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EP031-이변
나는 평소에도 욕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다.
“미친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의사에게 당한 일을 곱씹으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뱉은 말이었다.
어차피 뱉은 말을 주워담을 방법은 없겠지만 딱히 주워담고 싶지도 않다.
나한테 그렇게 꼴사납고 한심한 말들을 시켜 놓고… 뭐? 녹화를 깜빡해?
“…하아.”
대체 뭐냐고.
매튜 씨는 분명 저 여자가 마스터마인드가 아니라고 했지만, 너무… 수상해.
욕망을 해소하는 것까지는 좋아. 맞지. 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선택했지.
그런데 왜 나를 보면서….
‘병신.’
“…….”
욕을 하고, 비꼬고, 비웃고….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흥분하고.
…엄청나게 싸버렸고.
“아… 아니야. 잊어버려. 다음부터는 절대로 저 여자 말대로 하지 않을 거야.”
매튜 씨가 돌아오면 일단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겠다.
레나라는 저 의사, 내가 기억하는 마스터마인드랑 묘하게 분위기가 닮았단 말이지….
…기분 나빠.
그나저나 은지랑 매튜 씨도 슬슬 비행기에 탔을 시간이네, 벌써.
은지에게서 온 연락은… 있다.
‘오빠, 나 이제 비행기 타러 가! 사진도 찍었구, 오빠 줄 선물도 잔뜩 샀지롱. 이따 봐!’
“…사진.”
그렇네. 사진.
역겨운 말들을 들으면서 콘돔 네 개를 빵빵하게 채울 정도로 한심하게 싸버린 내 부끄러운 순간들은 차치하고….
당장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은지가 보낸 사진에서 이어지는 가능성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개운하다.
일부러 사진에 대해서 떠올리려 하지 않으면 망상이 의식 위로 떠오를 힘을 내지 못하는 것만 같다.
“…….”
효과가 있다고, 이게.
한심한 마조 새끼라는 매도를 들으면서, 사정조차 그 여자의 허락을 받으면서 해야 하는 그 치료가.
말도 안돼. 우연이야.
그 여자는… 분명 수상해.
“애초에 의사라는 사람이 치료 과정을 녹화하는 것조차 깜빡하는 게 말이 돼?”
투덜거리면서 다시 천천히 걸음을 이어간다.
녹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 끝난 뒤에 입을 닦거나 헹구지도 않고 휙 떠나버린 레나.
…심지어 내 엉덩이에 대고 키스를 얼마나 진하게 해댄 건지, 자국을 씻어내느라 고생 좀 했다.
“만약에… 아주 만약의 가능성이지만, 그 여자도 어쩌면 매튜 씨 같은 사람인가?”
매튜 씨가 수상하고 괴상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 행위에 있어서 매튜 씨는 철저하게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듯이 임한다.
그러니까 이 여자도, 이건 치료니까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으로….
“그럴 리가 없지. 그냥 그 여자가 이상한 거야… 괜히 좋게 생각하려고 하지 마.”
내가 왜 그 여자가 한 짓에 정당한 이유를 붙여줘야 하는 거지?
됐어. 내가 다시는 저 여자가 권하는 치료인지 뭔지, 하나 봐라.
앞으로 비슷하게 욕망이 쌓이더라도… 이제 은지에게 부탁하면 돼.
아니면, 차… 차라리… 망상을 보고 은지에게 부탁하는 편이….
“…….”
잠깐이지만 머릿속에서 돌아가던 생각들이 턱, 걸리면서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더 나은 거지?
내가 창피를 당하고 수치스럽지만 확실한 효과가 있는, 하지만 더없이 수상한 의사의 치료를 받는 거.
그리고… 은지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 잔뜩 따먹히고 돌아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속삭여주는 거.
내가 왜 이런 선택지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원망을 하는 의미 없는 짓은 오래 전에 관뒀다.
하지만, 최소한 납득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내가 내리는 결정에 나, 그리고 은지가 납득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고작-
‘열등한 마조 취급을 받으면서 엄청나게 기분 좋게 네 번이나 연달아서 싸버렸다’
…같은 한심한 경험이 되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은지는 내가 부탁을 해서 매튜 씨랑 만나고 있는 거다.
적어도 이런 치료는, 은지에게 말을 하고 나서….
“그, 그럼 이 사진을 보여줘야….”
…무척 당연한 문제를 너무 늦게 자각해버렸다.
은지한테 뭐,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있잖아, 그 의사가 네가 치료를 할 방법을 직접 보여주겠다며 실습을 했거든?
근데 동영상 녹화 버튼을 깜빡했대. 그래서 이 사진밖에 남지 않았어, 미안.’
퍽이나 믿겠다.
사용이 끝난 콘돔까지 침대에 널브러져 있고, 엉덩이에는 립스틱 자국….
게다가 이 여자의 표정, 평소랑 똑같이 무덤덤한데 왠지 모르게 뿌듯해 보이는 느낌도 들어.
역시 기분 나빠….
***
“오빠아아!”
현관문이 열리기 무섭게 안쪽으로 뛰쳐 들어온 은지가 내 품에 와락, 안긴다.
