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16화 16화


16화 욕실에서 나온 테즈만은 무척이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거칠게 가운 끈을 동여맨 그가 침대가 아닌 서재로 향했다. 며칠 내내 천푸 구역을 들쑤시느라 그런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와인 한 잔으로 두통을 잠재울 요량으로 서재의 문을 열었던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르로이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르로이.”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그를 보며 르로이가 입을 뗐다. “죄송합니다. 급하게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와인셀러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가 르로이를 향해 계속 말해보라는 듯 눈짓했다. “수녀님께서.” 수녀라는 소리에 와인셀러로 가던 그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말은 그의 두통을 단번에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누가? 수아? “다시.” 르로이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크게 동요하는 테즈만은. 르로이가 침착하게 다시금 말을 내뱉었다. “수녀님께서 한국에...” 르로이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대로 돌아선 테즈만이 제 방으로 향했다. 그의 목적지는 분명했다. 드레스룸으로 가서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옷을 집어 들었다. 고작 며칠 바쁘다고 가지 못했더니. 찰나 동안 그 예쁜 머리로 도망갈 궁리를 했다니. 진즉에 그래야 했다. 그녀의 마음 따위는 상관없이, 저택으로 데리고 와서 감금하고 저만 바라보게 해야 했다. 옷을 입은 채 선 그를 바라보며 르로이가 입을 열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한기에 수아가 몸을 떨었다. 내일 아이들이 떠나서 그런 걸까. 뒤숭숭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차피 잠은 다 잤겠거니 하며 침대에서 일어난 수아는 일찌감치 성당으로 향했다. 예전에 아네스 수녀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잠든 아이들 옆에 있어 주기 위해서였다. 완연한 봄이었다. 돌길 주위로 가득 핀 꽃들과 새벽 내음이 뒤섞여서 나는 향이 무척이나 좋았다. 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흥얼거리며 돌길을 걸어가던 그녀의 뒤로 나지막한 저음이 들려왔다. “수녀님.” 우뚝, 하며 멈춘 발걸음과 함께 수아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뒤로 향했다. 온통 검은 것들 사이로 금색의 눈동자가 마치 짐승처럼 번뜩였다. “... 테즈만?” 느릿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위협적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서.” 이윽고 눈밖에 보이지 않던 그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위압감이 서린 얼굴 위로 분노가 꿈틀댔다. “직접 물어보려고 왔는데.” “뭐를….” “돌아간다면서.” 어떻게 안 걸까. 빈첸시오 신부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그가 알고 있다. 숨긴 사실을 들켰다는 듯 움찔하는 수아의 모습을 보자 그의 반듯한 미간에 줄이 갔다. “정말인가 봐.” “아….” 지독하게 내려앉은 저음에 수아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덜컥, 다가온 그가 수아의 허리를 팔로 휘감았다. “테, 테즈만...!” “어떻게 돌아갈 생각을 했을까.” 수아의 등 뒤를 단단하게 받친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난 돌아가게 할 생각이 없는데.” 돌아가다니. 오히려 제 옆에 묶어놓고 평생을 저만 보게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어요? 나한테서?” 수아를 향해 묻는 사나운 표정 뒤로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수아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그게...” 단호한 시선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채근했다. 그 시선에 파르르 떨리는 붉은 입술이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제 마음이 제대로 전해질까. 고민하는 수아와 달리 테즈만은 이미 인내심이 바닥이었다. “내 진심이 우리 수녀님한테는 무척이나 가벼웠나 봐.” 이대로 범해버릴까. 그녀가 그토록 경배하는 성당 앞에서 범한다면 모든 걸 놓아버리고 말리라.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차라리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를 제 옆에 붙잡아놓고 싶었다. 그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수아가 조심스럽게 그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마치 진정하고 제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것처럼. “...무서웠어요.” 