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EP010-진실
너무 참을성이 부족했나?
조금은 더 참아볼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방법은 없다.
“또… 하고 오라는 말이지?”
“…맞아.”
하지만 참는 건 망상에게 자라날 시간을 주는 오만에 가깝다.
혼자서 한심하게 망상 자위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낫다.
“이번에는….”
“자, 잠깐만!”
이번에는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줄 확실한 사진이, 분명한 증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다.
어떤 사진이라도 좋았다.
하기 직전, 하는 도중, 하고 난 직후.
그냥… 은지의 입에서 나온 적 없는 한심한 신음을 나오게 만든 자지와 은지가 함께 있는 사진.
“왜?”
“…….”
우물쭈물 망설이는 은지.
나는 은지의 이 표정을 알고 있다.
뭔가를 말해야 하는데 모종의 이유로 망설이면서 고민할 때의 표정이다.
“…이, 있잖아, 오빠.”
“응.”
“오빠가… 거,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치?”
“그렇지…?”
거짓말을 허락한 이유는 간단했다.
수줍음이 많은 은지의 부담감을 조금은 덜어내려고.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사실과 거짓의 모호함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기에.
“…….”
“왜… 왜 그래? 거짓말한 건 괜찮아.”
“사실 오빠한테 말한 거… 저, 전부 다 거짓말이야… 미안.”
“뭐라고?”
“세, 섹스… 한 적 없어.”
뒤통수에서 커다란 망치가 쿵, 부딪히는 기분.
배신감? 아니다. 실망? 허무함? 아니다.
지금은 그저 충격을 받아버린 것일 뿐이다.
다만 그 충격이 너무… 너무 강해서 그렇지.
“왜…?”
“지부장님이 이렇게 하자고 제안했어.”
“그러니까, 왜?”
“이렇게 해도 오빠의 망상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진짜로 할 필요 없다고.”
“…….”
적어도 매튜 씨의 생각은 정확하고 현명했다.
나는, 은지가 콘돔을 들고 있는 사진만 보고 괴로워했고, 만족했다.
하지만… 며칠만에 다시 부탁을 하게 될 거라는 점은 예상하지 못했나보다.
“그럼… 왜 말한 거야?”
“오, 오빠한테 계속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 이번이 마지막 부탁이지는… 않을 거고.”
양심의 한계가 왔구나.
사실을 고백하면 같은 거짓말을 쓸 수 없게 될 걸 알면서도,
나를 속이고 있다는 미안함을 더 버틸 수 없었던 거야.
“…….”
“…미안해, 오빠.”
“아… 아니, 괜찮아. 나는….”
나는 네 거짓말로도 만족을 해버렸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되겠지.
“그럼 네가 했던 그… 그 말들은?”
“그건… 더스트 씨가 알려줬어.”
“더스트 씨가?”
“비, 비밀이라고 했는데… 매튜 씨랑 해본 적 있다고 했거든….”
“…콘돔은?”
“그건… 매튜 씨가.”
현명한 방법이네. 그렇지?
나도 만족시키고, 은지는 부끄러운 사진 한 장만 찍으면 되는 거니까.
아, 맞네… 두 장. 아무튼.
“이렇게 또 오빠의 부탁을 받으면 계속 오빠를 속여야 하잖아.”
“…….”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오빠가 알게 된다면, 더 많이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
“미안….”
은지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문제는 앞으로 내 망상을 해소할 방법이다.
지난번과 같은 방법으로는… 어차피 은지의 연기일 것이라고 단정을 지어버리면 그만.
조금 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나는….
“…못하겠다는 거라면 내가 더 참아볼게.”
“아, 아니야! 참으면 안돼, 오빠.”
“하지만… 그럼 네가 해야 하는 걸. 매튜 씨와… 섹스.”
지금의 나는 괴로움과 패배감을 원하고 있으니까.
너의 거짓말도 자극적이지만, 적어도 행위만큼은 진짜여야 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나는… 더 심한 망상만 해대다가 결국 망가질 거다.
“꼬, 꼭 세… 섹스를 해야 하는 거야?”
“그럼?”
“다, 다른 것도 있잖아….”
“…….”
뭘 얘기하는 건지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입.
생각을 해보니 내 망상에서 은지가 입을 쓰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나… 오빠를 도와주고 싶은데, 그건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미안.”
“…….”
“그러니까 이, 이거로는… 안될까? 오빠 망상을 잠깐 멈추게 하는 거.”
처음부터 본격적인 행위를 요구한 나는 분명 성급했다.
애무도 없이 삽입을 시도한 꼴이다.
하지만 입은….
“…다음에는 진짜로 할게. 물론 오빠가 원한다면.”
“그래. 입… 괜찮을 것 같네.”
충분히 오싹한 망상이다.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고, 가끔은 입을 맞추기도 하지만….
저 입으로 다른 남성의 자지를 빨아주고 다시 돌아와, 나에게 사랑을 말해주는 것.
나는 모르겠지. 은지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말해주지 않는다면.
“대신 이번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부탁을 조금 더 하고 싶어.”
“뭐, 뭔데…?”
“일단은 적어도 진짜로 했다는 걸 알 수 있게….”
