천히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엘자와 함께 있었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뿌-드득-. 뿌-득-.] “크-아아~~. 백...진...기-!!” “!!!” 목이 부러져서 숨이 끊어졌던 엘자. 그녀가 다시 일어나서 부서진 목뼈를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내가 목격한 것이었다. 나는 그 기괴한 광경에 순간 몸이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 ‘뇌를 파괴하지 않은 탓인가? 그래서 재생이라도 하는 건가?’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분명히 완벽하게 숨통을 끊었건만, 그녀는 되살아나서 목을 치료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노려보며 구석에 놓여 있는 ‘엘자의 정글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기괴하게 몸을 꿈틀대면서 상처를 재생시키고 있는 엘자에게 다가갔다. “크-아악-! 우...우리는 너...너...에...게 자...자..비..를 베...베...풀...었...다. 그...런...데...너...너는...” 내가 다가온 것을 눈치챈 그녀는 악을 쓰면서 입을 움직였다. 하지만 아직 회복이 끝나지 않은 그녀의 목에서는 기괴한 목소리가 새어나올 뿐이었다. ‘샤샤를 상대했을 때처럼 고생하고 싶지는 않군.’ 나는 단칼에 그녀의 목을 칠 생각으로 높게 팔을 들었다. 그러자 엘자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악을 썼다. “우...우리가 무...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어? 너..너희들이 사냥을 하는 것처럼 우...우리도 먹잇감을 노렸을 뿐이다! 야...약육강식-! 자...자연의 섭리-!” 조금 전보다 훨씬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목도 꽤 회복되었는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 그래서 나도 저항했다. 먹히지 않기 위해서. 이 상황에서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지.” “크-아아악-!” “한 가지 재미있는 걸 알려주지. 인간 중에서는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채식주의를 고집하거나 영양제로 섭식을 대신하기도 하지. 그런데 너희는 입으로 약육강식을 떠들면서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너희와 같은 말을 하고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인간에게 어떤 관심을 기울였지? 너희의 유일한 잘못은 소통할 수 있으면서도 그들과 소통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길이 있음에도 그 길을 보지 않은 것이야.” “크-아아아악-! 빌어먹을-! 죽인다-! 다 죽인다-! 캬-아아악-!!” “그리고 가장 잘못한 것은 너희들보다 강한 나를 먹잇감으로 노렸다는 거다. 잘 가라-!” 이제 거의 목을 회복한 엘자. 그녀는 전신의 근육을 부풀리며 나에게 달려들기 위해서 살기를 내뿜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손을 휘둘렀다. [댕-겅-!!] “끽-!” 내 일검에 엘자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나와 요녀들이 체액을 내뿜어서 질척해졌던 침대보. 그 침대보는 엘자가 내뿜는 피까지 더해져서 더욱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질질질-.] [털-썩-!] 목에서 흐르는 피가 잦아지자 나는 엘자의 시체를 밖으로 끌어냈다. “시체는 모조리 태우겠습니다. 역한 냄새가 나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나는 레이나와 실비아에게 양해를 구했다.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실비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볼 뿐이었다. 너무 놀라서 얼이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쉬이익-! 댕-겅-!] [댕-겅-!] [촤-아악-!] [댕-댕-겅-!] 화살을 회수하고 시신의 목을 모조리 베었다. 일종의 ‘부관참시’라고 할까? 잔혹한 행위였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목뼈를 부러뜨렸던 엘자가 되살아나지 않았던가? 한 치의 방심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화르륵-.] 목을 자른 후에는 시신에 불을 붙였다. 오두막에서 찾아낸 인화성 물질을 뿌리니 빠른 속도로 타들어 갔다. “잠시만 여기에서 기다려요. 한 번 더 안을 확인 할게요.” 괴물들의 시체가 거의 다 탔을 무렵이었다. 나는 레이나와 실비아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혼자서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폈다. ‘숨겨진 방은 지하실이 전부야. 안에 아무도 없다. 숨어있는 잔당도 없는 거 같아.’ 오두막이 안전해진 것을 확인한 나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 레이나와 실비아는 공포와 증오가 뒤섞인 표정으로 타들어가는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2층에는 가지 말고 일단 거실에 있어요.” 내 목소리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진기 씨.” “네.” “고마워요.” “...” “저를 구해준 것도, 그리고 오빠의 원수를 갚아준 것도.” “실비아...” 그녀는 나에게 감사의 말을 남기고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안으로 향했다. 그 뒤를 레이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따랐다. [쭈-우욱-! 화르륵-!] 레이나와 실비아가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불타고 있는 시신에 인화물질을 더 뿌렸다. 그러자 사그라지던 불꽃이 다시 커졌다. ‘까딱하면 저 불꽃처럼 내 운명도 꺼질 뻔했군.’ 실로 아찔한 경험이었다. 엘자와 그 패거리들이 방심하고 틈을 내주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잡아먹히거나 종마 신세로 전락할 뻔했다. [[약한 자가 죽는 것이 아니다. 방심하는 자, 준비하지 않는 자가 죽는 것이다.]] 아버지가 몇 번이고 강조하셨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단 몇 분간 어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로 나는 모든 것을 잃을 뻔했다. 사랑스러운 레이나도. 내 목숨도. ‘으~~. 이제 몸이 떨리다니~~.’ 모든 일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한기가 찾아왔다. 긴장이 풀리니 손과 몸이 떨려왔다. 이제야 공포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겁먹을 때가 아니야. 내가 아니면 누가 레이나를 지키겠어? 정신 바짝 차리자.’ 나는 떨리는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퓨마 그릴스의 일기’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 사실이 아니던가? 우리가 나아가는 길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것을 아주 조금 맛본 정도로 이렇게 위축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어쨌든 살아남았다. 일단 그 사실에 감사하자고!’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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