무서웠다고? 고개를 젖히며 그가 짧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처음부터 피를 보여주지 말 걸 그랬나. 그때, 십자가를 머리에 박아 넣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박아넣을걸. 그래도 다정하게 대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저답지 않게 온갖 생각을 다 하는 것보다 차라리 물어보는 게 빨랐다.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그의 시선이 비스듬히 수아를 향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우리 수녀님은.” 비아냥대는 듯한 어조에 수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 아담과 이브 이야기 알아요?” 아담과 이브. 신을 믿지 않는 그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신이 창조했다는 최초의 남자와 여자. 테즈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행복하게 살고 있던 두 사람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신께 벌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 맑은 눈망울이 마치 거울처럼 그를 비췄다. “테즈만은 내게 그런 존재에요. 선악과를 내밀며 유혹하는 뱀 같은 존재.” 수아가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단번에 부숴버릴 수 있는 뱀 같은 존재. 그의 유혹에 흔들리면 신께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도, 타락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더 무서웠다. “내 존재가 수녀님한테 뱀이라고?” 절박한 수아와는 달리 그는 느긋하게 실소를 터트렸다. “공교롭게도 내 별명과 같네요.” “... 별명?” “파바드 가의 뱀. 모두가 날 그렇게 불러요.” 그의 왼팔을 휘감은 검은 뱀의 타투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일이든 교묘하게 휘두르며 제 입맛대로 바꾸기 때문인지. 테즈만의 별명은 뱀이었다. 그 유명한 파바드가의 뱀. 그리고 그는 그 별명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어쩌지. 처음으로 그 별명이 좋아질 것 같은데.” 그녀를 타락시킬 수 있는 존재가 뱀이라면, 기꺼이 그 뱀이 될 수 있는 테즈만이었다. “... 하.” 붉은 입술 사이로 아스라이 퍼지는 작은 숨이 그에게 닿기 전에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마저도 아쉬운 것인지 그가 수아를 향해 더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수녀님.” 그녀의 숨마저 삼켜버리겠다는 듯 그가 속삭였다. “얌전히 타락할 준비를 해요.” 더운 숨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그동안 억눌렀던 그의 욕망이 모두 담긴 숨이었다. 뱀처럼 그의 혀가 꾹 다문 그녀의 입술 위를 느릿하게 훑었다. 마치 기어가는 것처럼. 차마 숨도 터트리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입술을 벌렸다가는 그대로 그가 들어올 것 같아서. 입술을 꾹 다문 채, 붉어진 눈매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수아를 보자마자 그의 하복부로 피가 몰렸다. 애초에 유혹하는 건 그가 아니라 수아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순진한 눈망울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테즈만은 끓어오르는 욕망을 꾹 눌렀다. “미안하지만 수녀님. 계속 여기 있어야 할 거야.” 대신 수아만큼이나 저도 그녀를 뒤흔들어놓을 생각이었다. 뱀이 유혹을 그렇게 잘했다고 하니, 기대만큼 부응할 생각이었다. 수아의 귓가로 입술을 움직여서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안 그러면 내가 그 작은 나라까지 쫓아갈 거 같거든.” 발갛게 물든 귀 끝을 물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정말로 도망갈 것 같았다. “내가 직접 간다면 그땐 데리고 와서 내 저택에 감금해 놓을 거야. 평생. 나만 볼 수 있도록.” 대신 입술로만 슬쩍 붉어진 입가를 물었다가 놓았다. 흠칫하며 수아의 몸이 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는 참지 못하고 그가 다시금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췄다. “협박… 인 건가요?” “네. 그러니까 잘 생각해요.” 부디 그 생각의 끝에는 제가 있기를. 테즈만의 입술 끝이 유려하게 휘었다. “수녀님만 보면 개처럼 발정하게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수아의 허리를 잡고 있던 그의 손이 천천히 떼어졌다. “내일 또 봐요, 수녀님.”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돌아서는 테즈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히려 미련이 남은 것은 그녀라는 것처럼. 조금 전까지 그의 온기가 느껴졌던 허리가 허전했다. 마치 원래부터 그의 손이 함께 있었던 것처럼. “하.” 작게 내쉰 숨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미 그의 손에서 선악과를 받아들였음을 이제야 깨달은 수아는 포기한 듯 눈을 감아 버렸다.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