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season1. 121. 엄마(4)
season 1
121. 엄마(4)
김정희는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만 동그랗게 떴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동장은 능글맞게 웃으며 이죽거리듯 말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래?”
그는 평소에도 음흉한 시선으로 김정희의 몸 곳곳을 더듬고는 했었다.
그녀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땅딸막한 배불뚝이 중년의 비릿한 시선이 몹시 불쾌했지만, 사업상 많은 도움이 되는 인물이기에 그냥 모르는 척 적당히 넘겨왔다.
사실 어려서부터 늘 겪어왔던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나이가 많고 적고는 상관없이 사내들의 비릿한 시선은 항상 자신의 풍만한 가슴에 닿아있었다.
그렇기에 동장의 저질스러운 눈빛 따위는 그녀의 기분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것들과는 결이 달랐다.
그래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뭐가 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 김정희의 혼란스러움과 상관없이, 동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바짝 붙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이번에 재개발 건, 김 사장 부동산에 큰 거 좀 맡기려고 하는데, 어때, 싫어?”
“……!”
그 말 한마디에 김정희는 흠칫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의 모든 부동산 관련 사업자들은 구청의 도시개발과 재정비 사업에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며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또한 그와 관련해서 김희창 동장의 역할이 꽤 크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김정희는 돈 귀신이다.
그런 그녀에게 조금 전 동장이 한 말은 사실 여부를 떠나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미끼였다.
다만, 당장의 상황은 일단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놀란 표정을 얼른 지우고 배시시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갑자기 이러니까, 너무 놀라서 오줌이…. 잠깐 화장실좀.”
“아.”
여자가 직접 소변을 언급하는 데 억지로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동장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쓰며 김정희를 겨우 놓아주었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시는 사내의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김정희는 화장실에 가 변기 뚜껑을 내리고 앉아 놀란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있었다.
하아아.
연거푸 한숨만 나왔다.
“미친년들. 평소에도 2차 가고 3차 가서 이러고들 놀았던 거지.”
평소 젊은 영계들이 어떠니 하던 말들이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저들이 어떻게 놀던 관심 없었다.
그저 자신을 이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것이 괘씸했다.
왜 자신까지 이런 지저분한 놀음에 끌어들이는지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이게 어디 보통 일이던가.
이 정도 일에 끌어들이는 데 사전에 귀띔이라도 해주던가, 의견이라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그쯤 미치자 문득 그간의 대화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 언니가 제일 팔자 좋은 거야. 애들 다 키워, 나이도 한창때야, 돈도 많아.
- 난 쟤 돈이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 남편이 없다는 게 제일 부럽다.
- 그렇기는 해. 근데 언니, 그보다 난 정희 젖가슴이 그렇게 부럽네? 나도 저렇게 브라자를 가득 채워봤으면….
- 그렇게 따지면, 나도 정희 언니 부러운 거 있는데. 큰아들. 얼마나 멋있어? 까르르르.
무슨 말을 하든 대화 중에 꼭 한 번은 나오는 레퍼토리였다.
김정희는 그게 자신을 놀리며 웃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부 지금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말들 같았다.
“다들 정말 미쳤네. 미쳤어. 으이구!”
김정희를 포함한 다섯 명.
같은 상가에 이웃해서 장사하는 여사장들이다.
옷 가게, 커피숍, 호프집, 그리고 노래방.
업종은 다 달랐지만 비슷한 또래여서 오랜 친구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일종의 친목 모임처럼 정기적인 자리를 만들었는데, 점차 그 관계가 깊어지며 불륜을 공유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나저나, 어쩌지?”
김정희는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데, 동장이 말한 재개발 관련한 이권 문제가 자꾸 결정을 머뭇거리게 했다.
그렇다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고 뭘 하겠나 싶었다.
허벅지 더듬는 정도라면 과감히 희생하겠으나, 그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니라는 건 너무도 자명했다.
구석에서 농염한 키스를 나누던 막내 지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젖가슴을 주무르던 남자에게 기대 콧소리를 내던 화란이도.
‘지금 돌아가면….’
허벅지를 쓰다듬던 동장의 손이, 그의 비릿한 눈빛이, 음흉한 목소리가 전율을 일으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서리칠 만큼 싫으면서도 몸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야릇한 흥분감이 들었다.
아랫배가 시큰해지며 질이 촉촉하게 젖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묘한 흥분감 끝에 아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 엄마의 외로움, 내가 채워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
동시에 아들의 뜨겁던 손길과 숨결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부르르.
김정희는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미친년. 아우, 미친년!’
