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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세번째 아내 (1)


“야, 나왔다.” 정한석이었다. 고등학교 동창. 그리고 지금은 C등급. 족발집 입구에서 허겁지겁 뛰어오던 얼굴은, 예전이랑 똑같았다. 턱 끝에 점 하나, 은근히 잘생겼다는 소리 들었을 얼굴. 그런데… 눈 밑에 다크서클이 거의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야, 태유야. 너 진짜 안 바쁘냐. 씨발 고맙다.” 앉자마자 소주를 따르더니 잔을 밀어준다. 나는 말없이 잔을 받았다. 기름기 흐르는 족발 접시가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한석은 나라를 잃은 표정이었다. 임신 성공했다고, C등급 됬다고, 예쁜 새 아내 얻었다고 잘난척 한게 며칠 전... 그 며칠 사이에, 표정이 죽상이 되어 있었다. “근데… 그년이 싸이코야. 진짜 씨발… 씨발 말고는 말이 안 나와.” 나는 잔을 들었다. 그가 술을 넘기고 나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뱉었다. “처음엔 진짜 얼굴 예쁘장하고 착해 보이더라고. 그리고 내가 두 번째 남편이야. 그래서 골랐지, 씨발. 근데… 밤마다 날 패.” “……뭐?” “진짜야. 손바닥으로 때리고, 채찍으로 때리고… 그래야 흥분된다고. 씨발… 여기 멍든 거 볼래?” 그는 소매를 걷더니, 거뭇한 멍자국을 보여줬다. “미친 거 아냐…?” “아니야. 더 있어. 임신한 첫째 아내도 무섭다고 친정 갔어. 애기 배 안에 있는데, 옆에서 사람이 소리 지르고 난리치니까 못 버티겠다고.” 나는 입에 물었던 족발을 뜯었다. 족발이 왠지 더 맛있었다. “그럼… 이혼 신청이라도—” “씨발아. 그런게 어딨어. 우리나라에..." 그는 또 소주를 들이켰다. “아 씨발… 집에 가기 싫어. 그냥… 여기서 너랑 소주나 마시다 뒤지면 좋겠다.” 그의 눈이 충혈돼 있었다. 그 사이코 여자가 조금 고마웠다. “근데 너는 어때?” 한석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지금 여자는… 어때? 아직도 그 첫 아내 못 잊었냐?” 나는 대답을 바로 못 했다. 그러다, 잔을 손에 든 채 시선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보고싶지. 수정이 누나... 지금 아내는… 잘 모르겠어. 착하긴 해. 나한테 잘해주고, 배려심도 많고… 근데—” “왠지 낯설어. 그냥… 임신이 목적인 것 같아.” “그래서, 안 잤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쳤냐? 야 너 고딩이야? 연애질 해?” 한석이 술잔을 쾅 내려놨다. “지금 한국이 어떤 나란데? 임신이 계급이야, 병신아. 사랑질 같은 소리 말고, 일단 박고 봐야지. 그렇게 존나 한심하게 굴다간 평생 D등급으로 살다 뒤지는거야. 뭐 어쩔건데?” 나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너나 가서 박아. 병신아.” “씨발, 나도 박으려고 했지. 근데 그 미친년은… 나 때려야 흥분된대! 임신이 계급이니까 참아야 된다고? 그래, 참았어. 그랬더니 온몸이 멍이야, 씨발…” 한석이는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너 진짜 안 했냐?” “응.” “하아… 개한심하네. 그 누나는 니가 좋대?” “그건…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병신이지.” 둘 다 말이 없었다. 창밖엔 지나가는 차량 불빛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러다 한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짜 너랑 나, 딱 반대다. 나는 박으려고 했는데 졸라 무섭고, 너는 전처 못 잊어서 못 박고. 결국 둘 다 좆됐네.” 나는 아무 말 없이 소주를 따랐다. ㅡㅡㅡㅡㅡㅡ “뭐하다 이제 와?” 현관을 열자마자 주영이 거실에 서 있었다. 긴 머리는 묶이지 않은 채로 어깨에 흘러내렸고, 입고 있던 건 티셔츠 한 장. “…잠깐 바람 좀 쐬고 왔어요.” “넌 임신 관심 없지?” 그녀는 다가와 눈을 맞추었다. “가임기간 이틀밖에 안 남았어. 근데 너, 그게 뭐 대수냐는 표정으로 말하지?” “그게 아니라…” “그럼 뭐? 내가 비정상이야?” “어제도 하루 종일, 난 최선을 다했어. 니 로션 사고, 니 면도기 사고… 씻겨주고…” 목소리가 흔들렸다. “근데 너, 계속 거절해. 계속 멀리 있어. 내가 그렇게 별로야?” “…아뇨. 아니에요. 그런 뜻은…” “그럼 왜?” 주영은 나를 밀치듯 바라봤다. “왜 아직도 그 첫번째 아내한테 묶여 있는 거야? 그 여자가 그렇게 좋아? 그렇게 대단해?” “…그 사람은…” “그년이 뭔데? 너한테 뭘 해줬는데?” 말이 막혔다. “진태유. 넌 지금 선택해야 돼. 계속 그 여자 생각하면서, D레벨로 살다 죽을지. 아니면 눈앞에 있는 나랑… 남은 이틀, 제대로 시도나 해볼지.” "등급이 그렇게 중요해요?" "중요해.. 가장 중요해." 주영은 등을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 “너.. 좋아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야.