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에필로그
에필로그
옷자락이 부쩍 얇아진 여름이었다. 높아지는 기온을 따라 바쁘게 에어컨이 돌아갔다. 어찌나 빠르게 돌아가는지 손에 닿는 물건들이 하나같이 차가웠다.
“이쪽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비서가 서류를 테이블 앞에 놓아 주며 말했다. 하얗고 단정한 손가락이 함께 높인 펜을 집어 들었다. 권해수. 단정한 글자가 빼곡한 서류의 마지막을 완성했다.
“이로써 주주총회도 무사히 마무리되겠군요. 그동안 사모님……. 아니, 천희영 쪽에 붙었던 사람들도 꽤나 난감해지겠습니다.”
비서가 너스레 떨 듯 말했으나, 당사자인 해수의 표정은 변화조차 없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펜을 느릿하게 돌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알고 있을까. 방금 자신이 서명함으로써 몇 명이 목숨을 잃고, 또 얻었는지.
하기야 권성의 이름 아래 가려지는 일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질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를 증명하듯 무심하게 펜을 내려다보는 권해수의 눈동자엔 가릴 수 없는 오만함이 묻어났다.
권해수는 타고나길 결핍되고 비틀린 자였다.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사람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를 주시하게 된다. 그와 얽혔던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회장님께 바로 전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싹한 생각을 털어낸 비서가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이사실 문을 닫았다.
내부에 깊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를 먼저 깬 건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이제 얼추 다 끝난 것 같군.”
그 부름에 해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권성의 이사인 권재찬이었다.
“오늘 중으로 이 사진을 언론사에 넘길 거다. 그럼 그 발악도 잠잠해지겠지.”
그가 그리 말하며 테이블 위로 사진을 내려놓았다. 다정히 대화를 나누는 천희영과 장 기사가 찍혀 있었다. 사모님과 그를 모시는 고용인이라기엔 거리가 가까웠다.
호기심을 보일 법한 사진임에도 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확인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구태여 확인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권재찬이 사진을 다시 거둬 가며 말했다.
“정철환도 확인을 끝마쳤다. 천희영 쪽에서 고용은 물론, 정보까지 흘려 정유월에게 접근하도록 유도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군.”
그가 그리 말하며 테이블에 놓여 있던 태블릿을 해수 쪽으로 돌렸다. 녹화된 영상 속엔 피범벅이 된 사내가 속옷 한 장만 간신히 입은 채 무릎을 꿇고 덜덜 떨고 있었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노, 노름빚이 쌓인 상태에서 도와주신 분이었습니다. 그저, 도, 돈을 주신다기에…….”
촬영을 하던 쪽에서 쿵 하고 묵직한 것을 내리찍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비명을 내지른 사내가 납작 엎드렸다.
“저는 정말 모릅니다. 정말 몰라요……. 그냥 자신이 권성 쪽 사람이라는 것밖에 말해 주지 않았단 말입니다…….”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듯, 정철환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훌쩍이는 그의 앞으로 누군가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핸드폰에서 천희영이 이 모든 건 권해수가 벌인 짓이라며 억울하다 우는소리가 들렸다. 제 눈에 들이밀어진 핸드폰 화면을 본 정철환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요! 이 사람입니다! 천희영! 이 여자가 제 딸을 잡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공식적인 후계 발표가 나기 전까지만 제 딸을 잡아 놓으면 된다고 해서……! 무, 물론 제가 배 속의 아이 몫까지 요구한 건 맞습니다만…….”
권성의 일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정철환의 눈빛이 돌연 바뀌었다.
“제 딸을 불러 주십시오! 권성……. 그래, 제 딸이 권성의 씨를 임신했습니다! 그 아이가 제 딸이라고요! 이름은 정유월인데, 제 딸이 모든 걸 말씀드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권재찬이 화면을 껐다. 제명을 재촉하는 데 도가 튼 사내의 발악을 구태여 볼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이자를 볼 일은 없을 거다.”
“네. 그래야겠죠.”
태블릿을 넘겨받은 해수가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여 영상을 삭제했다. 그러자 뒤이어 천희영이 억울하다며 기자 회견을 하는 영상이 나타났다.
권성 그룹 천희영, “후계자인 권해수는 사이코패스” 충격 발언
자극적인 타이틀에도 해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이쪽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방금 사람을 통해 언론사로 사진을 보냈다. 불륜 사진을 넘겨줬으니, 알아서 조용해질 테지.”