결국 언제나처럼 자책으로 미련을 떨쳐냈다.
그런데 그때였다.
기이이.
철컥.
화장실 문이 닫히고, 바로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있는 여자 화장실 옆, 남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가벽으로 남녀 칸만 나눠놓은 화장실이라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주 잘 들렸다.
“어머, 어마, 잠깐만요.”
“잠깐은 무슨 잠깐.”
익숙한 남녀의 목소리에 김정희는 습관처럼 얼른 손을 들어 제 입을 틀어막았다.
‘화란이? 정태영 차장?!’
화란은 지금 있는 노래방 주인이자 동갑내기 친구였다.
서울 용산에서 사업을 하는 잘생긴 남편과 금술 좋은 여자다.
아직 어린 두 딸은 시댁에서 거의 다 키워주고 있었다.
남들이 볼 땐 부족한 게 하나 없는 친군데.
‘왜 굳이 저딴 유부남과….’
화란이와 함께 남자 화장실로 들어간 사내는 주택공사 실무 차장인 정태영이다.
40대 중반으로, 외모부터 성격 등 모든 게 평범한 남자였다.
왜 그런 친구들, 반에 하나씩은 꼭 있지 않는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전혀 없는 친구들.
정태영이 전형적인 그런 타입이었다.
누가 봐도 재미없고 무뚝뚝한, 딱 공무원 그 자체였다.
‘뭔가 약점이라도 잡힌 걸까?’
그만큼 화란이가 그에게 끌릴만한 매력이 딱히 없었기에, 그녀의 선택에 의문이 짙었다.
흐음.
으응.
하아.
눈앞에 어떤 장면이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여러 소리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런저런 생각들이 어느새 빠르게 증발했다.
김정희는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며 옆 화장실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아앙, 거긴 안 돼.”
콧소리가 잔뜩 묻어나는 화란의 목소리는 거부가 아닌 앙탈이었다.
남자는 그런 앙탈에 잔뜩 달아오른 듯, 서둘러 버클을 풀고 바지를 내리는 소리가 급하게 들렸다.
그리고,
“하응!”
턱.
벽을 짚는 소리와 동시에 화란의 신음이 적나라하게 울렸다.
김정희는 속으로 ‘어머어머’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곧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소리가 연이어 들리기 시작했다.
찰싹.
“아윽, 아, 아파요.”
짝!
찰싹!
“아, 아프다고요.”
숨죽여 듣고 있던 김정희는 지금 저 벽 건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금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엉덩이? 아닌가? 어딜 때린 거야?’
김정희가 펼쳐놓는 그림 속에서 두 사람은 이미 삽입 상태였다.
일명 벽치기 상태.
그런데 갑자기 맨살을 때리는 소리가 연거푸 울렸다.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 듣기로 성행위 중 어느 정도의 가학이나 피학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화란이의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서로 알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중에, 남자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렸다.
“아파?”
“네, 정말 아파요.”
이유 모를 심란함을 느끼던 정희는 아프냐고 묻는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에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아니나 다를까.
철썩!
퍽!
“악!”
쾅.
김정희는 마치 자신이 맞기라도 하는 것처럼 변기 위에 앉은 채로 몸을 웅크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진 장면은 섹스 현장이 아닌 폭력 현장이었다.
‘분명, 아직 삽입 상태일 건데….’
이번 소리는 주먹질이었다.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고, 화란이는 그 주먹에 맞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벽에 머리나 얼굴이 부딪쳤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다시 또 장면이 바뀌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읏!”
“더 소리 질러. 더. 으음.”
철떡, 철떡.
찌걱.
턱, 턱, 턱, 턱.
남자가 열심히 허리를 움직여 박아대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떡 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이어졌다.
하응.
흥.
아읏!
김정희는 혼란스러웠다.
남자도 남자지만, 화란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처맞으며 아프다고 울먹일 땐 언제고, 지금은 또 쾌락의 신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전부 돌았어. 하아.’
김정희는 더 이상 그들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서둘러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후우우.
화장실에서 적당히 멀어지고서야 그녀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리고 미뤄두었던 결정을 내렸다.
‘집으로 가자.’
지금은 우선 피하고 보는 게 옳았다.
이권은 나중 문제다.
일전에 지숙이가 호빠라는 곳에 가서 놀았다는 얘길 들었을 때는 미쳤냐고 나무라면서도 속으로는 약간의 호기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자리는 피하는 게 맞았다.
아무리 외로워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정희는 김희창에게 둘러댈 핑계를 정한 후 소지품을 챙기러 룸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