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임신케어사
생각났다.
김도윤 팀장이 내밀었던 마스터 계정과,
그 옆에 적힌 S등급 커뮤니티 접선 정보.
그땐 거부감이 컸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혹시—
혹시라도, 수정이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정수정.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여왔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렸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김도윤 팀장이 준 마스터 계정으로
출산관리국 시스템에 접속했다.
화면이 익숙한 인터페이스로 전환됐다.
내가 만든 UI
하지만 마스터 계정이어서 그런지, 기존에는 보이지 않던 메뉴들이 있었다.
"접속기록 추적 불가... 관리자 권한..."
확실히 무언가 다르다.
나는 그대로 검색창에 일련번호를 입력했다.
잊을 수 없었다.
013372994
수정이의 일련번호
딸깍.
엔터를 누른 순간, 화면이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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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013372994]
이름: 정수정
출생: 출생지 미상. 한빛보육원
나이: 24세
최종학력: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중퇴)
가임여부: 가임
등급: C
자격: 사회복지사 1급
직업: 여성폭력피해센터 근무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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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던 정수정이 여기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자, 혼인 기록이 나왔다.
맨 아래
진태유 — 나였다.
그 아래, 다음 매칭 기록.
[남편명: 이창수]
…그런데,
[상태: 배정일 미출현 → 배우자 측 신고 → 수사 착수 → 배정 거부로 간주]
[위반: 출산관리법 제22조 위반]
[추가: 국가보위법 제3조 위반 혐의 / 반체제 조직 연계 의심]
[현 상태: 3급 수배 / 현재 소재 불명]
“정말… 정한석 말이 사실이었어…”
정수정은,
국가가 금지한 단 한 가지 —
사랑을 선택한 것이었다.
노트북을 덮으려던 순간,
문득 한 이름이 떠올랐다.
이소은.
나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던 친구.
지금도 가끔 떠오를 만큼, 묘하게 잊히지 않는 얼굴.
나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소은 / 영훈고등학교]
딸깍.
검색 결과가 빠르게 화면에 떠올랐다.
---
[등록번호: 013372994]
이름: 이소은
출생: 서울특별시 노원구
나이: 20세
최종학력: 영훈고등학교 졸업
가임여부: 가임
등급: F
직업(배정): 관계흥분케어사
현 근무지: S등급 박현욱(035214620) 전속 상주케어사
결혼이력: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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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는 화면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가임. F등급.
말이 안 됐다.
F등급은 '불임 여성'에게만 내려지는 등급이었다.
그건 고등학교 3년 내내 머릿속에 박힌 상식이었다.
하지만 소은은 ‘가임’ 판정이었다.
불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말도 안 돼…”
이건, 제도의 뼈대 자체를 흔드는 오류였다.
아니면, 고의적인 분류 조작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S등급 남성의 상주 케어사로 일하고 있다.
S등급 남성은 국가가 특별관리하는 인물들이다.
그런 남자 곁에,
불임도 아닌 여자를 F등급으로 만들고 배정한다?
이건 단순한 오류가 아니다.
나는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소은아...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마치,
검은 구멍 하나가 시스템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ㅡㅡㅡㅡㅡ
다음 날 아침.
테이블엔 고소한 된장국 냄새가 퍼졌고, 식탁 위엔 가지런한 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아린은 여전히 알몸으로,
시아는 앞치마만 달랑 두르고 밥그릇을 옮기고 있었다.
“아린아, 국물 좀 더 줘.”
“응~ 많이 퍼줄게. 랑이 오늘 힘 써야 하니까~♥”
시아가 옆에서 콧소리로 웃었다.
“아침부터 무슨 힘?…”
“응? 부장님한테 보고서 제출할 힘~?”
“아, 진짜…”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깔깔대며 반찬을 놓았다.
난 국을 한 숟갈 뜨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시아야, 궁금한 게 있는데.”
“네?”
“여자들… 가임 여부 검사, 어떻게 받아?”
시아가 젓가락을 멈췄다.
“…출산관리국에서 해요. 왜요?”
“그냥… 혹시 산부인과 같은 데서 따로 받을 수는 없나 해서.”
아린이 끼어들었다.
“그거 이제 안 해줘요.
3년 전부터 법 바뀌었잖아요.
가임 판정은 출산관리국 전용 검사만 가능하게 바뀜.”
“…아,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소은은 '불임'이라며 울며 말했었다.
하지만 시스템엔 ‘가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출산관리국의 가임 판정.
