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EP007-이야기
망상 – 피학.
내가 강제로 얻게 된 특성의 이름.
정신적인 괴로움에 이끌리고, 망상으로 그 욕망을 더 커지게 만든다.
하지만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면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지게 된다.
“오빠는 예전부터 운이 진짜 없다니까.”
“그러게.”
나갈 준비를 하면서 은지가 가벼운 장난을 친다.
일부러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다.
“맞다. 어제 슈트 입고 같이 보기로 했는데….”
“갔다 와서 하자. 오늘은 진짜로.”
“…웅. 오늘은 진짜로.”
합의는 끝났다.
처음으로 은지의 상대를 맡을 사람은 매튜 씨로 결정됐다.
아직 얘기를 꺼낸 건 아니다.
은지가 훈련을 위해 나가고 나면 내가 직접 연락을 해서 부탁할 거다.
점점 심해지는 망상을 잠재우기 위해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다고.
내 여자친구를 빌려주겠다고. 그러니… 써달라고.
“…오빠.”
“응?”
“진짜로… 괜찮아?”
이런 상황에서도 너는 나를 걱정하는 거니.
남자친구라는 사람의 부탁으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길 네 처지를 한탄해도 모자랄 판에.
“…그럼.”
“…….”
“은지 너도 못하겠으면 말해. 억지로 하지 말고… 알겠지?”
“…사랑해, 오빠.”
현관문을 열며 은지가 남긴 말, 사랑한다는 말.
문이 닫힐 때까지 은지는 나를 보면서 웃는다.
쿵.
“…….”
어젯밤 침대에 누워서 오늘 아침까지, 은지와 이 일에 대한 몇 개의 규칙들을 정했다.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은 확실하다. 망상보다 더 강렬한 고통과 괴로움.
행위가 끝난 뒤에 나에게 돌아오면 어땠는지 말해줄 것.
거짓과 과정이 섞여도 좋으니… 나보다 더 좋았다는 식으로 말할 것.
반대로 은지가 요구한 것은 더 간단했다.
키스는 하지 않을 것.
행위에도 반드시 콘돔을 사용할 것.
불필요하게 몸을 만지는 일은 없을 것.
사실, 은지가 정한 규칙은 내가 아니라 은지 쪽에서 얼마든지 어길 수 있는 것들이다.
그저 내가 거기까지 요구하지 못하도록 막아 둔 느낌이다.
“후우….”
한숨을 쉬면서 휴대폰을 든다.
지난번에 받았던 명함에 적힌 번호를 입력하고, 전화를 건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매튜 앤더슨입니다. 말씀하십시오.’
“…매튜 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수치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말은 전화를 끊을 때까지 짜릿하고 역겨운 긴장감이 끊이질 않았다는 뜻이다.
빠르게 악화되는 망상, 은지와 나눈 대화와 합의.
가장 믿을 수 있고 협조를 바랄 수 있는 상대가 매튜 씨였기에 해버린 부탁.
묵묵히 내 말을 듣던 매튜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후 은지 양과 상의한 뒤 협조해드리겠습니다.’
덤덤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냉혈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매튜 씨는 제법 상징성도 있는… 말 그대로의 영웅, 히어로였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굉장히 한심하고 추한 부탁을 해버린 거다.
“하아….”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이제 확정을 지을 차례다.
‘매튜 씨랑 전화했어. 알겠대.’
은지에게 짧은 문자를 보내고, 소파에서 머리를 뒤로 젖히며 천천히 심호흡을 들이마신다.
답장은 곧바로 왔다.
‘응. 알겠어’
그리고, 바로 하나 더.
‘사랑해’
***
저녁 8시가 넘었다.
나는 여전히 소파에 그대로 앉아서 다리를 덜덜 흔들며 초조하게 시계만 바라보는 중이다.
망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심장을 터트릴 것처럼 범람하는 기대감이 망상을 짓누른 덕분이다.
“…!”
현관 밖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일어나서 현관으로 다가가자, 발소리에 이어서 문이 열린다.
“오빠!”
“으, 은지야.”
평소처럼, 히어로가 되기 전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웃으며 집으로 들어오는 은지.
