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3화
창현이 새로운 집주인으로서 여자하숙집의 현관문을 열기 직전의 심경.
그것은 아마도 긴장감 반, 기대감 반으로 섞은 묘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 심정은 취직하고자 기업 면접을 보러다닐 때, 그리고 치킨집을 처음 창업했을 때같은 긴장감과 비슷할까? 자신이 오늘부터 처음으로 여자하숙집 주인이 돼서 먼저 손님인 여자 하숙생들과 면접을 하는 거니까 어떤 의미로는 맞으리라.
다만 어째서였을까.... 그 긴장감 속에서도 설레임도 가득했다.
자신의 심정인데도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게 우스꽝스럽지만... 가슴속 한구석에서는 두근두근거리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가령 일전에는 처량한 흙수저 인생이라서 가시밭길만 걸어왔는데 이제는 꿈꾸지도 못했던, 그저 동경하기만 했던 향긋한 '꽃길'을 향해서 처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기대감이랄까?
나참,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여자하숙집 주인으로 시작한다고 하니까 혼자서 많이 긴장하고 들떴나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한 번 망했던 인생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거다! 항상 후회없이 즐겁게 살자.
짧은 찰나동안에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창현은 현관문을 연다.
"실례합니다."
직후 그의 눈앞에서는 여자하숙집만의 특별한 광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처음 시야에 잡힌 곳은 드넓은 1층 라운지와 거실.
100평 형식의 주택에 본래 하숙집으로 쓰던 곳이라서 드넓다라는 표현은 역설적이지만 그곳은 생각 이상으로 꽤나 정갈하고 안락해보였다.
보통 남자들끼리 학교, 회사기숙사나 원룸같은 곳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면 방청소를 안해서 방구석에서 쓰레기가 넘치고 또 퀘퀘한 곰팡이 냄새에 코부터 막기 마련인데... 역시 여자애들은 다른 걸까?
여자하숙집의 공동 구역인 거실과 라운지는 평소에도 청소는 물론이고 관리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는지 뭐든 깔끔하면서도 좋은 의미로 사람같은 향기가 났었다.
거실에서 휴게하라고 놓은듯한 푹신해보이는 대형 소파, 그리고 소파 앞에 설치된 케이블방송이 되는 티비, 그리고 같이 식사하라고 놓인듯한 라운지의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설거지를 잘해둔 식기와 냉장고가 인상적인 주방, 더불어 거실과 라운지 곳곳에서는 곰인형, 꽃화분, 당시 최고 남자아이돌인 hot, 젝스키슈같은 브로마이드 등 여자애 특유의 느낌이 나는 앙증맞은 장식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코끝에선 연일 은은하면서도 싱그러운듯한 좋은 향기가 스쳐왔다. 마치 여자애가 사는 집이라는 듯한 느낌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방 감상을 할 여유도 없었다. 왜나하면....
때마침 창현의 귓가에서는 여자애들의 잡담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듣긴 들었는데 집주인 분이 꽤나 젊고 훈훈한 게 대박이네요. 동안이 아니시라면 저보다도 나이가 적을 거 같네요."
"헐... 유하 언니 그렇게 노처녀이셨어요?"
"으읏, 그건 숙녀끼리라도 실례라고!"
"... 선배랑 영심아, 집주인한테 인사부터 하는 게 어때?"
"닥쳐, 내 좋은 이름 대신 영심이라는 별명으로 부르지 마라고!"
"...."
대박, 헐, 영심이라... 2024년 지금은 잼민이도 안 쓸 구닥다리 유행어겠지만, 02년 당시에는 꽤나 유행하고 일상에서 빈번히 썼던 밈이었다. 죄다 애틋한 추억이네.
자,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첫인상 점수도 따게 인사부터 밝게 해보자.
창현은 먼저 예의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선 인사를 건넨다.
"하숙생 분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집주인이 된 22살 안창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호칭은 혹시 저보다 연상이나 동갑 분 계시면 반말로 편하게 하셔도 되고 연하이시거나 어색하신 분들은 창현 씨, 집주인 분, 집주인 오빠 등 각자 부르기 편한 호칭으로 불러주세요."
인사하는 창현의 눈앞에서 보이는 여자 하숙생들 4명.
