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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114)


528. 이혼.... 이혼(離婚).... 부부가 합의 또는 재판에 의하여.... 혼인 관계를 인위적으로 소멸시키는 행위. 지인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선언했던 결혼을... 끝내고 이후 서로 남남으로 헤어지는 일. 그것을 하자고 말했다. 석진은.... 조금은 굳은 얼굴로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다.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난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중매결혼이 대부분 그러하듯... 내게 주어진 조건을 보고 여럿 중 가장 좋은... 아니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랐을 뿐이었다. 당시 집에서 나와서 내가 몸을 맡길 수 있는 장소를.... 가장 그럴싸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혹시 내가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을.... 집을 내어줄 상대라 생각해서... 그를 선택했다.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석진 씨의 방식 또한 마음에 들었다. 너무 급하지도 않게... 너무 당혹스럽지도 않게.... 아주 천천히... 보슬비에 젖어가는 땅을 보는 것처럼.... 느리게 가까워지는 그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석진 씨를 선택했는데.... 그는 나를 대체 어떤 이유로 선택했을까? 조건만 보면.... 석진씨는... 나에게는 맞지 않을 정도로... 너무 훌륭한 사람이었다. 직장도... 외모도... 그리고 심지어 만나는 시간동안 보여줬던... 그의 인품이나 인격은.... 더할 나위 없이 최고였다. 궁금했다. 대체...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어떤 장점이 보였을까? 성격이 활달하거나.... 외모가 뛰어나거나.... 그렇다고 집안이 대단하지도 않았다. 엄마의 등살에.... 아버지의 눈치에 밀려서.... 이런 선 자리에 나오는 나 자신에 대해.... 언제나 좋은 점수를 주지 못했다. 아니... 선이라는 것 자체에... 별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얘기일 듯 싶다. 서로의 조건을 보며.... 집안 어른들 사이에 먼저 심사를 진행하고.... 그리고 만나게 되는.... 그런 자리. 소개팅과는 아예 얘기가 달랐다. 가벼운 만남으로 누군가를 알아가는 자리와 달리... 결혼이라는 전제로 남녀가 만나서.... 서로 이득을 따져가면서.... 평생의 반려자는 택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서부터 로맨틱한 사랑을 꿈꿔왔던 나로서는....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사랑을 전제로 만나서.... 운명을 느끼고.... 평생 떨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과.... 내 남은 인생을 함께 쭈욱.... 같이 살고 싶다.... 소녀들이 꿈꾸는... 환상 같은.... 뜬구름 같은 소리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깊이 품고 있었기에.... 애초 선이라는 것 자체를 받아드릴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 흐음.... " 석진씨는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 살짝 시선을 아래로 깔고는.... 몸을 돌려서 창가 쪽으로 향했다. 어두운 아파트 전경 아래... 창문들 사이로 환한 빛들이 커져 있는 가운데.... 비스듬히 서있는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반사되어 보였다. 물론.... 거울처럼 완벽하게 석진씨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니었다. 대략적인 실루엣만 보여줄 뿐.... 그의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 미안해요. " 그리고 들리는 석진씨의 대답. 아니... 이것을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네? " " 정말 미안해요. 그간... 내가... 너무 잘못했어요. 마음 상했다면.... 아니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제대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요. " " ....... " " 이혼이라는 말... 쉽게 꺼낸 말...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어요. 잘 할께요. 그러니까... 다시 나에게 한 번.... 기회를 주지 않겠어요? " " 석진씨.... " " 이번 인사 이동할 때.... 지방으로 신청할까 해요. 그럼... 어머니하고도... 누님들과도 절로 거리를 둘 수 있을 거에요. 거기서... 우리 둘이서 다시 만들어봐요. 그간... 둘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잖아요? 나름... 행복한 시간도 있었고.... " " ..... " " 그러니까... 다시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어요? 민희씨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내 행복을 위해서... 시간을 줘요. 노력할께요. " 하아.... 절로 한숨을 흘러나왔다. 물론... 큰 소리를 내며 한숨을 쉰 것은 아니었지만.... 등을 돌리고 밖을 보고 있던 석진씨도 충분히 알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숨길 마음도 없었다. 아닌 척.... 잘못 나온 것처럼.... 꾸미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몇 년 전 석진이 지금 말한 것을 했다면.... 혹시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멀리 떨어져서.... 석진씨와 단둘이서.... 가정을 만들어 결혼 생활을 이어갔으면 모르겠다. 아니...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절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등 뒤로 차가운 기운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며.... 마음 또한 얼어붙는 듯 싶었다. 정말... 석진과 아이가 생겼더라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깊은 불행의 수렁이.... 모두를 삼켜버리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나 자신... 석진씨... 그리고 아이까지.... 순간 내 마음 속 짐과 같았던 사실 하나가.... 반전되며 전혀 다르게 보였다. 아이를 가지지 못해서... 죄스러웠던 마음. 차라리... 아이가 있었더라면 이런 공허한 마음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상념들. 부유 식물처럼 마음이 붕 떠서는.... 안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후회들이.... 불행이 아닌 행운의 징표처럼 바꿔 보이기 시작했다. 난 숨을 고르고는 목에 힘을 주며 무겁게 입술을 뗐다. " 석진씨. " 그제서야 석진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차분한 눈매. 표정 또한 온화한 모습을 한 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해야 할 말은.... 잘생긴 그의 얼굴을 일그러뜨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 나도 석진씨와의 결혼 생활이 나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당신...은 충분히...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었고... 