낳지는 않았어도 아들처럼 키울 거라 말했던 천희영은 이혼을 통보받은 직후, 권해수를 사탄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권성 몰래 주주들을 설득해 주식을 그녀의 이름으로 돌렸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부러 자극적인 단어들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마약과 살인 같은 이야기보다도 자극적인 불륜 이슈에 손을 놀리는 집단이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언론사는 권성의 손을 잡았다. 이제 주주 문제와 권해수의 장애 여부는 소리 소문 없이 묻힐 터였다. 정철환을 이용하려던 천희영의 발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수가 납득했다고 생각했는지 권재찬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간 네가 그녀에게 주었던 작품들은 돌려받지 못한다. 그게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유일한 조건이다.”
그녀가 발표한 작품들이 사실 해수의 작품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지금껏 엮었던 것들은 전부 물거품이 된다. 사이코패스라는 천희영의 발언에 힘을 실어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권성의 후계자 자리는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러나 그깟 작품 따윈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해수가 담담히 대꾸했다.
“어차피 그건 수단에 불과했어요.”
“…….”
“쓸모를 다 했으니 돌려받을 필요는 없죠.”
그가 그리 말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쓸모를 다한 것들 중엔 분명 천희영을 비롯한 여러 사람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그런 해수를 지그시 바라보던 권재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회사로 유미선이 찾아왔다.”
“유미선……. 아아.”
기억을 더듬는 듯하던 해수의 입술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유미선. 정유월의 어머니였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모양이더군. 딸이 걱정되니 만나게 해 달라던데.”
“그런 말을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하셨을까요. 직접 찾아오면 되셨을 텐데.”
해수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어느새 펜을 내려놓은 그는 탁, 엄지를 가볍게 튕기고 있었다. 코르크 마개를 따듯 경쾌해 보이기까지 한 손짓이었으나 눈빛은 어딘가 뒤틀려 있었다.
“아직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나?”
“네.”
“어째서지?”
“유월이의 어머니니까요.”
해수가 가볍게 대꾸했다.
유월의 어머니는 딸을 이용해 남편에게서 도망쳤다. 제 딴엔 살 궁리를 찾고 싶었는지, 천희영의 편에 서서 유월의 대학을 강요하기도 하고, 유월의 피임을 신경 쓰기도 했다. 죄책감을 못 이겨 유월에게 진실을 말할까 망설이기도 했다.
태도를 명확히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건 참으로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만둘 수 없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방관자의 핑계가 될 뿐이니. 그런 복잡한 것에 정유월을 노출시킬 순 없었다. 정유월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저뿐이어야 하니까.
해수가 가볍게 엄지를 튕기며 말했다.
“출산이 머지않았어요. 저희로선 배 속의 아기만 생각하기도 바쁜 시기라. 다른 것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
“아이가 잘못되면 못 버틸 거예요. 유월이는.”
그가 그리 말하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 말이 꼭, 정유월을 위해서라도 배 속의 아이는 꼭 살려 두어야 한다는 것처럼 들렸다.
잠시간 해수를 지켜보던 권재찬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재활 치료는 꾸준히 받고 있다고 들었다.”
그가 시선을 미끄러뜨려 해수의 지팡이를 응시했다.
“한 번 망가진 다리니 두 번의 기회는 없었을 텐데.”
“…….”
“후회하지는 않나.”
그 말에 해수는 비스듬히 고개를 비틀어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후회. 후회라. 감정 없이 응시하던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세요?”
해수가 가볍게 덧붙이자, 권재찬의 음울한 인상이 한층 짙어졌다.
“어머니께서 먼저 제안하셨잖아요. 제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다고.”
“……그랬지.”
권재찬의 표정이 한층 음울해졌다.
권씨 집안의 내력과도 같은 뒤틀린 집착은 이미 유명했다. 권충혁은 제 형수를 기어이 아내로 삼았으며, 그의 아들인 권재찬은 제 눈에 든 여인을 곁에 두기 위해 그 집안을 무너뜨렸다.
파멸적인 집착이었으나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도망칠 구멍을 막아야, 품속으로 들어오는 법이니. 사랑은 그다음 아닌가.
그러나 절망을 이기지 못한 권충혁의 아내는 아들을 낳음과 동시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태어난 권재찬의 아내는 아들 권해수를 괴물 보듯 기피했다. 하루하루 아내가 미쳐 가는 걸 알면서도 권재찬은 그녀를 놔주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녀가 조용해졌다. 오히려 해수의 생일을 맞이해 파티를 열고 싶다고 먼저 제안까지 했다. 드디어 순응하나 싶은 마음에 기꺼이 그리하라 했다.
“그때 어머니께서 제게 이런 말을 하셨어요.”
등받이에 몸을 기댄 해수가 유행 지난 삼류 대사를 따라 하듯, 권태롭게 중얼거렸다.
