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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EP044-보고


“지부장님.” “듣고 있다.” “레나 로마노프가 부가적인 보고 없이 부산에서 S급 히어로와 접촉했습니다.” “누구지?” “도그마입니다.” “…왜?” “감청에 실패해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인물이지만, 추후의 상황을 대비할 때에는 반드시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도그마는… 굳이 한 단어로 요약해야 한다면, 그럴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쓰레기다. 권력, 지위, 명예, 명성, 존경… 아니, 도그마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다. 자신은 태생부터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게 타고 난 S급 히어로라는 데에서 오는 우월감. 그럼에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차오르는 열등감. 이 두 감정이 어지럽게 뒤섞인 아이러니. 그게 도그마다. “도그마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근신하고 있다 알고 있었는데.” “지부장님이 일본에 계시는 동안, 부산에 나타난 A급 빌런을 완벽하게 포획한 실적으로 근신 처분이 해제되었습니다.” “…….” 침착해.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최악이라고 한다면… 레나 로마노프 박사가 도그마에게 의도적으로 헤이즈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는 것이다. 도그마라면 반드시 눈독을 들일 테니까. 게다가 그런 S급 히어로의 연인이 일반인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에 대해 묻는 거지?” “헤이즈와 승윤 씨의 일, 지부장님의 대체자를 찾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 “도그마는….” “아니. 안돼.” 그런 남자에게 헤이즈를 맡기는 건 승윤 씨에게 괴로움을 주는 수준을 넘어선다. 너무 위험해. 승윤 씨에게도, 그리고 헤이즈에게도. 하지만 너는 어떻지, 매튜 앤더슨? 네가 그런 판단을 할 자격이 있는 건가? 지난번 관계에서도 한창… 즐긴 거 아닌가? 오랜만의 씨뿌리기를 기대하며 더없이 흥분하지 않았던가? “…번복하지. 내가 간섭할 자리가 아닌 것 같군. 승윤 씨와 헤이즈의 일이다.” “알겠습니다.” “이외의 사항은?” “현재 레나 로마노프 박사의 사무실을 수사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정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미라지가 조사한 마스터마인드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가택은 최근 사용한 흔적 없이 방치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 얻은 게 너무나도 적어. 오히려 위험한 변수만 새롭게 추가해버린 건가? 하지만 나 자신의 상황도 그다지 안정적이지는…. “헤이즈는… 곧 순찰 임무를 끝내고 복귀할 것입니다.” “더스트.” “네, 지부장님.” “오늘 오후… 남은 업무 일정이 어떻게 되지?” “저는 인천 측 협회에 출장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알겠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더스트가 사무실에서 나서던 도중 갑자기 멈춰 선다. 그리고 다시 내 쪽을 돌아보며 묻는다. “호텔 예약 필요하십니까?” “방금 출장이라고 하지 않았나.” “헤이즈는 이후 자율 훈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더스트.” “네, 지부장님.” “…아무것도 아니다. 가보도록.” “예약은….” “필요 없다.” *** “후우… 하.” 생각보다 견딜 만도 하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 받은 사진까지, 지금까지 봐온 것에 비하면 아주 무난하다고 느껴질 수준에서 그친 덕분이다. <점심 먹었지, 오빠? 나 순찰 임무 끝내고 이제 훈련하러 들어가! 이건 매튜 씨가 찍어준 오늘 사진. 이따 봐! 사랑해!> “…후우.”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사진. 일단 어제 받은 사진부터 오늘 것까지는 충분히 내 인내심으로 망상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래도 의사가 어떤 망상이 일어나려고 했는지 기록을 하라고 했으니까, 굳이 써본다면…. “망상, 망상. 망상이….” 오늘따라 망상이 쉽게 아른거리지 않는다. 이유도 물론 알고 있다. 매튜 씨가 이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그려온 망상 속 은지의 상대는 대부분 매튜 씨였다. 예전에 옆집에 사는 미라지 씨가 한 번 등장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오해였고.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버린 망상 속 남자가… 바뀐다? 은지가 앞으로 찍어올 사진이나 동영상 속 남자가, 낯선 누군가로 바뀐다? “뭔가 어색해….” 지금… 나와 은지 주변의 상황이 굉장히 복잡하게 꼬인 것 같다. 은지는 여전히 나를 많이 좋아해주고, 그만큼 나에게 기대고 싶어하는데. 내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나도 조금 힘들어. 은지가 나에게 기대는 게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이 상황이. “…….” 