아마도 자신과 또래인 여대생 연령인 게 맞나보다. 게다가 한 분, 한 분 다 예쁘장하고 귀엽고선 말이다.
다만 십인십색, 4인4색이라고 뭔가 개성적인 느낌이 물씬 났었다.
여자 하숙생들은 각자가 창현의 인사에 왠지 모르게 각자의 양뺨을 새초롬하게 붉히고선 호감을 나타낸다.
"앗, 반가워요. 창현 씨."
"흐흥... 집주인이 예상외로 나랑 동갑이네... 진짜 말 놓아도 될까나?"
"... 미토, 먼저 우리들 소개부터 해야지."
"으으... 알았어. 날라리년아!"
"...."
"그러면 연장자순으로 소개하는 걸로 하자. 집주인 분인 창현 씨한테도 그게 나을테니까 말야."
"네, 언니."
직후 시작된 여자하숙생들의 소개타임이었다.
먼저 특별하게도 여성용 검은색 바탕의 정장과 치마 차림인 유려한 트윈테일 아가씨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선 방긋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창현 씨, 안녕하세요. 저는 한빛전자에서 경리로 일하는 25살 최유하라고 합니다. 본의 아니게 출근 전이라 지금 복장이 이렇네요."
세간에서 잘 알아준다는 한빛전자에서 경리로 일한다는 여자하숙집의 맏언니인 최유하였다.
유하에 대한 첫인상으로는 좋은 의미로 가장 어른스럽고 사회인 느낌이 물씬 나는 상냥한 선배, 누나같은 느낌이었다.
머리칼이 딱 귀밑까지만 오는 푸들강아지나 단발이 연상되는, 분홍색 고무줄로 단정하게 묶은 깔끔하면서도 귀여운 트윈테일, 그리고 예쁘장한 얼굴인데도 깔끔하게 잘된 메이크업, 빨래를 잘하고 또 다리미로 잘 빗어서 그런지 향긋한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면서도 구김없이 각이 잘선 각선미가 인상적인 정장치마, 팬티스타킹, 거기에 날씬한 체구이면서도 좋은 의미로 순산 잘할 거 같은 풍성한 엉덩이와 함께 최소 c컵 아니, d컵은 넘을 거 같은 가슴 등 왠지 보기만 해도 남정네의 연심을 훔칠 거 같은 부드러운 백합꽃같은 연상의 아가씨였다.
게다가 역시나 어른스러운, 사회인 누나는 다른 걸까.
유하는 배시시 웃으면서 내색하지 않고선 악수하고자 손을 건넨다.
"후훗... 호칭은 우선 창현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창현 씨, 오늘부터 함께 잘 부탁드려요."
창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을 붉히고선 악수하고자 그녀의 손을 맞잡는다.
"네, 유하 씨,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악수하면서 느껴지는 연상 누나 특유의 부드러운 손결이었다.
흐흠... 이거 오늘은 손 씻기가 싫을 정도네.
그렇게 유하의 소개가 끝난 직후.
이번에는 좋은 의미로 모범생, 훈녀같은 청아한 사과머리 아가씨가 예의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집주인 분, 저는 22살 한빛교대에 다니는 22살 김미토라고 합니다. 순한글이라서 이름이 조금 특이하죠? 호칭은 우선은 유하 언니처럼 창현 씨라고 부를게요."
동갑내기 교대생이라는 미토에 대한 첫인상.
그녀의 이미지는 한 마디로 표현해서 '교회 누나'였다.
아왜, 어릴적 늦잠 자고 싶은데 엄마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가면 항상 보이는 성실하면서도 무척 예쁘장한 누나 한 명씩 있지 않았는가. 그 교회 누나 말이다.
귀여운 느낌이 물씬나는 하트표 머리띠가 인상적인 사과머리, 몹시 예뻐서 따로 메이크업은 안한 것 같은 반반한 얼굴, 아마도 그녀 특유의 체취인듯한 맡기 좋은 은은한 향기, 좋은 의미로 모범생 느낌이 나면서도 트렌디한 거 같은 시원한 하늘색 민소매티와 하얀색 테니스치마, 얼굴, 팔, 다리에서 야시시하게 보이는 우윳빛같은 아기 피부, 그리고 옷이 그녀의 날씬하고 여린 체구에 딱 맞게 입었는지 봉긋 솟은 가슴과, 엉덩이까지.
