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2부 79화 - 야한 촉수 괴물.
나와 엘피는 눈앞에 펼쳐진 이 기괴한 현상을 정확히 특정 할 수 없었다.
물론, 굳이 따진다고 한다면 다중 균열이라고 해야겠지. 여기는 균열 속이고, 균열 속에 생겨난 또 다른 균열이니까.
그러니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이 상황을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만… 문제라면 저 엘프 둘도 이런 기현상은 난생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 현님.”
“어…”
“제가 나름 이 일 오래 햇슴니다만 이런 건 첨임다. 머라고 해야 할까요 이걸…?”
“…”
그러게…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이걸? 균열들이 모여 있으니까 균열 군집… 이라고 해야 하나?
한 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가 좁은 공간에 모여 있으니 굉장히 기괴한데, 아까 그 한센이라는 놈이 한 말도 있어서 그런지 괜히 더 찝찝한 기분이었다.
(균열이 심상치 않다는 게… 설마 이런 걸 뜻하는 말이었나?)
“… 일단 셋 다 뒤로 가 있어. 다우저로 하나씩 체크부터 해 볼 게.”
“오케이. 그러면 나는 바로 썸내일 찍어야징~”
“야, 뒤로 가 있으라고. 내가 방금 하는 말 못 들었냐? 어?”
“아니… 저 뒤에서 찍으면 되잖아. 어이가 없네.”
“…”
하… 진짜 저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
진짜 마음 같아서는 마빡에 딱 밤을 한 대 갈겨주고 싶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엘피는 허물 벗듯 겉옷을 훌러덩 벗었고, 동시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파격적인 패션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살타씨 멈니까 그 옷? 너무 야한거 아님까?!”
“흠흠… 앞으로는 유튜브 썸내일에 좀 더 힘을 주기로 했거든요. 어때요? 괜찮죠?”
“그… 괜찮기는 함니다만…!!!”
“…”
이쁘다도 아니고 그냥 괜찮다고 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들어온 불린의 옆구리 지건에 라가의 말이 일 순간 끊기고.
나는 괴로운 듯 헉헉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참으로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엘피 이 망할 노예 놈은 그새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엘피!!”
“응? 나 여기 있는데?”
“야, 내가 균열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지? 어?!”
“뭐 어때? 어서 와서 나 썸내일 찍는 거나 도와 줘."
“하… 썸내일 같은 소리 하네…”
“칫… 뭐, 좋아. 그러면 거기 그렇게 멍 하니 서 있지만 말고. 자, 여기 카메라나 들어.”
“…”
떠 넘기듯, 카메라를 내게 건네는 엘피.
그러더니 이쁘게 잘 찍어 달라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포즈를 잡기 시작하는데... 어휴. 보는 내가 다 낯 부끄럽네 시발.
“…”
“뭐야? 왜 말이 없어? 잘 찍고 있지?”
“하… 그래, 잘 찍고 있어. 그런데 꼭 상체를 아래로 내려야겠니? 가슴 다 보이는데?”
“참나… 이 정도 파인 걸로는 안 보이거든? 그리고 이렇게 까 줘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어?”
“무슨 말이야 그게…”
“됐고, 어서 부지런히 찍기나 해. 그리고 휴대폰도 나한테 주고.”
“…?”
휴대폰? 휴대폰은 갑자기 왜…?
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달라고 하니 줬는데… 한다는 짓이 자기 셀카 찍어서 건네주는 건 진짜 보법이 다르긴 하네 시발.
“이쁘지? 잠금 화면이랑 바탕 화면 그걸로 바꿔. 저녁에 바꿨는지 안 바꿨는지 검사한다?”
“하… 알겠어. 알겠으니까 이제 옷이나 입어.”
“아 왜~ 아직 덜 찍었는데…”
“야, 말 들어라? 어?! 어서 옷 입으라고. 그리고 저거 비싼 옷인데 바닥에 두면 어떡해?"
"응? 아... 맞네. 눈앞에 옷걸이가 있는데..."
