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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52.새로운 시작


식사를 마치고 세진이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세진이는 내게 폰을 건냈다. 내 폰이다. 어디갔는지 했는데 세진이가 들고있었던 모양이었다. 난 전화기를 받고 톡을 열었다. [당장 대답해.] 진서의 마지막 톡의 내용이 보인다. 잔뜩 메세지가 쌓여있다. 단톡방부터 진서의 개인 톡까지... 각각 수십 개 씩... 하지만 도저히 톡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때 세진이가 내 폰을 낚아챘다. "돌려줘." "잠깐만." 잠시 후 돌려받은 폰을 확인해보니 단톡방에는 나가져있었고, 진서의 개인톡의 내용은 지워져있었다. "뭐야? 왜 지운건데?" "...." "....진서가 뭐라고 썼어?" "그냥 보지마." 아마 세진이는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 꺼다. 세진이도 같은 방에 있었으니... 세진이가 톡을 지웠다는 건, 내가 안보는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거겠지... 걔들이 뭐라고 했을까? 이대로 그럼 진서와 안 봐야 하나? 현우와 수민이와 관계도 여기서 끝인가? 그게 맞는 것일까? "나랑 결혼하자." "뭐!?"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갑작스러운 세진이의 말에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 미,미친놈아!! 그게 뭔 소리야!!" "왜? 싫어?" "아,아니, 싫고 말고가 아니라...." "그럼 일단 같이 살자." "같이 살기로 했잖아." "아니, 우리 부모님 집에서 말고, 같이 자취하자고. 나도 알바해서 돈 벌어서 집을 구해볼께.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내가 싫지 않으면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자." "...." 진심 인건가? 나랑 결혼하고 싶은건가? 그럼 나 지금 프로포즈 받은건가? 나도 다른 여자들처럼 평범하게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건가? 심장이 두근거린다. "싫어....?" "자,잠깐만....." 싫지는 않다. 싫은 건 아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머릿속에 들어 닥친다. 세진이 부모님에게 내가 누군지도 밝혀야 할 것이고... 아... 그래서 혹시 내가 누구인지 밝히려고 했나? 세진이의 얼굴에는 나름 비장함과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진심이구나.... "일단.... 같이 사는 건 괜찮을 것 같아... 나도 알바 열심히 해서 돈 보탤거니깐..." ******* 나는 그렇게 세진이와 동거를 하게 됬다. 세진이 부모님은 날 딸처럼 잘 대해주셨지만 뭔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학교를 가고, 남는 시간은 알바를 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세진이와는 같이 등하교 하고 학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붙어있었다. 그냥 세진이의 집에서 자고 씻고 학교에 갔다. 붙어있는 시간도 많아졌고, 등하교도 같이 했다. 더욱 세진이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중간고사를 마친 뒤 이미 모아 놨던 돈과 서로의 알바비를 모아 대학교 근처에 원룸을 구했다. 같이 공부했고, 같이 자고, 같이 섹스 했다. 붙어있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그러면서 과 내에 나랑 세진이가 동거한다는 소리가 돌았다. 같이 원룸에 들락거리는 것을 본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에 대해 남자를 밝힌다는 소문이 도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진서를 남자친구라고 말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진이와 동거를 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다 사실이었고, 그래서 딱히 소문을 부정하지않았다. 그리고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세진이가 있었으니깐.... 세진이만 있으면 됐다. 그 땐 그렇게 생각했다. 그 만큼 행복했으니깐... 쭉 이대로 였으면... *******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적한 시간, 나 빼고 아무도 카페 안에 없어서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카페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뭘 드릴...." 손님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비지니스용 미소를 띄고 인사를 건내려 했다. 하지만 얼굴을 본 순간 난 얼어붙고 말았다. 단 한번 마주쳤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 퇴원 첫 날, 날 찾아왔던 사채업자였다. "어, 어쩐 일이시죠?" "카페에 커피 마시러 오지, 왜 왔겠어? "아.... 뭐... 드릴까요? "아이스아메리카노, 작은 걸로. 테이크아웃.... 그런데 남자친구 분이 요새 바쁘신가 봐? 그... 입금이 좀 늦어서 말이지?"" "입,입금이요...?" "응, 그래 입금... 집 주소는 알고있지만 다짜고짜 찾아가기는 뭐해서 말이지... 혹시 헤어졌나 싶어서?" 별 거 아닌 대화. 나지막한 말... 그럼에도 살기가 느껴졌다. 왜 헤어졌냐 물어보는 거지? 돈이 안들어와서? 진서가 다 갚은게 아니라 분할로 갚고 있었나? 헤어졌다고 말을 하면.... 갚을 돈이 없다는 소리가 되는 건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무사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아니에요. 연락해 볼게요." 난 빠르게 거짓말을 했다. 그는 잠시동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고, 난 너무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부탁해요. 