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EP067-외전-사랑 놀이 (4)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말은 모르는 이가 없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나만큼 큰 사고,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또 있을까?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
여기, 강의를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듯한 이 선배. 이름은 레나 로마노프.
처음에는 몰랐는데 우리 과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매년 장학금은 기본에, 과탑을 놓치지도 않고 복수전공도 한다는 괴물….
하지만 성격이 더러워서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소문까지.
그런 사람과 벌써 세 번이 넘게 섹스를 해버렸다는 게 내 실수다.
후회를 한다는 말은 아니고,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 이유는 나도 몰랐던 내… 성적인 취향에 있다.
“…선배님?”
“…….”
지금 보니까 선배의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선배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한쪽 이어폰을 쏙 빼면서 입을 연다.
“뭐야… 너, 이젠 스토킹까지 하는 건가?”
“네? 아, 아뇨, 그냥 인사드린 건데요….”
“왜?”
“…네?”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을 텐데.”
“어…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 좀, 그… 이것저것 했는데.”
“이것저것? 아하, 팔뚝으로 내 목을 조르면서 보지를 쑤-.”
“서, 선배님! 여기 바, 밖이잖아요…. 누가 듣겠어요.”
이 사람은 조금… 이상하다.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을 때에는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면서도 계속 가버리더니, 결국 기절하면서….
‘주… 죽여버릴, 거, 야…♡’
…이런 말을 했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아니, 내가 억지로 한 건 당연히 아니지만.
성인이 되고 나면 원래 원나잇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가? 몇 번 떡을 쳤다고 친해지려 노력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그, 무슨 노래 듣고 계셨어요?”
“…….”
“선배님은 뭔가 이미지가 팝송이나 클래식 좋아하실 것 같은….”
“자.”
선배가 한쪽 이어폰을 나에게 내민다.
같이 듣자는 건가?
오, 이건 살짝 그린라이트 아니야?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작은 이어폰을 내 귀에 꽂아보면 들려오는 음악은….
파앙-! 파앙-! 파앙-!
‘오-♡ 오, 오호오옷♡’
‘죽어… 마조년아, 보지 조이면서 죽어, 씨발….’
“…….”
“왜 그러지? 네 목소리인데.”
“…….”
“이, 이걸 왜 듣고 계시는 거예요…! 아니, 그보다… 녹음하셨어요?”
“그래.”
“…사, 삭제해주세요.”
“원본은 이미 백업해뒀어. 이건 하이라이트 파트만 잘라서 모아둔 편집본이고.”
이 사람은… 이상하다. 아주 많이.
겉으로는 싸늘하고, 잔뜩 날이 서있고, 입도 거칠고, 나를 엄청 싫어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막상 침대에서는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받아… 아니지, 받아주는 건 아니고.
반항을 하면서도 당하고, 그걸 좀 즐기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잠깐.”
갑자기 자리에 멈춰선 선배가 내 옷을 손으로 붙잡더니 자기 쪽으로 휙, 끌어당긴다.
순간 몸의 균형이 무너져서 크게 한 차례 비틀거려야 했지만 선배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저 내 겉옷을 자기 코앞으로 끌고 가져가더니… 냄새를 맡는다.
“향수?”
“네?”
“…….”
갑자기 선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손을 위로 휙, 뻗어서 내 귀에 꽂힌 이어폰을 거칠게 가로채더니 도로 가져간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말투로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한다.
“하, 역시 어중이떠중이들과 다르지 않은 멍청이였나….”
“뭐… 뭐라고요? 왜요?”
“여기저기 간을 보면서 적당히 어울려주고 그러다가 휙 떠나버리는… 쾌락과 사랑을 구분할 줄도 모르는 머저리.”
“아, 아니… 이거 향수, 방금 뿌린 건데요.”
“방금 다른 여자와 어울리고 왔다는 말을 자랑스럽게도 하는군.”
“저쪽에서 선배가 보여서 말 걸기 전에 살짝….”
“…….”
다시, 선배가 제자리에 멈춰선다.
그리고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하나도 없는 그대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가만히 눈을 굴린다.
“음.”
그 짧은 한 음절을 끝으로 다시… 걷는다.
대체 뭘까, 이 사람.
“자.”
“네? 아, 아니… 저는 괜찮….”
또 다시 이어폰을 나에게 내민다.
거기서 무슨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사양을 선택하는 게 맞지만, 선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감히 내가 권하는 배려를 거부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째려본다.
“…알겠어요.”
“…….”
‘넌 오늘부터 졸업할 때까지 내 좆집이야. 알겠냐? 보지 조이면 동의하는 걸로 알겠어.’
‘히, 그읍-♡ 이, 개… 개, 개새끼, 가아…♡ 오, 오옷♡ 오♡’
찌거어어억-♡ 팡-! 파앙, 팡, 팡-!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경이다.
아니… 그래, 내가 한 말은 맞아. 부끄럽지만 내 취향이 저런 것도 맞고.
그런데 이 선배는 그걸 왜 받아주는 거지….
