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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저주받은 육체


1. 씻겨나가지 않는 본질 집으로 돌아온 보윤은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가 보윤의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값비싼 한우의 기름진 냄새, 태인의 차에서 배어든 고급 방향제 냄새, 그리고 낮에 윤 대리가 남긴 비릿한 정액의 잔향까지. 모든 것을 씻어내고 싶었다. 보윤은 거친 샤워 타월로 살이 벌게질 때까지 몸을 문질렀다. '......다 똑같아.'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며 보윤은 생각했다. 태인이 보여준 그 여유, 그 배려, 그 맛있는 식사. 그것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낚싯바늘에 꿰어놓은 통통한 지렁이일 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짐승이었다. 박 차장과 윤 대리가 굶주려 침을 흘리는 들개라면, 태인은 발톱을 숨기고 우아하게 다가오는 표범일 뿐, 본질은 같았다. 결국 목적은 하나. 보윤의 다리 사이. 그리고 이 풍만한 몸뚱어리. 2. 반복되는 악몽 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백윤겸. 기해주. 패턴은 언제나 똑같았다. 처음엔 웃으며 다가온다. 선물 공세를 하고, 맛있는 것을 사주고, 세상에 너밖에 없는 것처럼 군다. 하지만 보윤이 마음을 열고 몸을 허락하는 순간, 그들은 돌변한다. 실컷 탐하고, 유린하고, 비틀어 짜낸 뒤, 더 이상 나올 즙이 없으면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태인도... 똑같을 거야.' 아니, 어쩌면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보윤의 밑바닥을 보고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더 비참한 것은,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보윤이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거절하면 보복당하고, 도망치면 잡혀온다. 이 거대한 먹이사슬의 최하단에서, 보윤은 그저 포식자가 선택하기만을 기다리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3. 저주받은 굴곡 샤워를 마치고 나온 보윤은 습기 찬 거울 앞에 섰다. 손으로 거울을 쓱 문지르자, 물방울 맺힌 자신의 나체가 드러났다. "하..." 보윤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거울 속의 여자를 노려보았다. 비현실적으로 거대하고 무거운 유방. G컵에 달하는 두 덩어리는 중력을 이기지 못해 출렁거렸지만, 그 압도적인 볼륨감과 뽀얀 피부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흉기나 다름없었다. 박 차장과 윤 대리, 태인이 침을 흘리며 탐내는 그 '젖통'.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라인을 지나, 골반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넓게 벌어져 있었다. 순산을 상징하는 넓은 골반과 터질 듯이 빵빵한 엉덩이. 뒤에서 박아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저 음란한 하체 라인. 이 몸이 아니었다면. 내가 평범한 가슴과 평범한 골반을 가졌다면, 이렇게 남자들의 사냥감이 되어 인생이 망가졌을까. 보윤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는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남자의 성욕을 자극하고, 폭력을 유발하는 페로몬 덩어리. 보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거울 속, 보윤의 다리 사이. "흐으..." 보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 전, 윤 대리가 억지로 시켰던 왁싱의 흔적. 매끈했던 대음순 위로 시간이 지나 거뭇거뭇하게 털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남자의 수염처럼, 혹은 샤프심처럼 까슬까슬하고 억세게 자라난 음모들. 그 짧은 털들은 보윤에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윤 대리에게 털을 밀리고 강간당했던 날부터, 박 차장에게 조련당하고, 태인에게 유린당하며 흘러온 그 지옥 같은 시간들. 털은 다시 자라는데, 보윤의 존엄성은 깎여나가 다시는 자라지 않고 있었다. 보윤은 까슬한 음모 위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따끔거리는 감촉이 심장을 찔렀다. "으흑... 으흐흑..."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보윤은 세면대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거울 속의 육덕진 몸뚱어리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육변기가 될 운명이었다고. 도망칠 곳은 없다고. 차가운 욕실 바닥에 웅크린 채, 보윤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 울음소리만이 텅 빈 집 안을 공허하게 채울 뿐이었다. 4. 관리 대상 한참을 샤워기 아래에서 웅크리고 울던 보윤은, 물이 차가워질 때쯤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둥 마는 둥 하고 침대 위에 던져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태인의 카톡이 와 있었다. [태인] : 잘 들어갔어? [태인] : 가끔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연락하고 지내자. 푹 쉬어. ^^ 지극히 평범하고, 다정해 보이기까지 하는 메시지. 하지만 보윤은 그 이면에 숨겨진 '관리'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당근을 흔들며 울타리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사육사의 손길. 보윤은 망설임 없이 답장을 입력했다. 읽씹을 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이미 겪었기 때문이었다. [나] : 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짧고 건조한 답장. 