“사진?”
“하고 있는 도중에 찍은… 확실한 사진.”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다.
내 여자친구에게 지금, 다른 남자의 자지를 물고 있는 사진을 찍어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 자지가 아니라 다른 남자의 것을.
“그… 그리고 하나 더.”
“…….”
“하고 돌아와서… 나한테 말해주지 마.”
“…응?”
나는 더 괴로워지고 싶었고, 괴로워져야 했다.
한 번의 펠라치오라는 단조로운 괴로움은 망상을 달래기엔 부족했다.
이전에 얻은 만족이 가짜라는 걸 알아버린 망상을 억누르려면 뭔가 더 필요했다.
차라리 이렇게… 확실한 조건을 걸면 그 안에서만 망상과 괴로움이 커져갈 테니까.
딱 정해준 만큼만 괴로워하겠다고 틀을 짰다.
“내가 맞추게 해. 맞추면… 어땠는지 말해줘.”
“맞추지 못하면…?”
“…마지막에 그만큼 더 하고 와.”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의 자지를 빨아주고 온 날을 맞추지 못할 때마다 횟수가 늘어난다.
이런 한심하고 괴로운 부탁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전에 해소했다고 믿었던 욕망이 다시 밀려와서 내 머리를 박살내기 전에, 괴로워져야 한다.
“기간은… 사, 사흘.”
“…….”
“매일 밤, 자기 전에 내가 맞추고… 은지, 네가 대답해줘.”
“…알겠어.”
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손을 살짝 잡았다.
이번에는 나를 속일 방법이 없을 거다.
만약 이번에도 나를 거짓으로 만족시킬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글쎄.
“…빨리 맞춰줄 거지? 오빠.”
“…그럼.”
아… 나는 글렀다.
완벽하게 해소해서 당분간 볼 일 없을 거라고 믿었던 망상들이 다시 아른거리며 나를 비웃는다.
네 연인과 다른 남자와 짜고 친 연극에 보기 좋게 속았다고.
…앞으로 사흘.
***
첫째 날.
“오늘은 슈트 입고 훈련했어! 몸에 딱 맞는데, 엄청 뛰어다녀도 불편한 부분이 없다?”
“…그래?”
“땀이 나도 안에서 흡수가 되는 것 같아. 아, 전부 다 흡수가 되는 건 아니긴 한데….”
새로운 집에도 나름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부엌도 넓고, 식탁도 넉넉하다.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수다를 떠는 우리의 대화는 평소와 다를 게 없지만….
“…….”
“그리고 더스트 씨랑 말도 놓으려고! 나보다 언니더라. 신기하지 않아, 오빠?”
“…신기하네.”
내 신경은 온통 은지의 입가에 쏠려 있다.
낮에 은지가 훈련을 받으러 간 사이에도 내내 망상에 시달렸다.
내가 어제 스스로 내건 규칙 덕분에 망상은 오직 입, 그 이상으로 넘어가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고, 가슴이 떨렸다.
“…….”
망상 속 은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니지. 말을 할 수 없었다.
턱을 잔뜩 벌린 채로 매튜 씨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으니까.
“…오빠?”
“…어?”
“이제… 10시인데.”
약속 시간, 10시.
어제 내가 부탁한 일에 대해서는 매튜 씨도 협조하기로 했다.
나에게도 따로 연락이 와서 자신의 방법이 불쾌했다면 사과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이거다.
“…….”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은지.
입술을 꼭 다물고 있지만, 몇 시간 전에 저 입술을 벌리고 매튜 씨의 자지를 입에 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꼭 내가 망상에서 꿈꿨던 것처럼, 그 모습 그대로.
“하….”
“…….”
괴롭다. 여자친구를 의심해야 한다는 게.
내가 맞추지 못하면 그만큼 은지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도.
그 괴로움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내 생각에는.”
“으, 응.”
은지라면?
부끄럽고 수줍은 탓에 차마 첫날부터 해내지는 못했을까?
아니면,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자는 생각으로 일찍 해버렸을까?
“하… 하고 왔을 것 같아.”
“…….”
“맞아?”
“…아니야. 오늘은… 아, 안했어.”
아… 아아.
이걸로, 은지가 다음에 매튜 씨의 자지를 빨아야 하는 횟수가 두 번으로 늘어났다.
…괴롭다. 괴롭고, 흥분된다.
망상이 내미는 은지의 모습은… 끔찍하다.
입 안에 사정하는 매튜 씨의 자지를 빼내지 않고 가만히… 목구멍이 꼴깍, 꼴깍- 무언가를 넘긴다.
그리고 사정이 끝나고 나면, 그대로 다시-
“하… 하, 하아….”
“괘, 괜찮아! 아무 힌트도 없었잖아. 그리고 하, 한 번이나 두 번이나 거기서 거기지, 뭐….”
“…….”
“…이제 잘까, 오빠?”
“…그래.”
쉽게 잠들 수 없을 게 분명하다.
나는 내일 밤 10시까지 또 한심한 망상을 해대며 은지를 기다릴 거다.
지금처럼, 사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정도로 괴로운 흥분으로 발기한 자지를 세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