절대 바깥 병원에선 못한다.
그럼…
소은은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면, 누가 그 정보를 조작한 걸까?
숟가락을 든 손이 멈췄다.
식탁 위로는 여전히 두 여자의 웃음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ㅡㅡㅡㅡㅡ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소은’ 세 글자를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조용한 숨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소은아. 나야.”
“...태유야?”
순간,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어, 나 지금 잠깐만... 괜찮아. 근무 중인데, 괜찮아.”
“미안. 일하는데 전화했나 보구나.”
“아니야, 너 목소리 들으니까… 좋아.”
그 말에 잠시 말이 막혔다.
소은의 숨결이 작게 들렸다.
“혹시... 만날 수 있을까?”
조용한 정적.
잠시 뒤, 소은이 천천히 말했다.
“지금은 하루종일 여기 붙어 있어야 해…
상주 배정이라 어쩔 수 없어… 미안…”
“그럼, 언제쯤?”
“2주 뒤에 휴가 있어. 그때 쉴 수 있어.”
“그래, 그럼 그때 보자.”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그냥 보고 싶어서 그렇지”
“니가 날 보고싶다고 그러니까 설렌다."
"그래, 그때봐. 다시 전화할께"
“알겠어...고마워. 전화해줘서.”
뚝.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닌것 같았다.
통화가 끊어졌지만,
귓가에 소은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ㅡㅡㅡㅡㅡ
머리가 복잡했다.
수정도, 소은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 모르겠다.”
한숨과 함께 몸을 툭 던졌다.
아린이 말없이 허벅지를 내어줬고,
나는 그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눕듯이 엎드렸다.
“힘들어… 정액고갈이야…”
“히히, 그럴 줄 알았어요.”
아린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등 뒤로는 소은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오일을 바르고, 두 손으로 어깨부터 천천히 풀어준다.
“진짜… 너무 좋다.”
눈을 감았다.
조용한 오후,
느긋한 손길,
하얀 허벅지 위 따뜻한 온기.
이게… 행복이긴 하네.
세상은 개판인데.
“우리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이대로… 뒹굴거릴까?”
아린이 작게 속삭였다.
“좋아요. 여보.”
그래,
오늘은 그냥 이걸로 충분하다.
느긋한 오후가 흘러,
거실 탁자 위에 늦은 점심상이 차려졌다.
“여보, 내가 무슨 레벨인지는 알아요?”
아린의 하얀 앞치마 너머로 드러난 맨살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밥을 씹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안 물어봤네?”
“흐흥.”
아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래뵈도… B레벨이에요.”
“…오.”
“국가포인트도 매달 520만원 나오고요~
임신장려금도 1억 받았어요.
물론 그건 뭐… 등급 상관없이 받는 거지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시아랑 나는 D레벨.
각자 80만 포인트가 전부다.
아. 나도 다음달부터는 C레벨 포인트가 나오겠구나.
"생각보다 훨씬 부자잖아?"
“B등급은요, 임신케어도 달라요.
특별케어라고 해서, 주 1회, 전담 케어사가 16시간 붙어요.
하루 종일 돌봐주고, 마사지도 해주고, 태아관리도 해주고…”
“…그거, 진짜로 그렇게까지 해?”
“응. 진짜요. 근데… 우리 집 좁잖아요?
그래서 그냥 짧은 방문 케어로 바꿨어요.
곧 올 거예요.”
그녀는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내 눈치를 슬쩍 보며 작게 웃었다.
“원래 남자 케어사로 신청할까 했는데…
여보가 질투할까 봐~ 힛. 여자 케어사로 했어요.”
띵동—
“왔나 보다.”
아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앞치마를 정리하며 현관으로 달려간다. 나는 반쯤 누운 채 그 모습을 지켜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방문케어사 이서연입니다.”
맑고 단정한 목소리.
현관문 너머로 들어선 여자는 흰색 유니폼을 입고, 작은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조용히 미소 짓는 눈.
병원 간호사와는 다르게, 살짝 말랑한 분위기였다.
“오, 되게 프로페셔널한 느낌인데?”
“특별 케어사니까~”
이서연은 거실로 들어와 잠시 자리를 정리하더니, 캐리어에서 태블릿과 작은 초음파 기기를 꺼냈다.
“오늘 임신 5주차시네요. 일단, 간단한 초음파부터 진행할게요.”
아린은 자연스럽게 쿠션 위에 누웠고, 나는 뭔가 긴장된 마음으로 그 옆에 앉았다.
