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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무뎌지다


1. 침범 끝까지 안식처는 없었다. 행위가 끝나고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들어간 샤워실마저 그들의 놀이터였다. "혼자 씻게? 등 밀어준다니까." 태인은 굳이 샤워부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비누칠을 핑계로 그의 투박한 손은 보윤의 온몸을 다시 한번 훑었다. 붉게 부어오른 유두를 꼬집고, 정액을 씻어낸다는 명목으로 질 안쪽까지 손가락을 넣어 휘저었다. "안쪽 까지 깨끗이 씻어야지. 내가 도와줄게" 그 옆에서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던 설아는 질투 섞인 농담을 던졌다. "오빠, 그만 좀 해. 닳겠다, 닳겠어. 보윤이 다리 풀린 거 안 보여?" 씻겨지는 건지, 다시 더럽혀지는 건지 알 수 없는 샤워 시간이었다. 보윤은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오한이 들었다. 2. 화대 "자, 택시비. 조심히 들어가." 태인이 쥐여준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 보윤은 택시 뒷좌석 구석에 처박혀, 손에 쥔 지폐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택시비라고 포장해도, 그것은 명백한 몸값의 일부였다. 1,200만 원짜리 술을 얻어마시고, 10만 원의 차비를 받고 몸을 대준 여자. 기사님이 백미러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헝클어진 머리와 번진 화장, 그리고 몸에서 나는 진한 남자 향수 냄새와 술 냄새. 누가 봐도 '놀다 들어가는 여자'의 몰골이었다. 보윤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야경을 보며 눈을 감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도어락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새벽 2시.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자취방 냄새가 났지만, 더 이상 이곳이 편안한 휴식처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낯선 모텔방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보윤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지듯 걸터앉았다. 몸은 만신창이였다. 태인이 움켜쥐었던 가슴에는 푸르스름한 손자국 멍이 올라오고 있었고, 무리하게 혹사당한 허벅지 안쪽 근육은 덜덜 떨렸다. 무엇보다 억지로 개통당한 듯한 질 입구가 쓰라리고 욱신거려 똑바로 앉아있기조차 힘들었다. 지잉- 지잉- 핸드백 속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카카오톡 단톡방에 초대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방제: 루이 13 (3) 태인: [이모티콘] 다들 잘 들어갔지? 오늘 진짜 재밌었다. 설아: [사진] (셋이서 찍은 셀카) 오빠 최고! 보윤이도 고생했어~ 푹 쉬어 ㅋㅋ 태인과 설아, 그리고 보윤. 지옥 같은 셋의 연결고리가 이제 온라인까지 연장되었다. 보윤은 메시지를 읽지 않은 채 화면을 엎어버렸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아... 내일 출근... 어떡하지..." 이 와중에 내일 아침 7시에 울릴 알람을 걱정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몸은 걸레짝이 되었는데, 영혼은 여전히 성실한 사축(社畜)이었다. 비싼 술을 마시고, 모르는 남자와 여자에게 앞뒤로 유린당하고 돌아온 밤. 그래도 내일은 회사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성보윤 주임'으로 앉아 있어야 했다. 이 엄청난 괴리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불현듯 아까의 기억이 파편처럼 뇌리를 스쳤다. 설아의 젖은 혀가 목덜미를 핥았을 때의 그 소름 끼치는 짜릿함. 태인의 거대한 성기가 예고도 없이 꽉 차 들어왔을 때의 숨 막히는 압박감.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왔던 엄청난 양의 애액. 분명 수치스러웠다.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런데... 기억을 되짚어 볼수록 역겨움보다는, 배 아랫부분이 찌르르하게 울리는 감각이 먼저 되살아났다. 머리로는 거부했지만, 몸은 그 강렬했던 쾌락을 선명하게 각인하고 있었다. 아직도 허벅지 사이가 뻐근하게 저려오며 묘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필사적으로 핑계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변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화가 나는 건지, 억울한 건지, 슬픈 건지도 모호해졌다. 격정적이었던 감정들은 이미 다 타버린 재처럼 사그라들고 없었다. 남은 것은 텅 빈 공허함과, 그 빈자리를 채우는 기이하고 서늘한 체념뿐이었다. '나, 그냥... 이렇게 된 건가.' 망가진 장난감. 공용 육변기. 걸레. 스스로를 비하하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신기하게도 예전처럼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그 천박한 단어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딱 맞는 옷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신을 방어하거나 도덕적으로 합리화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어쩌면 무너지는 것이 버티는 것보다 쉬울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생각이 싹텄다. 보윤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내일 아침, 숙취에 찌든 몸을 이끌고 출근해 연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이 납 덩어리처럼 무겁게 짓눌러올 뿐이었다. 3. 좀비의 아침 "으으..." 보윤은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회사 로비 회전문으로 들어섰다. 