감정은 없었다. 그저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었다. 태인의 채팅방을 나가려던 순간, 친구 목록에 뜬 빨간 점이 보윤의 눈길을 끌었다. [박민석 차장] 무심코 프로필 사진을 눌렀던 보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언제 바꿨는지 모를 새로운 프로필 사진. 그곳에는 화목해 보이는 4인 가족이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박 차장, 우아해 보이는 아내, 그리고 토끼 같은 딸과 아들. 제주도인 듯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박 차장은 딸을 무등 태우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역겨웠다. 사무실에서는 부하 직원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점심시간마다 모텔로 끌고 가 짐승처럼 박아대는 그 인간이. 탕비실에서 더러운 손가락으로 여직원의 보지를 쑤셔대던 그 변태가. 집에서는 세상 둘도 없는 자상한 가장 행세를 하고 있었다. 사진 속 그의 손은 너무나 따뜻하게 아이들을 안고 있었다. 오늘 낮, 보윤의 자궁 입구를 긁어대고 타액을 묻혔던 그 더러운 손가락으로. "악마 새끼..." 보윤의 입에서 저주가 터져 나왔다. 그의 아내는 알까? 남편이 회사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저 아이들은 알까? 아빠가 밖에서 얼마나 추악한 괴물인지. 이 완벽한 가족사진 뒤에 숨겨진 진실은 오로지 보윤만이 알고 있었다. 아니, 보윤의 희생 위에 저들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보윤을 더 비참하게 만든 것은, 박 차장의 위선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사진 속 박 차장의 웃는 얼굴을 보며, 보윤은 오늘 오후 탕비실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가 손가락을 넣어 휘저었을 때, 강간이 아니라서, 쑤셔지는 것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던 자신의 모습. "병신 같은 년..." 보윤은 휴대폰 액정을 내려치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저항은커녕, 그 더러운 행위에 길들여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니. 노예가 사슬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고 주인에게 감사하는 꼴과 무엇이 다른가. 분노는 갈 곳을 잃고 보윤의 내면을 난도질했다.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왜 신고하지 못했을까. 왜 그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신음을 흘려야만 했을까. 거울 속에 비친, 젖은 머리를 한 여자는 너무나 초라하고 무력했다. 한참을 자학하던 보윤의 감정은,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졌다. 분노도, 슬픔도, 수치심도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지칠 대로 지친 보윤의 뇌는 살기 위해,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다. '합리화.' 보윤은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별거 아니야.' 섹스가 뭐라고. 그냥 살덩이와 살덩이가 부딪치는 마찰일 뿐이잖아. 밥 먹고 배설하는 것처럼, 그냥 본능적인 행위일 뿐이잖아. 남들은 좋아서 매일 하는 거고, 나는 그냥 조금 강압적으로 하는 것뿐이야. '닳는 것도 아닌데 뭐.' 박 차장이든, 윤 대리든, 태인이든. 누가 들어오든 그냥 눈 딱 감고 몇 분만 참으면 돼. 짐승들이 배설하고 나면, 씻어내면 그만이야. 내 영혼까지 가져가는 건 아니니까. "괜찮아... 괜찮아..." 보윤은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그것은 긍정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공공재'로 규정하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바닥에 내동댕이침으로써 고통을 회피하려는 체념이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죽어버린 마음이었다. 보윤은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내일 또다시 출근해서 박 차장의 웃는 얼굴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윤 대리의 욕설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출근하고, 변기처럼 받아내고, 시체처럼 퇴근하면 그만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윤의 눈이 건조하게 빛났다.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5. 악몽 꿈속의 배경은 축축하고 붉은 연회장이었다. 보윤은 하얀 식탁보 위에 메인 요리처럼 알몸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자, 먹읍시다." 박 차장이 입을 벌려 억지로 자신의 굵은 성기를 목구멍까지 처박았고, 동시에 윤 대리는 엉덩이를 양옆으로 벌려 메마른 항문을 거칠게 뚫고 들어왔다. 다리 사이에는 과거의 망령인 백윤겸과 기해주가 달라붙어, 이미 헐어버린 질 구멍을 번갈아 가며 쑤시고 유린했다. "으읍! 으으읍!" 입과 앞, 뒤가 동시에 꿰뚫린 채 보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짐승처럼 헐떡였다. 출렁거리는 F컵의 거대한 유방은 사방에서 뻗어온 손길에 밀가루 반죽처럼 짓이겨졌고, 퉁퉁 부은 유두는 쉴 새 없이 이빨로 씹히고 빨렸다. 퍽, 퍽, 찌걱, 찌걱. 살 부딪치는 타격음과 질척이는 애액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 너머 상석에서 태인이 와인을 마시며 비웃고 있었다. 이내 수컷들의 거친 숨소리가 절정에 달했다. "싼다!" 짐승 같은 고함과 함께 보윤의 얼굴과 가슴, 배 위로 뜨겁고 끈적한 정액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온몸이 백탁액으로 범벅이 된 보윤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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