신발을 벗기도 전에 와락- 내 품에 안긴다.
따뜻하고 뽀송뽀송한 살결의 냄새가 난다.
…방금 샤워를 하고 온 게 분명하다.
“늦어서 미안. 기다렸지?”
“아니… 괜찮아. 늦는다고 미리 문자 했으니까.”
“어두운데 거실 불 키고 있지.”
“…그, 은지야.”
“웅?”
“어땠… 어?”
아무렇지 않게, 평소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것처럼 행동하는 은지에게 결국 먼저 물어봤다.
은지는 그런 나를 보면서 싱긋, 웃는다.
“그냥 그랬어!”
“…….”
“아, 맞다… 이렇게 대답하면 안되는 거지? 미안.”
조금 속이 울렁거린다.
억지로 밝은 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 말과 실상은 전혀 다를 것 같아서.
“어디서 얘기할까? 오빠 방? 아니면 내 방?”
“…네 방에서 하자.”
“웅.”
겉으로 봤을 때에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다.
약간 덜 마른 머리? 굳이 따진다면 그게 끝이다.
하지만 은지는 분명… 다른 남자에게 따먹히고 돌아왔다.
“일단, 내가 이런 말 하는 거 익숙하지가 않아서… 좀 서투를 수 있어.”
“괜찮아.”
“후아아…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지?”
침대에 같이 앉은 은지와 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던 은지는, 운동이 끝난 시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훈련이 끝날 때에 맞춰서 지부장님이 데리러 왔어. 그리고 오빠가 전화로 한 내용들을 말하더라.”
“…….”
“서로 그렇게 합의가 됐다고 들었다… 자신이 어떻게 도와주면 되냐. 말투는 딱딱한데 되게 친절하게….”
“그리고?”
“얘기가 끝난 다음에 근처 호텔로 갔어.”
은지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아주 약간이었지만 분명한 변화가 느껴졌다.
“거기서… 나부터 먼저 샤워하고, 으, 으음….”
“편하게 말해줘. 거짓말을 섞어도 되니까.”
“…그럼 거짓말도 할 거니까, 너무 다 믿으면 안돼…?”
“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는 거짓말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자극적이다.
“그러니까, 음… 매튜 씨, 덩치가 엄청 크잖아.”
“그렇지.”
“…자지도 엄청 컸어.”
“…….”
마른침을 삼키는 내 눈치를 슬쩍, 본 은지가 작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오빠보다, 좀 더… 아, 아니, 꽤… 꽤 많이, 더.”
“조금만 더 자세하게.”
“자세하게…?”
“…내 걸 보면서 비교해줘.”
바지를 내렸다. 당연히 자지는 이미 발기한 상태.
은지의 시선이 내 자지에 닿는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매튜 씨의 자지를 떠올리고 있을 거다.
“엄청… 길었거든. 한, 이 정도….”
“…….”
“마주보고 서있을 때, 내 배꼽에 자지 끝부분이 닿을 정도였으니까….”
은지의 손이 내 자지 쪽으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내 귀두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가서 길이를 가늠한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차이. 그만큼의 깊이.
“하… 하, 하아….”
“그리고 기둥에 막, 혈관이 톡톡 튀어나와서 돋아나 있었어.”
“계… 계속.”
“…그게, 넣을 때… 안쪽에서 막 벽에 그, 긁히거든…? 그게 엄청… 좋다…?”
나에게는, 내 자지에는 없는 것을 느끼며 기분이 좋았다고 말해주는 은지.
망상은 감히 끼어들 수도 없을 정도의 패배감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여기, 끝부분… 뭐라고 하더라….”
“귀, 귀두.”
“아, 귀두…. 그것도 넓고, 단단해서… 들어올 때 마, 막 후벼 파이는 느낌…?”
“…후. 후우.”
“…그래서, 매튜 씨 자지를 처음에 보고, 으, 음…”
살짝 머뭇거리던 은지가 약간 더 가까이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방금보다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인다.
“살짝… 저, 젖었어.”
심장에서 따끔한 괴로움이 일어난다.
아마… 말하기전에 약간의 망설임과 더듬거림으로 봤을 때 저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라면?