보자마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움이다.
“으으웅…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틀린 말은 아니지. 맨날 같이 보다가 나흘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밥 먹자! 오빠랑 같이 먹으려고 비행기에서 기내식도 안먹었어.”
“일본에서 오는데 기내식을 줘?”
“당연히 주지!”
역시 나는 이 해맑은 웃음이 참 좋다.
…그 싸늘하고 덤덤한, 재미없고 애교도 없고 귀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보다, 훨씬.
“오빠는 나 없는 동안 어땠어? 별 일 없었어?”
“어? 어….”
아, 아직 내 추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은지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이, 이따가 말해줄 테니까 일단 옷 갈아입고, 밥부터 먹자.”
“오…? 뭔데 그래? 기대해도 돼?”
“…밥 먹자.”
“뭐야, 뭐야? 숨기니까 더 기대된다! 후후… 두근두근.”
아니… 기대하면 안될 얘기 같은데, 이거.
…모르겠다, 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 은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그러다가 문득, 은지가 한국에 왔으니 당연히 매튜 씨도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사에 대해서 조금 더 확실하게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문자라도 남기려 휴대폰을 꺼내는데,
“…뭐야.”
낯선 번호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자기 소개도 하지 않고, 이 번호가 맞냐는 확인도 하지 않고 대뜸 본론으로 들어가는 낯선 이의 문자가.
‘다음 진료. 사흘 뒤. 오전.’
“하….”
내 번호는 어디서… 아니다. 환자니까 번호 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 식의 연락은 절대로 사양이다.
‘아시겠지만 저 여자친구 있습니다. 불필요한 연락 자제해주세요.’
대충 답장을 보내고 다시 매튜 씨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던 그때.
띠링-
‘과대 해석도 망상증의 증상인데. 손으로는 부족했나?’
“…….”
아무래도 나… 미친년에게 단단히 잘못 물린 것 같다.
그냥 무시하자. 의사니까 차마 차단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저장은 해야 하나?
그런 시덥잖은 고민을 하는 사이, 문자 하나가 연달아서 도착한다.
띠링-
‘다음 진료까지 차도가 없으면 방식을 조금 바꿔볼 예정.’
“…어쩌라는 건데.”
기대감은 무슨. 불안하고 불길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진료를 받는 것보다는, 최소한 내용을 알기라도 하는 게 낫지 않나.
‘어떻게 바꿀 건데요.’
‘입.’
“…….”
입. 그 한 단어를 보자 마자 머릿속을 스쳐가는 한 장면의 순간.
작은 입을 오므려서 귀두를 머금고, 손으로는 내 불알을 움켜쥔 채로 붙잡고 있는-
“…뭐야, 방금.”
내가 굳이 억누를 필요도 없이, 그려진 순간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사라지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왜? 왜 망상이 은지가 아니라 이 여자한테….
망상은 분명 내가 괴로워하는 상황을 그려내는 식으로 작동할 텐데?
“오빠!”
“와, 와악!!”
“뭐야, 뭐야? 왜 그렇게 놀라? 혹시 다른 여자랑 연락하고 있던 거 아니야?”
“…어어.”
여자의 직감은 무섭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하지만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최소한 나는 떳떳하다.
“그… 잠깐 이것 좀 봐, 은지야.”
“웅?”
“사실 어제, 네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난 이후로 망상을 참기가 힘들어져서….”
사정을 설명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망상을 억누르기 힘들어져서 레나를 찾아간 일부터 시작해서,
은지를 다시 매튜 씨에게 보내고 싶지 않아 레나 씨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게 그 사진.”
“에… 어, 오….”
당황한 은지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한 손으로는 벌어진 입을 막고… 화면을 빤히 들여다본다.
“이거 오, 오빠 맞아…?”
“…그래.”
“오… 와, 와아….”
“왜, 왜 그래?”
“아, 아니 그냥… 신기해서, 으응.”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은지는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눈치다.
실망하거나 화를 내는 것보다는 그냥 좀… 놀란 것 같다.
사실 내가 들은 말들, 은지에게 그대로 전해주기엔 너무 거친 말들이라 자체적으로 순화시키긴 했다.
“그, 그럼 앞으로는 내가 이것처럼 비슷하게 해줘야 한다는 거… 맞지?”
“너무 촉박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내가 좀 더 참아보면 되니까.”
“괜찮아! 좀 어, 어려우면… 이 의사, 레나였나? 아무튼 다시 부탁하면서 이번에는 똑바로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지 뭐.”
“…….”
그게 문제라고, 은지야….
왜냐하면 너, 욕 한마디 똑바로 하지 못하면서.
그 여자가 했던 말의 반은 무슨, 반의 반도 똑바로 따라할 수 있을 지 벌써부터 걱정이야.
“너무 거, 걱정하지 말구! 이번에도 내가 도와줄 테니까, 오빠!”
그렇게 자신 있게 외치는 게 오히려 불안하단 말이야.
그래도, 오늘 가져온 사진으로 한 번 연습을 해보면 감이 잡히겠지?
은지가 어떤 사진을 가져왔을 지 이제야 조금…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