“그… 선배님.”
“왜.”
“혹시 저, 저랑 사….”
“싫어.”
“…네.”
…쪽팔려. 죽고 싶다.
이 선배, 성격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친해진 사람이고 그… 선배랑 하는 섹스도 엄청나게 기분 좋았는데.
얼굴도 꽤 귀엽고, 입이 조금 거칠 뿐이지 막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약간은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역시 아니었나….
“그대로 포기하는 건가?”
“그, 그야… 싫다고 하시는데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 난 네가 억지로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하는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네?”
“아니라는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걸.”
파앙-! 파앙-!
‘보지 조이면서 입 벌려. 혀 내밀어.’
‘헤, 헤에-♡ 헤, 으웁, 으, 웁-♡ 파하, 하, 누구 마, 마음대로 키, 키스, 으, 으웁-♡ 우브웁-♡’
이 선배는… 역시, 정말, 몇 번을 말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이상하다.
신입생 환영회가 있던 그날 밤의 중간 과정은 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마지막에, 침대에 엎어져서 엉덩이를 덜덜 떨며 나를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나지막이 뱉고는 기절한 선배만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기억을 지워줬다. 죽이고 싶을 만큼 괴로운 기억을 내가 만들어준 것 같아서.
“너도 동의하지? 그런 상황에 네가 흥분한다는 거.”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 다음 날, 어젯밤의 일을 기억을 한다면서 다시 찾아온 선배는 또 다시 나를 모텔로 이끌었다.
나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정작 행위가 시작하자 조금 저항하는 가 싶더니… 엉망진창으로 가버리셨고, 또 기절했다.
죽여버린다는 말을 다시 한번 뱉은 채로, 찐득한 애액을 질질 흘리면서.
“왜 망설이는 건지 모르겠군.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되잖아.”
“뭐… 뭘요?”
“저기 보이는 모텔로 나를 데려가서, 어제 했던 것처럼 이렇게-.”
찌거어어억-♡ 팡, 팡, 파앙-!
‘싼다. 다 쌀 때까지 보지 계속 꽉 조이면서 가만히 있어.’
“나를 깔아 뭉개고, 짓누르면서 대답을 짜내.”
“…….”
“그럼 내 입에서 네가 원하는 대답을 나오게 하는 데에는 몇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게 분명한데.”
그리고 세번째 날부터는…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와 하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나를 만나는 것보다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똑똑한 선배의 머리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내가 엿보는 건 당연히 무리였고.
기억을 지울 필요는 없어졌고, 선배도 나를 굳이 피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뭔가 벽이 쳐져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건… 안돼요.”
“왜?”
“무, 물론 제가 선배님한테 그렇게 하면서 기분이 좋았던 건 맞지만… 그건 그냥 제 취향이고, 욕망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선배가… 괜찮은 사람 같아서….”
“떡 몇 번 치고 밥 좀 먹고 카페 좀 같이 가줬다고 사랑에 빠진 줄 착각하고 있군.”
“사랑… 같은 거창한 감정은 아니어도, 일단은 그냥, 어….”
이거 좀 낯부끄럽네.
그래도 해야 하는 말 같아.
“…좋은 것 같아요, 선배님.”
‘하아, 씹… 보지 존나 좁아서 기분 좋네.’
‘헤, 으…♡ 후, 후으, 읏…♡’
…하필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좋지 않은 타이밍에 맞물려서 이상한 의미를 품은 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대답을 강요하면서 나를 연인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이건가?”
“그, 그렇죠.”
“네 한심하고 얼빠진 모습으로 내 호감을 사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해보는 거죠.”
“흠.”
선배가 다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거의 들리지 않을 듯한 정도의 혼잣말을 뱉는다.
“사랑과 욕망을 분리시켜 구분한다라….”
“네?”
“뭐… 좋아. 재미있네. 앞으로 지켜보겠어.”
지켜보겠다는 말은… 그래도 옆에 있어도 된다는 뜻이겠지?
조금은 기쁘네.
“그럼 가지.”
“네? 아… 바, 밥 먹으러 갈까요?”
“아니, 떡치러.”
“…….”
…이상한 사람이다.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사람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이 선배에게 내가 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왜 망설이지? 너, 한참 전부터 자지 섰잖아.”
“…아.”
“이제와서 신사적인 척을 하고 싶나?”
“그… 코, 콘돔 없는데요.”
“난 있어. 아니… 잠깐, 기억 못하는 건가? 네가?”
“예? 뭐, 뭐가요?”
선배가 내 앞으로 슬쩍, 다가오더니 까치발을 들고 내 귓가로 입술을 가져온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꼴리면 불러서 따먹을 테니까 항상 콘돔 들고 다니라고 했잖아, 네가. 이 발정난 짐승 새끼야…♡”
“…….”
“쯧… 변태 새끼.”
그리고는 휙, 돌아서서 먼저 앞장을 서며 모텔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살랑살랑 은근하게 골반이 움직이는 뒷모습이 퍽 야릇하다.
나와 레나 선배의 1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