“해수야, 미안해. 더는 못 참겠어…….”
난 자유로워지고 싶어.
처음으로 본 미소. 처음으로 불려 본 이름.
그를 느낄 새도 없이 어머니는 자유를 찾아 기꺼이 몸을 던졌다.
거센 반동으로 힘없이 꺾였던 고개와 출렁이는 탐스러운 머리카락…….
“그때 생각했어요.”
아직도 눈앞에 선한 형상을 따라 하듯 그가 탁, 엄지를 튕겼다.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억지로 가둘 게 아니라, 알아서 돌아오게끔 만들어야겠다고.”
새장 문을 열어 둔 사이, 달아난 새는 목덜미를 물려 죽었다. 감히 자유를 꿈꾸며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아무런 제재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을 심어 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머리에, 가슴에, 세포 하나하나마다 콱 박힐 수 있도록.
“다리 한 짝으로 끝난 셈이니 아쉬울 건 없어요.”
“…….”
“오히려 영원히 유월이의 뇌리에 새겨질 수 있다면 이깟 다리 하나쯤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죠.”
오싹한 말에도 권재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권성가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뒤틀려 있었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그 광기를 고스란히 아들에게 물려준 사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어차피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이야기를 끝마친 해수가 지팡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인지, 그들답지 않게 이야기가 길었다.
“잠은.”
그때 권재찬의 나지막한 부름에 해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잠은 여전히 잘 못 자는 것 같은데.”
그의 시선이 지팡이를 쥔 해수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
“약은 아직도 잘 들지 못하는 것이냐.”
“아…….”
제 손을 내려다보던 해수가 빙긋 웃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할 때마다 강박처럼 행했던 습관이었다. 엄지로 어머니의 사망 순간을 따라 하는 것.
“그러게요.”
가벼운 웃음과 함께 그가 말했다.
“수면제, 마약성 진통제를 아무리 때려 넣어도 도무지 듣질 않으니…….”
“…….”
“꽤 심각하죠?”
해수가 가볍게 웃었다. 시답잖은 농담이라도 하는 양.
“출산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기 얼굴은 보셔야죠.”
가벼운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는 이사실을 빠져나왔다.
기울기 시작한 햇빛이 내려앉은 복도는 아무도 없었다. 절뚝거리며 나아가던 다리가 서서히 온전해졌다.
뚜벅뚜벅. 가볍게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내리치며 내딛는 발걸음이 여유로웠다.
그러다 문득 제 시야를 찌르는 햇빛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렌지빛 태양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빛 사이들로 먼지들이 별 가루처럼 떠다닌다. 해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광경을 조용히 응시했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줄기 희망이라도 되는 듯, 자유를 찾아 떠났다.
하지만 어머니, 당신이 틀렸어요.
자유는 없어요. 처음부터 없었던 겁니다.
“그걸 알았다면 당신도 좀 행복해졌을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린 해수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띵. 엘리베이터가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비춰 주던 한 줄기 햇빛마저 잘라 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발견하자 차갑고 서늘한 눈빛이 작은 온기를 띤다.
부른 배를 쓰다듬던 여인이 해수를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의 연인이며 아내이자, 이제는 가족이 될 자신만의 새.
그 새가 저를 향해 발을 내디딘다. 해수는 지팡이를 잡지 않은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가만히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네가 와야지.
네가 직접 내 곁으로 와야지. 늘 그랬듯이.
멈춰 선 그를 보며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유월이, 이내 볼록한 배를 감싸고선 그에게 다가온다. 그러곤 당연하다는 듯 그의 팔을 잡고 부축한다.
“어른들이랑 이야기는 잘하고 왔어? 다른 말은 없었고?”
순수로 가득했던 눈동자가 오로지 저만을 응시한다. 짧은 시간 동안 저 작은 머릿속에서 떠돌았을 걱정을 생각들이 눈앞에 선했다. 그러자 문득 쓸모없을 것 같아 한편으로 치워 두었던 생각이 견고해졌다.
역시 아이는 하나 더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
하나가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해 그녀의 삶을 붙들어 놓을 것이 필요할 테니.
설사 둘 다 잘못되더라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지만.
정유월은 권해수의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죽음마저 제 것이었다. 완벽하고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명제였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또 무엇이지?
생각을 마친 해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에 입술을 누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아무 일도.”
“…….”
“아무 일도 없었어.”
그 말에 유월의 눈동자에 어려 있던 긴장이 풀어진다. 그녀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발에 자신의 발을 맞춘다.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새장은 열렸고, 여전히 그의 새는 그 안에 있었다.
본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