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마.” "..."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임신할거야" 문이 닫혔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씨발아, 자지 세워. 나 니 자지 먹고 싶다고.” 수정이 누나였다. 익숙한 방, 익숙한 이불, 익숙한 체온. 그녀는 내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어, 고개를 숙이더니 자지를 입에 넣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입술, 혀끝이 귀두를 살짝 쓸고, 입천장이 고동치는 맥을 감쌌다. “누나… 진짜… 졸라 보고 싶었잖아…” 내 양손이 그녀의 머리를 감싸며 조금 더 깊이 밀어 넣었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빨았다. 입가에 고인 침이 턱을 타고 흘렀고, 그 모습에 자지가 점점 더 딱딱해졌다. “씨발… 누나, 보지 벌려. 누나 보지 내 거잖아.” 수정은 천천히 올라왔다. 그리고, 내 허리를 가르며 위에서 눌러앉았다. 쫀득하게 감기는 질벽. 들어갈 때마다 퍼지는 소리. 몸이 파고들수록 그녀의 얼굴은 더 붉어졌고, 그녀를 다시 되찾은 듯했다. “그래… 태유야… 싸. 나한테, 싸줘…” 그 말과 동시에, 몸 안에서 폭발할 것 같은 전율이 올라왔다. 그런데— 목소리가 이상했다. 수정이 아닌,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현실적인… “그래… 태유야… 싸. 나한테, 싸줘…” 그때 눈을 떴다. 거실. 소파. 천장에 달린 조명. 그리고 내 몸 위에는— 주영이었다. 젖은 머리칼, 흐트러진 숨결,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던 그녀의 손이 내 가슴 위를 짚고 있었다. 내 안에서 무언가 확 식어버렸다. 이건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야. 나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붙잡고, 주영의 골반을 밀어냈다. 그리고 자지를 뺐다. 퍽. 허공을 향해 하얀 정액이 튀었다. 소파 등받이, 바닥, 내 배 위에 흩뿌려졌다. 주영은 멈춰선 채, 그걸 바라봤다. 숨소리도 없고, 말도 없었다. 표정 하나 없이, 그저 젖은 보지를 쥔 채 그대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개자식.” 주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벅지 안쪽에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애액을 닦지도 않고,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탁’ 하고 닫혔다. 그 소리 이후, 남은 건 질척한 정액과, 허탈한 숨뿐이었다. ㅡㅡㅡㅡㅡ 그날 이후로, 우리의 부부관계가 끝났다. 나는 짐 몇 개만 챙겨 호텔로 갔다. 정한석도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씨발, 우리 둘다 졸라 웃겨” 한석의 말에, 나도 웃음이 났다. 술 냄새, 라면, 벗어둔 와이셔츠. 우리 둘의 임시 거처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부를 수 없는 남자들의 쉼터가 됐다. 술먹고 게임하고 폰이나 만지작거리며 우린 그냥… 고장 난 기계처럼 그렇게 시간을 버텼다. 시간이 흐르고, 결혼 종료 전일 알림이 울렸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이 지나면, 이 결혼은 해제된다. 그게 이 나라의 법이었다. 한석은 침대에 누운 채, 눈만 떴다. “갈 거야?” “가야지. 마지막 날이니까.” "그 여자 뭐라고 할까?” “모르겠어.” 두려움보단, 그녀에게 남긴 무언가가 너무 작다는 죄책감이 컸다. 나는 결국,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삐리릭~ 지문을 대고 현관문을 열자, 문앞에 주영이 서 있었다. “오늘, 마지막 가임일이야. …할 생각 있어?” 나를 본 첫 마디 역시, 임신 얘기였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 점수나 잘 줘.” “…” “나 지금 4.9야. 니가 조금만 잘 주면, C등급 될 수 있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섰다. 다음 날, 우리는 이 집에 올 때와 같은 트렁크를 끌고 출산관리국에 도착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짐을 내리고, 출입증을 찍고, 대기석에 앉았다. 임신 검사 결과는 볼 필요도 없었다. 서류를 작성했다. 아내 이름 : 이주영 아내 평가 점수 : 10 / 10 평가 코멘트 :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펜을 든 채 멍하니 있다가, 그냥 빈칸으로 넘겼다. 한 달 전, 그녀의 평가지에 왜 미작성이 그렇게 많았는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로 적을 수 없는 어떤 것. 