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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8화. 도네이션


"...흠." 오늘 무슨 말을 할 지, 사람들은 얼마나 올 지. 그런 상상만으로도 하루는 순식간에 알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퍼뜩 눈떠보니 9시 반이 지나고 있자 나는 침대에 널어두었던 오프숄더 원피스를 다시 한 번 집어 들었다. 딱 봐도 무난한 디자인. 흰색, 어깨가 살짝 드러나는 정도. 허리는 살짝 잡혀 있고, 치마 끝단은 무릎 바로 위. 딱 봐도 청순 쪽에 가까운 옷이었다. "근데…" 나는 후드 지퍼를 천천히 내리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팬티 위로 내려가는 후드티 자락이 들춰지자 얇게 가슴을 눌러주던 브라가 먼저 드러났다. 그 위에 옷을 입으려다, 아차. 지난 보상으로 나온 스트랩리스 브라를 꺼내들고 안을 받쳐입었다. 스판끼 있는 천쪼가리는 유륜과 젖꼭지에 걸쳐지듯 작았다. 몇 번 뛰면 떨어져내릴 것만 같은데. 가슴이… 생각보다, 더 컸다. "……." 일단 어영부영 오프숄더 원피스를 입자 어깨라인이 깔끔하게 드러났지만 가슴 윗선이 살짝 옷감을 밀어올리면서 옷 전체가 살짝 뜨는 느낌이 들었다. 입기 전에는 무난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입고 나니 그냥, 입었을 뿐인데 어딘가 야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조금씩 허리를 조금 펴고, 어깨를 살짝 내리고 손끝으로 옷자락을 정리해 봤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에 띄는 건— “…가슴이 너무, 좀 그래.” 분명 남자였던 시절엔 야동에도 거유, 폭유같은 단어를 찾아다니면서 길거리에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했는데 막상 내 몸에 달려있으니... 나는 괜히 한 발 물러서서 전신을 다시 훑어봤다. 거울 속의 ‘은하’는 집에서 이러고 있자니 조금 과하고 밖에 나가기엔 묘하게 시선을 끄는 차림이었다. “이게 그 ‘사고 확률 감소’ 맞아?” 중얼거리며 손끝으로 원피스 윗선을 살짝 눌러봤다. 옷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설명대로라면, 문제는 생기지 않게 잡아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보여도 괜찮은 선’이 어디까지인지 이 옷은 너무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이어 고개를 돌려선 옆모습도 확인했다. 동그란 어깨에 조금 고개를 숙이면 쇄골이 움푹 파이는 게 드러났다. "으으음~." 긴 고민 끝에 어깨를 살짝 내려 머리칼을 앞쪽으로 넘겼다. 이게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모니터 옆에 놓인 조명이 눈에 들어왔고, 아직 포장도 안 뜯은 채 시간은 없었으니. 나는 조명을 집어 들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10시.” 방송 시작까지 남은 시간, 18분.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아 괜히 귀를 스치자 곧 조명의 비닐 포장을 벗기고 조심스럽게 펼쳤다. 생각보다 가벼운 삼각대. 클립 조명이라 각도 맞추기가 까다로웠지만 컴퓨터 옆에 겨우 세워두고 스위치를 눌렀다. 찰칵. “으으…” 눈앞이 확 밝아지자 나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순간적으로 방 안까지 조금 더 환해진 기분. 그림자가 부드러워지고 눈 밑이 덜 피곤해 보이고. 원피스의 흰색은 한 톤 더 깨끗해졌다. “와…” 탄성은 아주 작게 나왔다. 예쁘다는 감탄보다는, 이게 방송용이구나 하는 실감에 가까웠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한 번 더 반복했다. 카메라 높이를 조절하고 의자를 살짝 뒤로 밀었다가 다시 당기다가 마이크 위치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려봤다. 밝게 비추는 조명 아래 나는 천천히 화면 앞으로 앉았다. 웹캠에 비친 나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머리칼은 앞쪽으로 넘겼지만 여전히 어깨와 목선 사이가 허전했고, 오프숄더 원피스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시선을 잡아끄는 옷이었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켜면…’ 어제처럼 사람이 몰릴까. 아니면 오늘은 또 다를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원피스 자락을 한 번 더 정리했다. 어깨가 너무 드러나지 않게, 하지만 어색하지 않게.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할, 수 있다…"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플랫폼 대시보드. 방송 제목 입력 창. 태그 설정. 9시 57분, 그 사이 작은 알림 하나가 다시 떴다. [커뮤니티] ‘은하’님의 공지에 새 댓글이 달렸습니다. — 여캠조와 : 10시 알람 맞춰놨어요👍 가슴 안쪽이 살짝 조여 왔다. 이번엔 놀라서가 아니라 기대 때문이었다. “……기다린다더니.”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9시 59분. 나는 의자에 앉아 등을 펴고 카메라 렌즈를 한 번 바라봤다가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방송 시작] 딸깍. 