또 석진씨에게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고 느낀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 절로 말을 끊고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숨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침을 삼켰다.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 하지만... 이런 결혼 생활은... 이제 그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러고 싶어요. 석진씨도... 알고 있잖아요. 아버지... 장례식장 전... 내가 어디 있었는지.. 내가... " 하아.... 말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말해야 해... " 내가... 누구와 함께.. 함께 있었는지...도.... 알고 있잖아요. " 내가 말을 빠르게 쏟아내는 동안... 석진의 표정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래.... 조금씩 굳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얼음이... 수면 따라 번져가며.... 얼어가는... 그런 모습이 보였다. " 석진씨... 어머님 때문도 아니에요. 그리고... 시누이들 때문도 아니에요. 아니... 정말 아무 상관도 없다고 하진 않을께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이혼을 결심한 건... 내가 원하기 때문이에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에요. " 말을 마치자마자... 숨이 가빴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는 사이 석진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가벼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 민희씨.... 민희씨가 누군가 여행을 갔다 왔다고 해도... 난 상관없어요. 그간... 집에서만 있었던 민희씨였는데 바람을 쐬러.... 갔다 올 수도 있죠. 그게.. 대학 시절 선배였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친한 사람.... 민희씨가 마음 맞는 사람과 여행 갔다 올 수 있는 거지.... 말했듯.... 이제 어머니도... 누나들도 더 이상 우리 일에 끼지 못하게 할 거에요. 이건 약속 할께요. 절대... 이제부터 다신... 우리 일에 간섭하지 않게... 내가 막을께요.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고 했던 것처럼... 지내면 되요. " 순간...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고지식하고 언제나 바른 말만 하던 그였기에.... 오히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단단한 벽에 부딪친 느낌이었다. 서로... 서로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치 전혀 다른 주파수로 통신을 하는 듯한 기분. 절대... 만나지 못할... 평행선 속 대화를 혼자만 이어가는.... 절망감. 설마... 내 입으로...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내고 왔다는... 그런 말을 하기 바라는 걸까? 생각과 동시에 말도 안 된다는 거부감이 들었다만... 그런 말을 해야만 지금 앞의 석진씨가 달라질까 하는... 망상 또한 스쳐 지나간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이건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꺼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지만.... 난 눈을 감고 숨을 다시 깊게 들이켠 뒤 내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 석진씨... 나도 알고 있어요. " " 응? 무얼..... " " 일...사...공...팔.... 천.. 사백팔호여. " 말을 끝내자마자 귀에서 순간....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 싶었다. 아니... 내 말을 들은 석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하며 굳어지더니.... 쩌저적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순간 변해버리는 표정.... 얼굴의 모습에 예전 중국에서 보았던 변검을 떠올렸다.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얼굴에서... 마치 지옥에서나 볼 것 같은.... 기괴하고 무서운 얼굴로 변하던... 그것처럼.... 지금 석진의 얼굴은 온화한 봄에서.... 거칠고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 사나운 겨울로 바뀌었다. ************** " 아니... 민희씨... 그게 무슨.. 무슨 말이야? " 시간이 흐르고 표정을 추스르고는 석진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상시 그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술을 떨며.... 말을 더듬는 것이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말을 꺼내기 전까지 심장 고동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듯 싶더니... 막상 하고 난 뒤엔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이 차갑게 얼어붙는 가운데... 나 또한 몸속에 흐르는 피가 식어버렸을지도. 남의 치명적인 약점을 꺼내서... 그의 면전에 펼쳐 보이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 옛날.... 강의실에서 마주쳤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토하고 싶을 정도로 역겹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건.... 위협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난 최대한 목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그의 물음에 답했다. " 미안해요. 난... 석진씨에게... 흠.... 말하기 어렵네요. 그래요. 솔직히 말할께요. 위협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그냥... 그냥 석진씨가 말하지 않았던 것...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에요. " " 무..무슨..... " 석진은 입술은 계속 뻐끔거리고 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떨구고 가느다란 숨을 연신 내쉬더니 체념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 어...어떻게 안 거야... 그건.... " 확실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석진의 모습이었다. 말투도... 달라져서는.... 언제나 단정하고 꼿꼿했던... 마치 풀을 먹여서 빳빳하게 다려놓은 듯한... 와이셔츠 같았던 그가 순식간에 대충 쓰고 나서 던져놓은 수건처럼 변해버렸다. " 나도... 우연찮게 알게 되었을 뿐이었어요. 처음엔... 엉뚱한 오해도 했었지만.... " " 엉뚱한 오해? " " 그래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오해라고 생각했었지만요. " 석진은 잠시 말없이 고뇌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선도... 나를 향했다가.... 바닥을 내려다보다가를 반복하더니.... 그대로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말을 내뱉었다. 고통 가득한 목소리로... 음 이탈이 생긴 가수의 삑사리 난 목소리로... 말했다. " 다..당신은... 내가 역겹지... 않았어? 어떻게... 내색하지 않고... 그간 그렇게 잘도..... "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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