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6화. 집 밖에 나가다
“…으으….”
어깨부터 허리까지 찌뿌둥한 게 마치 등산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피곤했다.
침대는 몸에 감긴 이불로 엉망이고 머리는 축축한 채로 떡져 있었다.
무엇보다, 몸은 여전히 여자였다.
"……하."
눈을 뜨고 그 사실을 알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체념의 한숨.
자다가 일어나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결국 물거품이었고, 가슴이 눌린 상태로 자니까 이게 왜 이렇게 불편한 건지.
그 아래 배를 만지니 살짝 꼬르륵 소리도 났다.
그러고보니 어제 먹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떠오르며 곧장 허기가 밀려와버리고 말았다.
눈앞에 시스템 창은 안 떴지만 배고픔 수치 같은 게 있다면 지금쯤 -20은 찍고 있었을 것 같다.
"……."
침대 옆 의자 위에 던져놓았던 속옷은 어정쩡하게 늘어져 있었다.
또 이걸 입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은 짧았다.
어차치 입을 속옷은 그것뿐이니까.
그 위에 전날 벗어놨던 회색 후드티를 꺼내 입고, 남자였던 시절 입던 트레이닝 바지를 꺼내 펼쳤다.
“……이게 내가 입던 거 맞나?”
그닥 살찌지 않았던 체형임에도 허리춤이 허무할 정도로 남았다.
고무줄은 늘어져 있었고 허리는 두 번, 세 번 접어야 간신히 걸쳤다.
걸을 때마다 흘러내릴 것 같아 한쪽 손으로 허리춤을 붙잡다, 어정쩡한 손을 주머니에 넣으니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몇 분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늦은 오전의 찬 공기가 그대로 몸을 감쌌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라면이 더 중요했다.
가까운 편의점까지 걸어가며 핸드폰을 꺼내자, 알림이 잔뜩 쌓여 있었다.
📌 「도네이션 정산 알림」
📌 「신규 팔로우 10명 등록」
📌 「클립 17건 공유됨」
“……어?”
문을 열자 편의점 도어벨이 울렸지만 시선은 핸드폰에서 뗄 수 없었다.
「갤러리 게시물 – [클립] 신입 여캠 첫날 사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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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카운터 안쪽에 있던 알바생의 말꼬리가 잠깐 흔들렸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가 눈에 띄일까 입을 다물었다.
그 때 편의점 안쪽 선반 너머에서 무언가 작게 숨죽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를 본 게 아니라 그냥 핸드폰 들고 키득대는 사람이 웃긴 것이었다.
고개를 들었지만 나는 아무도 보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옮겼다.
계산대 앞에 줄이 짧게 늘어서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핸드폰 화면을 슬쩍 보다 눈이 스쳤다.
이번은 진짜로, 나를 본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바로 옆을 향해 소근거렸다.
"야, 옆에."
"…오우."
"빨통 개커. 뒤졌다 진짜."
짧은 대화.
내 이름 한 번 나오지 않는 대화였지만 그 대화의 주체가 나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보지만.
‘들렸어… 들렸지.’
숨이 훅 막혔다.
팔에 든 핸드폰이 묘하게 무거웠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골은 싸하게 식었다가 다시 열이 치솟았다.
심장이 빨라졌다.
그리고—
찔꺽.
바지 안쪽에서 느껴진 감각에 눈이 살짝 뒤집혔다.
‘……이걸로?’
아니야, 부끄러워서, 창피해서 그런 거지.
그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도 허벅지 안쪽이 미묘하게 조여오고 있었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왜 저런 걸로 자극을 느끼는데?
"……씨…"
나는 그들을 지나쳐 발걸음을 재촉했고, 라면 코너에서 아무거나 집어왔다.
"1,900원입니다."
뒤늦게 계산대로 나아가자 카드 단말기 옆에 둔 알바생의 핸드폰 화면 속 재생 중 표시가 선명했다.
분명한 자의식 과잉.
너무 보고 싶은 건 아닌데, 안 보고 넘기자니 나일까 계속 생각할 것만 같았다.
혹시 이 사람도 나를 보고 의식하고 있을까.
나는 카드를 내밀며 고개를 푹 숙이곤 너머의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
알바는 아무말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카드가 찍히는 동안 또다시 뒤에서 들리는 알림음—
빰바바밤!
나는 너무 익숙한 그 소리에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영상 도네이션 효과음.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아양스런 여자의 목소리.
"안녕히 가세요."
순간 화악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아니야.'
컵라면을 건네주는 알바는 그저 친절한 사람이었다.
눈빛 어딘가에 작위적인 모른 척이 깃들고 일부러 손 한 번 스치려 가판대의 물건을 손의 높이까지 가져다줌에도.
나는 컵라면을 받아들고 새어나오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빠르게 나왔다.
편의점 문이 닫히니 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나는 창피함에 라면 봉지를 껴안고 빠르게 걸었다.
"...하하."