이서연은 조심스레 젤을 짜서 아린의 아랫배 위에 도포했다.
“차가워요.”
아린이 움찔하자, 케어사는 조용히 웃으며 기기를 움직였다.
화면 속에 까만 원이 하나,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
“여기, 보이시죠? 저게 태낭이에요. 그리고 안쪽에 동그랗게 보이는 게 난황낭. 지금 시기로는 정상이에요.”
“아기는 아직 안 보여요?”
내가 물었다.
“보통 6주차 넘어야 배아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해요. 오늘은 이 정도면 아주 좋습니다.”
그 말에 아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나는 화면 속 작은 점을 바라봤다.
지금은 단지 작은 점이지만, 이게 우리 깜놀이란 말이지?
“혹시… 심장 소리는 언제쯤?”
“빠르면 다음 주쯤 들릴 수 있어요. 그때 이어폰으로 들려드릴께요.”
옆에서 시아는 부러운듯한 표정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서연은 젤을 닦아냈다.
“그럼 다음은 가벼운 마사지랑 혈류 순환 도와드릴게요. 복부, 허벅지 쪽 위주로 진행할게요.”
소파 위에 얇은 패드를 깐 뒤, 아린은 조심스레 몸을 눕혔다.
이서연 케어사는 얇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손에 따뜻한 오일을 덜었다.
“살짝 따뜻할 거예요.”
아린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케어사의 손이 허벅지 안쪽에서부터 천천히 복부로 올라왔다.
배 주위를 천천히 도는 손끝, 혈류를 자극하듯 원을 그리는 동작.
나는 옆에서 멍하니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은… 잠들어 버릴 정도로 좋아요…”
케어사의 손길은 복부에서 다시 허벅지로, 그리고 천천히 보지 근처까지 이동했다.
아린은 눈을 감은 채 작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제 태아 자극용 약한 저주파 들어갈게요.”
이서연이 배 주위에 작은 패드를 붙이며 말했다.
“이건 아기한테 무해하고요, 임신 중기 이전까진 긴장 완화용으로만 사용돼요.”
이서연 케어사의 손끝이 점점 느릿하게,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저주파 패드는 은은한 진동을 아린의 아랫배에 퍼뜨렸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허벅지를 오므렸다.
"흐읏… 하… 여, 여보… 이상해요…"
아린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고, 배 위로 얇은 한기가 번지는 듯한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서연은 손을 살짝 멈췄다.
"지금 근육 긴장도와 자궁 혈류 흐름이 아주 좋으세요. 자극량 줄일까요?"
"아, 아니요… 지금 딱 좋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린의 손은 쿠션을 꽉 쥐고 있었다. 허벅지 사이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소리가 났다.
"앗… 앗… 안쪽이… 찌릿해요…"
이서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 골반 중심부 압박 들어갈게요. 이건 B레벨 특별 프로그램이라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어요."
나는 옆에서 그 광경을 보며, 숨을 삼킬 수 없었다.
아니, 참을 수가 없었다.
손과 진동이 동시에 파고들고 있었다.
아린은 점점 허리를 들썩이며, 허벅지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흐읏… 안 돼… 나… 진짜 이상해져요… 아기 있는데…"
몸 전체가 떨렸다.
라텍스 장갑을 낀 이서연의 손은
젤과 함께 미끄러지며
아린의 보지주변과 클리토리스를 마시지 하듯 움직였다.
시아도 부끄럽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시아, 너는 왜 빨개져?"
그 순간, 이서연이 조용히 말했다.
"자극이 클 경우, 저절로 반응이 오기도 해요. 임신 호르몬의 영향도 있고요."
하지만 그 말은 그냥 설명일 뿐,
지금 이 상황은… 확실했다.
아린은 내 손을 꽉 잡았다.
"여보… 나… 진짜… 싸버릴 것 같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허리는 갑자기 움찔하며 굽혀졌다.
"아아앗!!"
소리가 새어나왔다.
보지 근처가 움찔, 움찔.
이불 아래로 번지는 촉촉한 흔적이 확실했다.
한참 동안, 아린은 그대로 누운 채 헐떡이며 눈을 감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서연이 장갑을 벗고 차분하게 일어섰다.
"다음은 B레벨 이상에게만 제공되는,
남편분을 위한 부부 마사지, 짧지만 받으시겠어요?"
"...네! 받을래요!!"
내가 소리치며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