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35화
35.
그녀가 쾌락에 녹아드는 광경을 집요하게 지켜보던 무혁이 손가락 뿌리까지 밀어 넣었다. 열기가 고인 내부는 낱낱이 헤집어 보고 싶을 정도로 뜨겁고 흥건했다.
하임이 울먹이기 시작할 때쯤, 손가락 개수를 늘리며 좀 더 빠른 속도로 길을 꿰뚫었다.
“하으윽!”
“겨우 손가락 가지고 자지러지면 되겠어요?”
“후으, 이거 너무 이상, 하으응…….”
그 음침한 시골 아재 새끼가 이런 걸 상상했을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혀만 잘라 보낸 건 너무 관대한 처사였나. 눈알을 뽑든, 사지 어디 하나를 더 자르든 했어야 하는데.
그는 앞으로 걸리는 놈은 그 꼴을 면하지 못할 거라 장담하며 어느 지점을 꾹, 눌렀다.
“흐아앗……!”
하임의 허리가 크게 휘며 가슴이 위로 솟아올랐다. 무혁은 뻐근하다 못해 아픈 페니스를 한 손으로 쥐고 사정을 유도했다. 그녀의 교성이 연달아 더 울려 퍼진 뒤에야 기둥에서 정액이 터져 나왔다.
“큭.”
희멀건 액체가 하임의 몸 위까지 흥건히 뿌려졌다. 후우. 무혁은 사정하자마자 다시 차오르는 욕구를 억누르며 그녀에게 묻은 제 흔적을 닦아 냈다. 여러 차례 절정에 오른 그녀의 눈은 곧 까무룩, 잠길 듯했다.
“제, 제가…….”
“가만히 있어요.”
“…….”
본인이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는 걸 뒤늦게 인지한 하임이 눈가를 훔쳤다. 부끄러웠지만 에너지 고갈로 순순히 그에게 몸을 내맡겼다.
역시 군인이어서 그런지 그는 간혹 자연스럽게 명령조를 내뱉곤 했다. 그 무심한 어조엔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과 기세가 실려 있었다.
무혁은 두 눈을 질끈 감는 여자의 흔적을 훔쳐 낸 뒤, 물에 적신 새 수건으로 한 번 더 닦아 주었다.
“흣.”
민감한 부위를 스치는 찬기에 하임이 움찔하자 그가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술을 내렸다.
“신음 내지 마요. 안 그럼 못 참고 밤새 괴롭힐 거 같으니까.”
흡.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하임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또 집에 안 간다고 떼쓰면 되겠어, 안 되겠어.”
그는 꼼꼼하게 닦는다는 핑계로 수건으로 질구를 꾹 눌렀다. 겁이 없는 것도 모자라 괘씸하게 혼자 만족할 대로 만족한 아가씨에게 하는 사소한 복수였다.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어오른 소음순을 쓸자 하임이 아랫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다.
“옷 입혀 줄게요.”
무혁은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하임에게 하나하나 옷을 입혔다. 그녀는 언제 문란하게 굴었냐는 듯 정제된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장 씨 아저씨에 대해 알고 계셨던 거예요?”
“맞아요.”
“대체 어떻게요?”
“비밀.”
“설마 남은 금액 갚아 준 것도…….”
무혁은 침묵으로 시인하며 양말까지 꼼꼼히 신겨 주었다. 하임은 이제 좀 그를 알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몸뚱어리 하나만 건져 놨는데 대체 그 큰돈을 어디서 났단 말인가. 그간 제가 모르는 변화가 꽤 있었던 듯싶었다.
“기억이…… 돌아오고 계신 거죠? 그래서 슬슬 떠날 준비하시는 거예요?”
조심스레 건네는 질문에 무혁이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번엔 내가 너 구했잖아.”
“…….”
“이왕 남자한테 인생 저당 잡힐 거면, 그 노땅 새끼보단 내가 훨씬 더 낫죠?”
“네?”
“내가 좋다며. 죽을 뻔한 놈 살려 놨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계속 책임져 봐요. 후회하지 않게 해 줄 테니까.”
하임은 외계어를 듣는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 * *
“오늘은 여기까지만 캐요.”
“아직 좀 더 캐도 돼요.”
“손 얼었잖아.”
그날 후로 무혁은 대놓고 하임을 따라다녔다.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뿌리를 다 끊어 먹은 뒤론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것에 그쳤다.