화면이 한 번 깜빡이고 상태 표시가 바뀌었다. ON AIR “…흐아.”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잣말처럼 새어 나온 소리.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작게 타이머가 돌기 시작했다. 00:00:03 00:00:07 아직 채팅은 조용했다. 시청자 1. 그리고 잠시 뒤, 3. 나는 작은 헛기침과 함께 허리를 펴고 턱을 조금 당겼다. 조명이 얼굴을 고르게 비추자 웹캠 프리뷰 속의 나는 확실히 어제보다 훨씬... 스트리머 같았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싶어 한 박자 쉬고 다시 말했다. “안녕하세요. 은하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채팅창이 한 줄, 두 줄 올라왔다. — ㅇㅇ : 오 — 오늘유입 : 왔다 — 여캠조와 : ㅎㅇㅎㅇ 심장이 두근두근 박차를 가해 뛰기 시작했다. “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 끝을 또렷하게 하려고 의식하자 톤이 살짝 높아졌다. 괜히 긴장한 게 티 날까 봐 나는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시청자 7. “오늘은 어제 말한 것처럼 조용히 게임 조금 하려고 켰어요.” 말하면서도 카메라에 잡히는 내 모습이 자꾸 신경 쓰였다. 어깨, 목선, 원피스 윗선. 하지만 일부러 시선을 모니터 중앙으로 돌렸다. 지금은 그걸 생각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 갤에서보고옴 : 닉 바꿨네 — ㅇㅇ : 본명임? “아, 감사합니다. 그건... 비밀이에요.” 짧게 웃음이 섞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시청자 11. “아직 말이 좀 어수선한데 얼른 적응할게요. 불편하면 말씀해주시고요.” 말을 마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채팅이 하나 더 올라왔다. — 눈나나주거 : ㄱㅊ와꾸랑 몸매 지리네 나는 어색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우스를 움직여 게임 실행 버튼 위에 커서를 올렸다. “그럼… 시작해볼게요.”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 조심스럽게 클릭했다. — 겜겜: 오 그거 계속 하네 — ㅇㅇ: 아무튼 뭘 해도 좋음 게임 화면이 떠오르고 OBS 화면 안에서 은하의 조그마한 캠 화면이 오른쪽 위 모서리에 걸렸다. "아, 여기서…, 맞다." 여전히 게임만 보자면 뉴비 그 자체, 버벅대는 손놀림. 하지만 이상하게도 채팅은 그런 걸 꼬집지 않았다. — ㅇㅇ : 조작 귀여움ㅋㅋ — 오늘유입 : 겜하다 말고 자꾸 화면 봄ㅋㅋ — 여캠조와 : 야 쳐다보지마 집중해라ㅋ “앗, 하하…” 시청자 24. 관대한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게임에 열중하다보니, 빰바바밤—! 갑작스러운 사운드 이펙트가 터져울렸다. 게임 소리를 덮을 정도로 커다란 도네이션 알림창이 화면 가운데 팝업되었다. [후원 알림] 익명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은하 리액션 있나요? “—엣?” 순간 게임에 집중하느라 가느다랬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시청자 수가 31로 늘어나고, 채팅창이 빠르게 움직였다. — 겜겜: 왔노라흑우 — 여캠조와: 형님ㅁㅁㅁㅁㅁㅁㅁ — 익명: 리액션 뭐 있음? — 눈나나주거: 큰손오셖다 리액션 가즈아ㅋㅋ 캐릭터는 죽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황한 표정과 어벙한 입 그대로 방송에 내가 비쳤다. “저, 리액션… 리액션이요…?” 순간적으로 입술을 움찔이며 말을 더듬었다. “저, 아직 그런 건 없는데…” — ㅇㅇ: 귀엽긴 한데… — 오늘유입: 춤춰주나 ㅋㅋ — 닉정하기어렵다: 10마넌 후원이면 일어나야지~ “아— 네, 네…!” 나는 반사신경으로 대답하고선 휙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카메라 프레임에 허리를 맞추며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붙잡고 아주 또렷하게, 정직한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였다가 다시 올라올 때 긴 머리카락이 살짝 흘러내렸다. 가슴 앞쪽이 원피스를 살짝 밀어내듯 부풀었고, 그 모습에 채팅창이 또 한 번 요동쳤다. — 겜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출ㅡ렁 — 여캠조와: 아 진짜 얘 리액션 이거임?? — 오늘유입: 와꾸 리액션이네 — 눈나나주거: 개진심이다 이거ㅋㅋㅋㅋㅋㅋㅋㅋ “으으… 진짜 죄송해요…! 다음엔… 준비해볼게요…” 부끄러운 나머지 나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볼이 붉게 달아오른 게 화면을 통해서도 보일 정도였다. “근데 진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당황하고 진심으로 감사한 그 모습은 과장된 리액션보다 더 강하게 와닿는지 채팅은 나를 놀리기 바빴다. 시청자 42. 그리고 그 순간 이후로 숫자가 끊기지 않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 닉정하기어렵다: ㅋㅋㅋㅋㅋ슴부먼트로 승부 — 익명2: 걍 좀더 흔들자 — 여캠조와: 우리맘마통정상영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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