지적이면서도 청량한 느낌의 모범생 여대생 느낌이 났었다. 참고로 지금이야 학교선생님을 육성하는 교대가 일명 금쪽이 학생들때문에 기피학교가 됐지만 00년대 당시에는 교대 경쟁률이 엄청났었다. 그 서연고 바로 아래급이라고 하면 믿어지는가?
모쪼록 성격까지 명랑한 것같은 팔방미인인 미토는 가볍게 손을 흔든다.
"흐흥... 그러면 잘 부탁할게요. 창현 씨."
"네, 미토 씨 잘 부탁드릴게요!"
미토 씨 하니까 뭔가 어색한 게 진짜 이름이 개성적이긴 하네... 혹시 미토란 이름에 무슨 사연이 있을까?
미토의 소개가 끝난 직후.
이번에는 과묵해보이는 무표정한 포니테일 아가씨가 인사한다.
"... 집주인 분, 저는 앞선 영심이랑 동갑인 신예나입니다. 순경공채 준비 중인 공시생이고요."
뭔가 상당히 말이 짧고 쿨한 느낌인 예나에 대한 인상.
그녀의 인상은 앞선 하숙생들과 달리 조금 개성적이었다... 아니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는 표현이 맞을까?
정갈하지만 뭔가 터프하게 묶은듯한 노란색으로 염색된 포니테일 머리, 역시 따로 메이크업은 안한 거 같지만 꽤나 하얗고 예쁘장한 얼굴에서도 특이하게 뺨에 붙여진 반창고와 귀에 달린 피어싱, 그리고 일명 배꼽이 보이는 크롭티같은 검은색 배꼽티와 패션으로 무릎에 살짝 구멍이 난 청바지. 그리고 유하랑 막상막하일듯한 날씬한 체구이면서도 입고있던 옷을 찢고 나올 거 같은 빵빵한 가슴과 엉덩이까지... 꽤나 예쁘면서도 뭔가 개성적인 동갑 분이었다.
노란색 염색머리, 피어싱, 배꼽티 등을 보면 아까 그녀랑 친한 친구같아보이던 미토가 했던 단어가 생각 나네....
아니나 다를까.
미토는 아까 예나가 소개한 것때문에 발끈한다.
"야, 영심이라고 놀리지 말라고, 이 날라리년아!"
그래, '날라리'스럽다 뭔가. 모범생같은 미토가 저러니까 왠지 한 대 맞고선 삥뜯길 거 같아서 불안해서 말리고 싶다.
그러나 예나는 베프의 성화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는듯이 쿨한 느낌의 무표정을 내비친다.
"...."
예나는 직후 창현에게 악수를 건넨다.
"집주인 분, 잘부탁합니다."
창현은 예나의 쿨한 악수에 조금 당황해서 어깨를 움찔하고선 악수를 한다.
"아 네... 예나 씨!"
악수하면서 느껴지는 그녀의 손결.
예쁜 여자애치곤 뭔가 잔상처가 많으면서도 투박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순경공채 준비하는 공시생이라고 했나? 지금 2024년이야 월급 박봉이라고 해서 공무원이 기피직업이 됐지만 2002년 당시에는 얼마 전 imf도 있어서 그런지 여자애 직업 희망 1, 2위가 공무원, 교사였다고 한다. 날라리같은 첫인상인 예나가 공시생인 게 조금 기묘하긴 하네.
그렇게 예나의 소개가 끝난 직후였다.
그나저나 한 명 더 있지 않았나?
때마침 유하는 조심스레 마지막 여자하숙생의 어깨를 살포시 붙잡아주고선 청유한다.
"후훗, 창은아 뭐해? 너도 창현 씨한테 자기소개해야지."
"아...."
유하의 부름에, 귀여운 느낌인 검은 생머리인 아가씨는 꽤나 낯을 가린다. 아마도 내성적, 소심한듯이 말이다.
그녀는 시선을 창현과 마주치지 못하고선 조용히 인사한다.