그렇다고 해서 매튜 씨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없잖아. ‘은지랑 좀만 더 해주시면 안될까요?’ …미친놈 같다고, 너무. 우우웅- 우우웅- 막막함에 한숨만 폭폭 내쉬고 있던 그때, 전화가 왔다.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을 해보니 화면에 띄워진 저장이 안된 번호. 하지만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저장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여보세요.” ‘어제 딸쳤나?’ “…….” ‘쳤냐고.’ “아니요.” 어떻게 전화를 받자마자 물어보는 게 자위를 했는지…. 됐다. 이 여자에게 정상적인 행동을 기대하는 게 잘못이야. “왜 전화했어요?” ‘똑바로 잘 하고 있는지 검사해야 하니까.’ “당신이 제 선생님도 아니고 뭘 검사해요.” ‘의사 선생님. 선생님 맞는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안그래도 머리 아픈데…. “아무튼, 그… 자위도 안했고, 여자친구랑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됐죠?” ‘망상은?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겠지?’ “아… 마, 망상이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음, 문제… 있긴 한데요.” 이걸 말해도 되는 거야? 가뜩이나 수상한 사람인데, 이 의사. 근데 생각해보면, 상대가 꼭 매튜 씨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숨기는 게 둘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매튜 씨, 그러니까 지부장님이 맡아주시던 역할을 그만두기로 하셨거든요.” ‘그래서.’ “뭔가 망상에 등장하는 상대가 바뀐다고 하니까 좀… 어색하네요. 그래서 집중이 잘 안돼요.” ‘그런 거라면 문제없어.’ “네? 왜요?” ‘내가 적당한 대체자를 알고 있으니까. S급 히어로라서 신원도 확실하지.’ “아니… 아직 결정된 문제는 아니거든요. 그….” ‘일단 끊어. 나 바빠. 그리고 딸치지마.’ 뚜- 뚜- 완전 제멋대로잖아…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적당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게다가 S급 히어로? 우우웅- 우우웅- 다시 전화가 왔고, 다시 같은 번호다. “여보세요.” ‘깜빡했는데, 내일 진료받으러 올 때 콘돔 지참해.’ “…예? 뭐라고요?” ‘왜 놀라지?’ “그걸 왜… 왜 사가요?” ‘네 더러운 좆물이 내 얼굴에 튀면 안되니까.’ “…….” ‘아, 지금 치료 중 아니었지. 미안해요. 아무튼 사와. 그리고 딸치지마.’ 뚜- 뚜- “…뭐하자는 거야?” 일단 얼굴에 튄다는 말을 한 걸 보면… 그, 섹스를 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그냥 어디에 쓸 건지 용도를 같이 말해주면 되잖아. 아니면 지난번에 했던 거랑 비슷한 짓을 할 생각인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귀찮고 복잡하기만 한 여자야. 딱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 똑똑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허술하네. 잠깐 사이, 겨우 나흘 동안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알아서 틈을 내어주고. 초대남은 이제 그만하고 싶으시다는데, 내가 마침 그 자리에 딱 맞는 대체자를 데려왔으니…. 나한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부장? “오랜만이네, 서울. 역시 수도는 공기부터 다르다니까? 그렇지 않아?” “담배 쪽쪽 빨아대면서 공기는 무슨 공기.” “뭐야, 어디가?” “난 바빠. 기어오르지 말고 네가 맡은 일에 집중해.” “이야… 나 S급이거든? 너 A급이잖아. 누가 누구한테 기어오른다는 거야?” 이런 쓰레기랑 같은 자리에서 숨을 쉰다는 것부터 역겹네. 하… 그래도 내가 가질 게 아니라 남 줄 선물이니까 조금만 참자. “다시 말하지만 확실하게 구분해. 타겟.” “알지, 알지. 새로운 S급 말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다른 쪽은 일반인이라며.” “네가 알 바 아니야.” “남친 앞에서 따먹어주는 게 또 나름 재미있는데, 그것도 안되나?” “…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이 내 인형이나 장난감을 건드리는 것이 무척 싫었다. 처음 손을 대는 건 내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망가지거나 부서지기 전에 닿은 마지막 손길은 반드시 내 것이어야 했다. “내 허락 없이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머저리 같은 새끼야.” “아, 미안. 깜빡했네.” “직접 건드릴 생각 하지 마. 양쪽 불알 다 터져서 응급실 실려 가기 싫으면.” “그럼 간접적으로는 괜찮다 이거지?” “머리가 있으면 네가 알아서 생각해.” 말 한 마디 더 나누는 것도 싫다. 넌 어차피 그 짐승을 발정시키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오늘 오후라고 했나?” “그래. 협회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어. 금방 만나게 될 거야.” “맞다, 능력 써도 돼? 처음엔 좀 사릴까?” “알아서 생각하라고, 이 병-” “하하하… 오케이.” 그럼 나도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 나를 위해 나흘 동안 꼭꼭 쌓아둔 좆물이 묽어빠진 자지즙처럼 질질 샐 때까지 짜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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