걸음을 뗄 때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태인에게 유린당해 붓고 쓰라린 질 입구가 속옷에 쓸려 따끔거렸다. 어젯밤 1,200만 원짜리 술을 들이부은 탓에 머리는 깨질 듯 지끈거렸다. 화장으로 다크서클과 창백한 안색을 가렸지만, 눈동자에 서린 피로감은 감출 수 없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 딱 그 꼴이었다. "어? 성 주임! 좋은 아침!" 엘리베이터 홀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윤 대리였다.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들고, 세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보윤에게 다가왔다. "아... 대리님, 안녕하세요." 보윤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인사했다. "얼굴이 많이 상했네? 어제 뭐 무리했어? 술 한잔했나 보네." 윤 대리는 걱정스럽다는 듯 혀를 차며 보윤의 어깨를 토닥였다. 주변 직원들이 보기에는 그저 몸 안 좋은 후배를 살갑게 챙기는 자상한 선배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보윤은 그 손길이 닿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어깨를 두드리는 척하며 은근슬쩍 노브라로 왔는지 라인을 손가락으로 훑는 그 교묘함이 역겨웠다. 띵-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출근 시간이라 몰려든 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갔다. "타자고. 다음 거 기다리면 지각이야." 윤 대리는 자연스럽게 보윤의 등 뒤에 밀착하며 그녀를 떠밀어 엘리베이터 안으로 넣었다. 밀려드는 인파에 휩쓸려, 두 사람은 가장 안쪽 구석, CCTV의 사각지대이자 사람들의 등 뒤로 숨겨진 자리까지 밀려났다. 만원 엘리베이터. 앞사람의 등과 옆 사람의 어깨가 꽉 들어찬 좁은 공간. 땀 냄새와 화장품 냄새, 꿉꿉한 공기가 뒤섞인 숨 막히는 밀실. 사방이 벽과 사람으로 막힌 완벽한 감옥이었다. 보윤은 차가운 금속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죽였다. 바로 옆, 아니 거의 뒤에 선 윤 대리의 단단한 가슴팍과 허벅지가 닿았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닿을 듯 가까웠다.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상승하기 시작하자마자, 윤 대리의 손이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그는 앞을 보며 평온한 표정을 유지한 채,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살짝 들어 올려 교묘하게 주변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뒤로 뺐다. 스윽. 그의 축축한 손바닥이 보윤의 엉덩이 굴곡 위에 안착했다. 오늘은 스커트 대신 방어 차원에서 입고 온 슬랙스 바지였지만, 윤 대리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엉덩이 살을 꽉 움켜쥐고 노골적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 보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엉덩이 골 사이로 파고드는 손가락의 감촉이 얇은 바지 천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소리를 지를 수도, 밀쳐낼 수도 없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소란을 피우면 모든 시선이 집중될 것이고,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자신일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먼저 앞섰다. 윤 대리의 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보윤이 저항하지 않자 대담해진 손길은 점점 앞쪽으로, 다리 사이를 향해 뱀처럼 미끄러져 들어왔다. 꾹. 그의 손가락 끝이 보윤의 음부, 정확히는 어젯밤 혹사당해 퉁퉁 부어있는 그 예민한 곳을 슬랙스 위로 꾹 눌렀다. "으윽..." 보윤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고통인지 쾌락인지 모를 기묘한 자극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쓰라린 통증과 함께 묘한 안도감이 겹쳐졌다. 윤 대리는 손가락으로는 보윤의 갈라진 틈을 집요하게 문질렀다. 바지의 봉제선 라인을 따라 위아래로 비벼대며, 보윤의 반응을 손끝으로 즐기고 있었다. 보윤은 윤 대리의 옆얼굴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오늘 뉴스 기사를 훑고 있었다. 그의 손이 내 가랑이 사이를 휘젓고 있는데, 세상은 너무나 평온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보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놀랍지 않았다.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또 시작이구나', '빨리 내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어젯밤 그 지옥 같은 쓰리섬을 겪고 나니, 고작 이런 엘리베이터 성추행 따위는 아무런 타격감도 없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윤 대리의 손가락이 부은 클리토리스를 자극해도, 몸은 거부 반응 대신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 진짜 미친 건가.' 수치심보다 더 큰 절망감이 몰려왔다.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자신. 이 비정상적인 상황에 완벽하게 적응해버린 자신이 끔찍하게 혐오스러웠다. 띵- "내립시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윤 대리는 언제 만졌냐는 듯 손을 떼고 매너 좋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었다. "먼저 가요, 성보윤 씨." 그의 가식적인 미소 뒤로, 보윤은 도망치듯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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