아 참, 이사했던데? xx동으로." 내 뒷조사를 한건가? "아.... 네. 학교가 가까워서..." "아, xx대 다닌다고 그랬지?" 그 대학에 다닌다고 말한 기억이 없다.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네....." 난 대답을 하며 커피를 건냈고, 그는 커피를 받고는 바로 떠났다. 몸이 떨렸다. 그 떨림은 한참이 지나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밤이 되어 알바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입술이 바짝말랐다. 어떻게 해야하지? 알바를 하는 내내 고민을 해봐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진이와 살 자취방을 구하느라 당장 이번 달에 값을 돈도 없었다. 사실 몇 백이라는 대략적인 숫자만 알지 정확히 얼마인지도, 어디로 입금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진서가 다 해결해줬기 때문에.... 그 때 폰에 메세지가 왔다. [마쳤어? 보고싶어....] 세진이의 톡이다. 세진이에게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하지만 세진이도 모아놓은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안다. 세진이가 부잣집 도련님도 아니고, 작은 식당 하나 운영하는 세진이의 집안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안다. [응. 곧 들어갈게] 나는 결국 세진이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진서에게 연락을 해봐야 하나? 하지만 그건 너무.... 차라리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왜 까먹고 있던 거지? 몇 억이나 되는 돈을 한번에 갚았을 리가 없는데.... 진서의 연락처를 찾았다. 통화버튼을 누를려 하는데 차마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서가 아직 너무 미워서... 그럼에도 너무 내가 염치없게 느껴져서... 그 때 검은 SUV 한 대가 내 옆에 섰다. 뭐지 싶을 때, 문이 열렸다. 그 사채업자였다. "집에 대려다 줄게요." 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대학교 원룸촌의 골목, 소리치면 구해줄 사람이 있을까? 뛰면 대로변까지 얼마나 걸리지? 하지만 사채업자의 눈빛을 본 순간, 만약 도망치다 잡히면 정말 난 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괘,괜찮아요... 요 앞이라 걸어가면...." "타라고." 나지막하지만 거부할수 없는 위압감이 목소리에 있었다. 타면 안되는데.... 아는데.... 타면 정말 큰일 날 꺼 같은데.... 하지만 내 몸은 이미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얼어붙어 꼼짝하지 못하고 그의 손길에 이끌려 차에 타고 있었다. 차에는 그 말고도 이미 검은 옷을 입은 깡패가 조수석과 뒷자리에 한 명씩 타있었다. "폰 줘요." 나는 그에게 내 전화기를 넘겼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차는 어디론가 향했다. 그 방향이 내 집이 아닌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 의문도 재기할 수 없었다. 단지 속으로 빌기만 할 뿐....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유흥가의 건물의 지하였다. 무거운 방음 벽을 열고 들어가자 강한 향수냄새와 담배연기가 코를 찔렀다. 긴 복도, 은은한 붉은 조명과 각 방에 적힌 번호가 마치 노래방 같아 보였으나 뭔가 달랐다. 홀 복을 입은 아가씨들과 웨이터들이 이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방 너머 새어오는 웃음소리, 잔을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복도를 따라 걸으니 뭔가 다른 방들과 따로 구분 된 듯한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에 이 남자와 둘이 두꺼운 방음벽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벽을 따라 놓인 푹신한 가죽 소파, 가운데에 테이블이 있는 방이었다. 그는 나를 옆에 앉혔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웨이터들이 술과 안주를 방안으로 가져왔다. 그는 이번에는 얼음 통에서 얼음을 집게로 집어 잔 두개에 넣더니 그 잔에 위스키를 조금 씩 따랐다. "마셔." 그는 한 잔을 내게 건냈다. "괘,괜찮아요...술이 약해서..." 그의 표정이 사늘해지며 그 잔을 내 앞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셔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황급히 잔을 집어 입에 가져다댔다. 혹시, 뭐라도 타져 있으면 어떻게 하지? 입에 대고 망설이고 있을 때. 그도 한 잔을 들어 마셨다. 다행히 뭐가 든 술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난 살짝 입에 술을 넣었다. 순간 입에 불이 난 줄 알았다. 너무 독하다. 하마터면 뱉을 뻔 했다. 난 생 처음 마셔보는 위스키였다. 난 찔끔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는 이미 그 잔을 비운 뒤였다. 그는 잔을 들어 내게 내밀었다. 잠깐 멍 때리다. 그게 술을 따라라는 의미인 것을 깨 닫고 황급히 위스키를 들어 잔에 따랐다. 얼마나 따라야 할지 몰라, 남자가 따랐던 것과 같은 양으로. 그는 잔을 집어들고 살살돌리며 잔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서연우씨." "네..." 한 마디 대답하는 것도 온 힘을 다해야만 뱉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그의 한 마디에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다. "왜 거짓말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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