정말로 은지가, 나보다 더 크고, 길고 두꺼운 자지를 보면서 품은 기대감에 본능적으로 흥분을 느껴버린 거라면?
“아, 아무튼! 그 다음에는 매튜 씨가 손으로 조금 풀어줬거든… 자지가 많이 크니까.”
“…….”
“손가락… 처음에는 하나를 넣어서, 부드럽고 느리게 움직이는데….”
호텔 침대에 누워 매튜 씨에게 다리를 벌린 은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망상이라고 하기에는, 그저 이미 본 적이 있는 끔찍한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에 가깝다.
“…엄청 자, 잘하더라고… 매튜 씨. 그래서, 몇 분만에 엄청… 엄청 젖어서, 허벅지까지 번지고….”
“그… 그 다음에는…?”
“그 다음… 이제 콘돔 끼는데, 다 안들어가서 밑에 기둥이… 남더라.”
“…….”
“부끄러워서 뒤로 했거든…? 근데, 처음에 내… 내 보지 입구에 귀두가 닿는데….”
“…….”
“…안보여도, 진짜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
귀두가 보지 겉부분에 닿는 느낌만으로도 내와 매튜 씨의 차이를 몸으로 체감했구나.
오늘 처음으로 해보는 경험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달랐구나.
“그 상태로, 매튜 씨가 천천히 허리를 내리는데… 천천히 귀두가 안쪽을 벌리면서 들어오잖아?”
“…….”
“오빠랑 할 때에도 그게 느껴지는데… 매튜 씨 자지는 그것보다 더… 강하게 벌리고, 넓히고, 채우면서 계속… 들어와.”
“…달랐어?”
“많이.”
“…….”
“숨쉬는 것도 벅차서… 크게 입을 벌리고 겨우 숨을 쉬고 있는데, 매튜 씨가 말했어.”
“뭐라고…?”
“이제 절반… 들어갔다고. 힘 빼라고.”
겨우 절반. 절반을 삽입하는 것만으로도 은지는 버거워했다.
나와 할 때에는? 숨을 쉬기 힘들어하거나 그런 적….
없었다.
“그래서… 갔어?”
“…갔어.”
“얼마나? 어떻게?”
“아까 마, 말한 것처럼… 안쪽을 꽉 채운 자지 기둥에 튀어나온 부분이, 막… 막 벽을 긁는 게 너무… 좋은 거야.”
“…….”
“그래서 안쪽으로 들어올 때마다 자꾸, 자꾸 가고… 근데 자지는 계속 안으로 들어오고.”
나의 연인이 다른 남자의 품에서 처음으로 느낀 절정에 대해서 속삭이고 있다.
…황홀하다.
“매튜 씨가 계속 힘 빼라고 말을 하는데… 가버릴 때마다 힘이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그래도 느리게, 천천히 끝까지 넣었는데… 아직도 난 숨을 똑바로 쉴 수가 없었거든?”
“…….”
“근데 아랫배가 꽉… 진짜 꽉 채워진 느낌 때문에 가고, 또… 가고, 계속 가고….”
“…….”
“그냥 박힌 채로… 가면서, 엄청 부, 부끄러운 소리도 내버렸어.”
“어떤… 어떤 소리?”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다.
망상 속의 은지가 다른 남자에게 따먹힐 때마다 흘리던 저속한 소리.
나는 들어본 적 없지만 망상이 멋대로 그려낸 은지의 모습은… 마냥 허황된 얘기가 아니었다.
“아, 안돼… 부끄러워. 그냥 계속 얘, 얘기 할래.”
“한 번만.”
“…….”
“귀에 대고.”
“…입이, 숨을 쉬려고 벌어진 입이 동그랗게… 오므라들어서….”
은지가 다시 내 귀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입술이 귀에 닿을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은지는 나지막이 신음 소리를 흘려준다.
나 때문이 아닌… 매튜 씨의 자지에 박히면서 처음으로 내본 부끄러운 소리를.
“오, 옥…♡ 하고, 그대로 다시… 가버렸어….”
“하, 아아… 아, 아….”
그래. 내가 망상에서 들었던 소리… 은지가 들려준 적 없는 그 추잡한 신음 소리.
그게 바로 저 소리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