어설픈 진심. 끝내 다다르지 못한 감정의 끝. 이주영. 내 두 번째 아내는 그렇게, 출산관리국의 긴 복도를 따라 사라졌다. 새로 배정받은 똑같은 구조의 새로운 D등급 주택으로 향해가는 길, 어김없이 출산관리국의 문자가 폰을 울렸다. ㅡㅡㅡㅡㅡ 인구가족부, 출산관리국입니다. 007001272번, 진태유 님. 진태유님의 세번째 배우자가 배정되었습니다. 진태유 님은 D등급이며, 자동으로 시스템에 의해 배정됩니다. 결혼 배정은 오늘부터이며, 결혼 기간은 1개월입니다. 대상자는 20세 여성 D등급 정시아님입니다. 임신과 출산 기록은 없습니다. 결혼배정자의 간략정보는 출산정보시스템에서 본인 인증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바로 출산정보 시스템에 로그인했다. 정시아 / 20세 / D등급 사진에 눈이 갔다. 조용하고 순한 인상. 다크브라운 생머리를 학생처럼 묶고 있었다. 아주 예쁘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예쁘다고 할수도 없는... 상대 남편들의 평가점수 : 없음 상대 남편들의 평가 코멘트 : 없음 점수도 없고, 코멘트도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첫번째 남편이라는 얘기다. 왠지 설레였다. 배정 받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지문인식 시스템에 손을 대자 ‘삐리릭’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풀렸다. 아무 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다. 현관에는 여성용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작은 사이즈. 앞코는 살짝 낡아 있었지만, 신경 써 닦아놓은 듯 깔끔했다. “…먼저 온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실내로 들어섰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고, 주방도, 욕실도 비어 있었다. 안방 문을 열어보았지만, 침대 위에는 이불만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정시아님?" 작게 불러봤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요즘 출산관리국이 집 정비도 안 하나? 지난 부부들의 물건인가 싶어 괜히 혼잣말이 나왔다. 나는 소파에 툭 몸을 던졌다. 작은 체구에 어울릴 듯한 그 신발 한 켤레 외엔, 정말 아무것도 그녀를 느낄 수 없었다. ‘아직 안 온 건가…?’ 짐을 옮기기 위해 트렁크를 들고 안방 옷장 앞으로 갔다. 문을 여는 순간— "…!" 그 안에 누군가 있었다. 작은 몸을 꼭 움츠린 채, 옷장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다크브라운의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고, 양손은 무릎을 꼭 쥔 채였다. 쌍꺼풀 없는 눈이 놀란 듯 나를 올려다봤다. 귀 끝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시아님?”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 죄송해요… 그냥…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서요…” “무서워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처음이라서요… 남자랑 같이 있는 게…” 말을 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러다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려다, 머리를 옷장 벽에 ‘쿵’ 부딪혔다. “앗…!”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괜찮으세요?” “네… 아뇨, 아니, 네… 죄송해요…” 그녀는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귓불까지 벌겋게 물든 채, 조심조심 옷장 밖으로 나왔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그냥 서 있었다. 그녀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거실 방향으로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그리고, 문간에 서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죄송해요. 제가, 좀… 부끄럼이 많아서요…” 그녀는 얼굴을 감싸며, 귀끝까지 벌게진 얼굴로 거실 쪽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나는 옷장 앞에 멈춰 서서, 문득 멍해진 채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야? 졸라 귀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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