"... 저는 20살에 알바 중인 배창은이라고 해요...."
상당히 내성적인 창은에 대한 첫 인상.
딱봐도 막내 느낌이 나는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구, 뭔가 2프로 부족한 듯이 살짝 잔머리가 난 검은색 생머리, 그리고 하얗고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왠지 모르게 눈가 밑으로 살며시 피어있는 다크서클, 그리고 아마도 여고생 때 입은 걸 그대로 입은듯한 분홍색 체육복과 조신한 몸매까지.
창은에 대한 인상은 그 '봇치'였다. 아왜, 여자애들 가끔 보면 한 명씩 있지 않는가.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엄청 낯을 가리고 모르는 사람이 말이라도 걸면은 깜짝 놀라서 오빠, 언니 등 뒤로 쏙하고 숨을 거 같은 그런 막내동생같은 느낌이랄까.
저렇게 낯을 가리는데 알바는 어떻게 할까. 다만 꽤나 귀여운데 말이다.
창현은 먼저 엷은 미소를 하고선 인사를 건넨다.
"우선은 창은 씨란 호칭이 편하겠죠? 창은 씨,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아...."
창은은 여전히 창현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그저 그녀의 작은 머리를 꾸벅 숙이는 걸로 인사대용을 한다.
"...."
나참, 진짜 현실판 봇치같네.... 다만 왠지 귀여운 동생같은 느낌이라서 오빠, 선배마냥 챙겨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모쪼록 그렇게 끝난 인사였다.
하지만 인사 뒤로 중요한 게 남아있었다. 그건 바로.
타이밍 좋게 유하는 어른스럽게 화제를 꺼낸다.
"후훗, 그러면 창현 씨, 가장 중요한 화제라서 바로 말씀 드리는 건데요. 우리 하숙생들 계약 유지 혹은 해지건에 대해서 말이에요."
드디어 올게 왔구나.
화사한 그녀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잠시 방심하고 있었는데 계약건때문에 긴장감에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창현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영업용 미소를 짓고선 말한다.
"네, 유하 씨, 편히 말씀 주세요."
유하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아까도 하숙생인 저희끼리 이야기하고 또 창현 씨랑 인사 나눴는데 우선은 우리 하숙생들 의견은 대체적으로 창현 씨가 성실한 느낌의 훈훈하시고 건장하신 또래의 남자 분이라서 집 방범에는 괜찮기에 호감이라는 입장이에요. 만약에 함께 생활한다면 남녀이니까 탈의실, 화장실, 빨래 정도는 규칙을 정해야겠지만요."
"네."
" 다만 창현 씨가 어디까지나 젊은 남자 분이기에 하숙집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애로사항이 필까봐 저희 하숙생들이 고민 중이에요."
어라 젊은 남자라서 안되는 하숙집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길래... 그게 뭘까?
창현이 쉽게 갈피를 못잡아서 고심하는 사이에, 유하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다름이 아니라... 밥때문이에요!"
"아... 밥이라면?"
"네, 일전에 주인 분이신 할머님이 요리에 한솜씨하셔서 우리가 걱정없이 밥을 잘 먹었거든요. 건강, 영양을 잘 챙기고선요. 그런데 만약에 새롭게 주인이 되신 창현 씨가 일전에 할머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요리를 어느 정도 하실줄 모른다면 냉정하게 말씀드려서 저희 하숙생은 여기 있을 메리트가 없다고 할까요? 하숙집에서 비싼 돈 낸 이유가 숙식, 식사가 중요해서 말이에요."
맏언니 유하의 이의제기, 주인 교체에 따른 식사의 염려였다.
그녀의 지적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말그대로 하숙집은 숙식, 즉 집밥같은 요리가 가장 큰 목적이기에 여성 분들도 비싼 월세 내고선 생활하는 건데 맛있는 밥이 없다면 굳이 하숙집에 남을 이유가 없다.
정말로 창현 자신이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면 요리를 잘할 확률이 거의 없기에 소중한 그녀들을 붙잡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창현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팔을 걷으면서 말한다.
"유하 씨, 그러면 지금 테스트해보면 되겠네요."
"네?"
"시간은 조금 이르지만 제가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식사 만들어볼게요! 부디 드시고 판단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