"...?”
옷걸이? 시발 지금 나 보고 옷걸이라고 한 거냐?
아주 그냥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엘피는 싱글벙글 웃으며 옷이 떨어져 있는 균열 근처로 걸음을 옮기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옷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힌 엘피의 뒷편으로 보이는 옥에 티를. 미쳐 발견하지 못한 이질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 뭐지?)
“…”
일렁인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지만 저건 확실하게 일렁이고 있다.
물론, 원래 균열이라는 것은 일렁이며, 일그러지고. 동시에 빨려 들어 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저건 뭐랄까. 너무…
- 주의.
- … !!!
본능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그 찬라의 순간. 찢어진 공간의 일렁임 속에서 검은 촉수 같은 것이 튀어 나와 옷을 입고 있는 엘피를 덮치는 미래가 보이고.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떨어지라며 소리쳐 보지만 이미 늦었다.
“젠장…!!!"
엘피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동시에 나는 본능적으로 눈앞의 미래를 향해. 어두운 균열 속으로 사라져가는 엘피의 편린을 따라서 있는 힘껏 몸을 던진다.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도, 섬뜩한 검은 심연의 공포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런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엘피를 향해서, 마치 하수구를 연상 캐 하는 터널을 따라 흐르는 비명 소리를 쫓아 필사적으로 달리며 소리친다. 하지만…
“끼야야아아아아악!!!!!!!!!!!!!!!!!!!!!!!!”
“엘피…!!”
점점 멀어진다. 엘피의 비명 소리도, 촉수에 끌려가는 다급한 실루엣도 점점 흐릿해져만 가고.
나는 어떻게든 눈 앞의 엘피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어 달려보지만, 바닥에 자박하게 깔린 물이 모래 주머니처럼 자꾸만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탓에 쉽지가 않다.
젠장… 이대로 가다가는…!!
“알트…!!!”
- 리미트 해제 확인. 하지만 사용자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뭐?! 왜?”
- 첫째. 그런식으로 무작정 달려들면 사용자 뿐 만이 아니라 엘피도 다칠 겁니다. 그리고 둘째. No. 122543 멜로우 콜리는 야한 몬스터이지 위험한 몬스터가 아닙니다.
“…?”
야한 몬스터? 시발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존나 당황스러운데… 그 순간 계속해서 멀어져 가던 엘피의 비명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어느덧 이 하수구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나는 천정에서부터 내려오는 은은한 빛을. 동시에 그 아래에서 수많은 촉수들에게 실시간으로 제압 당하고 있는 엘피를 발견한다.
그것도 그냥 제압 당하는 게 아니라, 존나 야하게 말이다.
“주인님! 나 좀 도와줘!! 기분 나쁘게 촉수가 옷 사이로 으읏…!!!”
“…”
무슨 야애니처럼, 촉수가 엘피의 옷 안에서 꿈틀 거리는 광경.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제서야 안도감과 한심함이 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한숨만 쉬지 말고 빨리!! 속옷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단 말이야…!!!”
“야, 내가 위험하니까 균열 쪽으로 가지 말라고 했지? 응?"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팬티… 팬티 내려간다고! 뭔가 끈적한 게 막…!!!”
“… 알트. 어딜 공격해야 하지? 촉수를 하나씩 다 끊을까? 아니면…”
“…”
저건가? 뭔가 큰 항아리 같은 곳에서 부터 검은 촉수들이 쭉 연결되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있는 힘껏 망치로 내려 치자, 촉수가 쏟아져 나오던 항아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엘피를 휘감고 있던 불순한 것들이 일 순간 증발하듯 사라지기 시작한다.
- … No. 122543 멜로우 콜리 퇴치. 수고하셨습니다.
“…”
상황 종료를 알리는 알트의 한 마디에, 온 몸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
어찌 됐거나 별일 없어서 천만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어?!!
“… 야.”
“으… 으응?”