이상한 오해에도 세상 사람들 전부가 나를 보는 건 아니라는 걸 알자, 집까지 가는 길은 전보다 상쾌했고 햇살은 눈부셨다.
가벼운 콧노래까지 나올만큼.
"하…"
나는 라면을 품에 꼭 껴안고 원룸 문 앞에 섰다.
바지춤에서 손을 꺼내자 몸에 맞지 않는 바지는 이제야 말려 내려갔고 머리칼은 여전히 뺨을 간지럽혔다.
책상 위에 컵라면이 털썩하고 부딪혔다.
"어휴…"
가슴께가 두어 번 가볍게 들썩였다.
곧 팬티 차림으로 뜨거운 물을 끓이는 동안 머리카락을 넘겨 귀에 꽂고 컵라면 뚜껑을 들었다.
그 움직임이 꽤 익숙해졌다.
…어느 틈에?
“배고파….”
작게 중얼이며 물을 붓고 젓가락으로 뚜껑을 누르자 증기가 손끝을 간질였다.
뽀글뽀글 라면 익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괜히 핸드폰을 열어 다시 플랫폼 어플을 들여다봤다.
보지도 못했던 어제 방송의 클립 수가 어느새 22개로 늘어나 있었다.
‘그 사이 또 누가 올렸네…’
라면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뚜껑을 들었다.
"……잘 익었어."
입이 먼저 마중가느라 입술이 작게 오므라졌다.
면발을 입에 넣으며 숨을 들이마실 때—
"앗, 뜨거…"
무심코 새어 나오는 이 작은 소리조차 이젠 정말 남자 같지 않다는 걸 느끼게 했다.
처음에는 헛웃음이 나왔고, 그다음엔 그냥 면을 다시 먹었다.
쭙—
면을 입에 넣고 손끝으로 뚜껑을 말아 옮겨 국물을 마셨다.
입술이 닿은 순간 다시금 감각이 또렷해졌다.
이전엔 몰랐던 입술의 부드러움이나 국물이 닿는 볼 안쪽의 미세한 촉감.
“...웅.”
여자로 바뀌며 예민한 고양이 혀가 되어선 데일 때는 잠시 입맛을 다셨다.
'국밥 뜨거울 때 못먹겠네.'
쩝,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면발을 다 비우고 국물까지 절반쯤 마신 다음,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흐아아….”
기지개를 켜자 팔 사이로 후드 자락이 끌려 올라갔고 그 아래로 엉성하게 고정된 브라끈이 옷 속에서 살짝 들썩였다.
어깨가 풀리면서 입술 끝에서 기지개 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배는 든든했고 입가엔 아직 따끈한 국물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노곤노곤.
뭔가 졸리기까지 했다.
몸을 비스듬히 틀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후드 안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이 목덜미를 간질였지만 귀찮아서 손만 대충 올려 훑었다.
“…좋아.”
가슴께로 내려간 후드끈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중얼이는 말투는 방금 전 컵라면을 혼자 다 해치운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순했다.
햇빛 아래 그르릉거리는 고양이마냥.
그렇게 행복한 아점을 즐기다보니 요즘따라 익숙한, 너무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시야 한쪽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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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 활성화]
— 이름: 퍼스널 캐릭터 셋팅
— 분류: [정체성 → 커뮤니티 설정]
— 목적: 개인 채널 내 커뮤니티 생성 및 소개글 작성
— 조건: 채널 공개 설정 ‘ON’ 상태 유지
— 보상: 구독 기능 해금 / 유입 태그 확장 / 시청자 분석 탭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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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중얼였다.
부쩍 깊어진 시선 끝에서 상태창이 띄워주는 자신의 채널이 보였다.
작은 아이콘 하나, 아직 아무 이미지도 없는 회색 실루엣과 [소개 미입력]이라는 문구.
닉네임은 임시 닉네임.
계속 방송을 진행하려면 가꿀… 필요가 있긴 하다.
식어버린 라면맛이 한쪽 볼 안을 간질이자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해야지.'
책상 위에 빈 라면 용기를 밀어두고 젓가락을 컵에 꽂은 채 자리를 만들었다.
딱히 대단한 결심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묘하게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철컥.
컴퓨터 전원을 켰다.
짧은 부팅음과 함께 켜지는 모니터.
몇 번의 클릭질에 곧 익숙한 플랫폼 화면이 뜨고, 내 채널의 관리 패널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클릭을 멈추고 천천히 등을 기대었다.
모니터 속 회색 프로필 이미지를 보며 후드 자락 안에서 브라 끈을 다시 한 번 살짝 당겼다.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입에서 나온 말은 그냥 생각일 뿐이었는데 그 말에 스스로 움찔했다.
‘보인다’는 감각이,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감각이 이제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나는 다시 마우스를 들어 [지금 설정하기]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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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입력창 활성화]
현재: 임시닉네임_001
랜덤 추천: [하나별], [소소], [블루], [은하]
[직접 입력] / [추천 중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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