하임이 만류해도 거만한 보초병처럼 팔짱을 끼고 서 있다가, 뭔가 캤다 싶으면 바로 자루를 들이밀었다. 그러다 수확량을 채우고 나면 빽빽한 나무 사이로 끌고 가 그녀의 입술을 쪽쪽 빨아 댔다.
마치 제 소유라는 걸 반복해서 각인시키려는, 집요한 짐승의 의식 같았다. 하임은 속절없이 그의 질척하고 사나운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녀가 한 발 물러서면 그는 두 발 다가왔고, 고개를 돌리면 시야를 가로막았다. 무심한 듯 다정한 말투에는 물러설 기미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하임은 무혁의 방식이 보호인지 통제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그를 따랐다. 하나 확실한 건, 그의 곁에 있으면 불안이 줄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든든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외로움이란 감정을 애써 외면해 왔다는 걸 깨달았다.
무혁은 이런 하임의 마음을 눈치챘다는 듯 행동했다. 하임이 먼저 말을 꺼내길 바라지도 않았고,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다. 대신 당연하다는 양 곁에 있었고,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자신을 두었다.
조용하지만 노골적으로 제 집착을 드러낸 것이다. 도망칠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 방식이었다. 하임은 매일 지속되는 긴장과 설렘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오늘도 두 사람은 하임의 입술이 부르트기 직전까지 혀를 섞고 입술을 문댔다. 나란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자 봉주가 주방에서 칼날을 갈고 있었다.
“…….”
봉주는 당장이라도 무혁의 면상에 칼을 꽂을 것처럼 쏘아보았으나, 그는 조금의 타격도 받지 않았다. 무혁을 통해 하임의 채무와 장 씨의 행태에 관해 알게 되었음에도 봉주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화를 낼 법한데도 그저 입을 다물었다.
무혁은 그렇게 봉주를 지켜보고 파헤쳤다. 노인의 말투, 침묵의 길이, 시선을 피하는 타이밍 같은 사소한 것들을 머릿속에 축적했다.
임봉주는 일부러 욕지거리를 달고 사는 인간이었다. 투박한 말투와 성질 더러운 노인네의 껍데기는 가장 손쉬운 위장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경계하기보다 피했고, 피하는 만큼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시선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시선을 통제하는, 오래된 수법이었다.
하지만 ‘진짜’ 임봉주는 달랐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판단을 늦추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가장 먼저 침묵을 택하는 인간. 분노도 연민도 계산의 끝에만 남기는 타입이었다.
하임 앞에서의 거칠고 소란스러운 태도조차, 손녀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위치에 두기 위한 연출에 가까웠다. 그 껍질 아래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터였다. 함께 산 세월이 가장 긴 하임조차도.
무혁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진짜 얼굴을 끝까지 숨길 줄 아는 인간. 같은 세계를 살아온 자들만이 공유하는 냄새가 있었다.
봉주는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은 허락에 가까웠다. 하지만 칼을 갈던 손이 멈추지 않는 한, 판은 아직 유효했다. 그의 저런 행동은 늘 지켜보고 있다는, 그러니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무혁은 칼날이 내는 건조한 마찰음을 듣는 동안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어쨌든 암묵적인 규칙을 만든 집주인이 자신을 밀어 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이곳에 있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혁은 폐분교에 누군가 침입했던 흔적을 발견하고 눈을 치켜떴다. 하여 그는 그날 밤부터 매복에 들어갔다. 폐분교로 향하는 접근로마다 흔적이 남을 만한 지점을 골라 작은 덫을 설치했다. 건드리는 순간 제가 알아챌 수 있도록.
마침내 불청객이 또 한 번 입질을 보내온 순간, 무혁은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은신한 채 기다렸다.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춘 채 그림자 사이에 몸을 숨겼다.
긴장이 가득 담긴, 낯설고 조심스러운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무혁의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갔다. 그는 사냥감이 제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그의 손이 어둠을 찢으며 상대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목덜미를 찍고, 팔꿈치를 꺾고, 체중을 실어 바닥으로 눌렀다. 기술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연속 동작이었으나 상대는 어떠한 반항도 하지 못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젊은 남자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손목이 등 뒤로 꺾인 자세로 숨이 막힌 듯 짧은 신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