“너 때문에 진짜 온 몸에 진이 다 빠진다… 이렇게 끝나서 다행이지 만약 위험한 몬스터였으면 어쩔 뻔했어? 어?”
“미안…”
“…”
미안한 듯, 어딘가 멋쩍은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하는 엘피.
마치 죄 지은 강아지를 연상캐 하는 그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목 젖까지 차오른 잔소리를 한숨과 함께 삼켜본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런 일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하… 그나저나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냐… 갑자기 균열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다니.”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뭐야 도대체?”
“…”
그러게… 도대체 뭘까? 너무 균열이 오래 된 탓에 임계점에 도달한 건가?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균열이 너무 조용한 것이…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트가 말하길. 원래 멜로우 콜리라는 몬스터는 균열 밖을 서성이는 모험가를 납치하는 몬스터라고 한다.
“… 그래?”
- 그렇습니다. 오늘 가시는 길에 복권이라도 사시죠.
“왜?”
- 굉장히 보기 드문 몬스터이니까요.
“…”
시발… 그게 그렇게 되는 거냐?
아주 그냥 어처구니가 없는데… 어찌 됐든 별 탈 없이 끝나서 다행이긴 하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균열이 그대로 군… 그렇다는 건.)
아직 진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데… 균열의 등급도 모르는 상태로 무턱대고 저 안쪽으로 또 들어가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까지는 직진이었지만, 저쪽으로 들어가면 어디서 뭐가 어떤 식으로 꼬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게다가 밖에 있는 두 엘프도 신경 쓰이니… 일단 밖으로 나갈까?
“일단 나가자 엘피. 그게 좋을 것 같아.”
“…”
“엘피?”
“주인님…”
“응? 왜… 설마 다쳤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 촉수가 뿜어내는 이상한 액체 말이야. 그거 옷을 녹이나 봐.”
“… 뭐?”
“…”
말 대신 직접 보여 주겠다는 듯, 엎드리고 있던 엘피가 몸을 일으켜 새우고.
나는 너덜너덜한 걸레짝이 된 앞판을. 가슴부터 시작해 배, 보지까지 시원하게 깐 엘피의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존나 따먹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 뭐지? 이 야릇한 기분은? 거의 맨날 보는 알몸인데… 어째서?)
복장이 너무 야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숨이 차는 걸 가슴이 뛰는 걸로 착각하는 거야?
그것도 아니라면…
“… 엘피.”
“으… 응?”
“…”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빛에 은은하게 비치는 엘피의 표정이, 수치심과 부끄러움 가득한 그 맛있는 모습에 나는 뭔가에 홀린듯 양 손으로 엘피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리고는 깨닫는다. 지금 내가 충동적인 꼴림을 느끼는 건… 다름 아닌 지금 엘피가 짓고 있는 저 표정.
연애 초창기에나 보여주던 저 개 꼴리는 표정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화났어?”
“…”
그래, 화났어. 라고.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오랜만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 시켜 본다.
어찌 됐거나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급선무이니까 말이다.
“미안… 그래도 그 주인님 마법으로 옷 정도는 금방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어이, 들었지 알트? 바로 나갈 거니까 엘피 옷을 다시 원상 복구 시켜 줘.”
- 확인, 옷을 복구합니다.
“…”
알트의 한 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몸에서 부터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동시에 그 검은 액체는 마치 액체괴물처럼 엘피의 옷이었던 걸 이어 붙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끝? 나머지 옷들은…?
- … 마력을 감추는 옷이 워낙 복구가 까다로운 탓에 그거 복구하느라 모든 마력을 다 소진했습니다.
“뭐?!”
- 그러니 일단 오늘은 일 시마이치고 가까운 모텔로 가시죠?
“…”
아니 시발…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어?!!
존나 당황스러운데… 그러거나 말거나 알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고. 엘피는 어딘가 쑥쓰러운 표정으로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 뭐래? 안… 된데?”
“어… 그러니까 일단 저거라도 걸쳐.”
“… 근데 나… 신발도 녹았는데…”
“…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