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일보 후퇴
내 감사 인사에 당황한 듯한 총잡이가 묘한 웃음을 띄우더니 아내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계속해서 사격을 이어 나갔다. 한발 한발 정확한 솜씨로 내 근처로 달려오던 좀비들의 머리통을 거침없이 터트려 나가는 총잡이의 사격 솜씨는 절로 감탄이 토해질 정도였기에 변종은 몰라도 좀비들 정도라면 충분히 뒤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최대한 변종 중점으로 족친다. 넌 나머지 좀비들 숫자를 최대한으로 줄여!”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죽지마 너 죽으면 전부 끝이니까!”
나는 총잡이의 대답을 듣고 나서 나에게 주먹을 휘둘러온 변종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벽을 뚫어낸 덩치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마한 신체의 변종. 게다가 주변에는 저 녀석 말고는 다른 변종들은 보이지 않으니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대로 뒤져버려!”
크게 소리치며 다리에 힘을 집중해 높이 뛰어오른 나는 느린 몸놀림 때문에 주먹을 휘두른 이후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못하고 있던 덩치의 어깨에 가볍게 착지한 후 녀석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가각]
강한 금속끼리 맞부딪치는 것처럼 뼈가 저릿하게 울리는 소음, 평소라면 아니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엇이든 단칼에 잘라낼 것 같던 예리한 칼날이 덩치의 목뼈에 걸린 것도 모자라 검 전체에 금이 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쉬이익..쉐엑!”
칼날에 의해 목구멍이 막혀 우렁찬 울음소리 대신 기분 나쁜 쇠 긁는 소리만을 내뱉던 덩치는 자신에게 매달려 당황하고 있는 나를 떼어내기 위해 오른팔을 휘저어 나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고 등뼈가 으스러지는 것만 같은 통증과 함께 입에서 피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씨발... 씨발!!”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내려치는 덩치의 공격. 이렇게 고전할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그저 간단하게 쓰러뜨릴 수 있는 시체들 중 하나, 그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당하고 있었다.
[으음~ 이대로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도망치는 게 어때?]
꼬맹이를 보호하듯 안고 있던 팔을 풀고는 덩치에 목 부분에 박혀있는 칼등 부분을 붙잡았다. 끈적거리고 차가운 그저 불쾌하기만 한 칼날의 감촉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는 온 힘을 다해 칼날을 힘껏 밀어 넣었다.
[뿌직, 뿌득 뿌드득]
굵은 뼈와 근육 그리고 썩어버린 혈관과 피부를 갈라 마침내 칼날이 목 전체를 베어내 변종의 머리가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자 금이 갔던 칼 또한 완전히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허억...허억”
“무식하잖아…!”
“알고있으니까 닥쳐...”
총잡이가 말한 건지 아니면 단지 환청인지 구분을 할 수 없어 말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온몸은 말그대로 만신창이. 그럼에도 나는 몸을 일으켜 새로운 칼날을 뽑아 들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
“저런 썩어빠진 시체 새끼들은 이 정도 몸뚱아리로도 충분해 그러니까 제발 그 입 닥치고 쏘기나 해!”
한층 무거워진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며 뽑아낸 검을 크게 휘둘러 다가오던 좀비들을 전부 베어 넘겼다. 검은튀튀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바닥을 적셨고 몇몇의 좀비들은 자신을 지탱할 신체를 잃어 바닥으로 널브러졌지만, 그 배 이상의 좀비들이 계단 쪽에서 막무가내로 쏟아져 들어왔기에 사기가 꺾일 것만 같았다.
“아주 지랄이란 지랄은 다 하는데? 아주 온 세상 좀비들을 끌고 온 것 같아”
“그러니까 빨리 도망치자니까?!”
“아니 조금만더 사냥하다간다”
나의 단호한 한마디에 총잡이는 이후 입을 다물고 사격에만 집중했다.
....
열 마리, 스무 마리, 오십마리....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며 좀비들을 계속해서 베어나갔지만 다친 내 몸은 어느새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허억...허억”
“야 우리 합쳐서 적어도 백은 넘게 죽였어! 오늘은 이만하면 됐잖아 한번 위층으로 되돌아가서 정비하는 편이 좋지 않아?!”
총잡이의 말이 맞았다. 변종이 몇 마리나 더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건만 그 녀석들이 튀어나오지 않은 건 단순히 뇌의 변덕이거나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는 거.
“알아 안다고 닥치고 쏘기나 하라니까!”
내 몸의 감각이 조금 옅어진 것이 느껴졌고 좀비들이 얼마나 더 올라올지 변종이 언제 나타날지는 미지수였다. 그렇지만…. 나에게 시간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얼마나 더 이 훌륭한 신체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몸에서 검을 뽑아낼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얼마나더…. 꼬맹이를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전에 한 마리라도 더 죽여아만 한다.
“....니가 죽으면 전부 끝이라고 했잖아 뭐가...!!
[퍼억!]
“읏..!!”
나에게 다가오려던 총잡이가 창문 옆으로 가까워지자 기다렸다는 듯 창문이 깨지며 뼛조각 하나가 총잡이의 어깨를 꿰뚫었다. 저 녀석이 죽으면 그대로 게임 끝. 하지만 내 몸도 이미 만신창이다 저 녀석을 구하는 것보다 차라리 무시하는게...
“아...”
품안에서 들리는 꼬맹이의 작은 메아리가 총잡이를 버리려던 나를 쇠사슬처럼 옭아맸다.
“구하라고 하는 거냐 꼬맹아…? 빌어먹을”
[무리야 지금 밖에 그 눈이 덕지덕지 붙은 고깃덩어리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를 끌어내기 위한 함정이라고!]
“알아!!”
거리는 매우 가까웠고 내 몸은 아직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나는 들고 있던 칼을 좀비에게 곧장 내던지고는 총잡이에게 달려가 남은 한쪽 팔로 그녀를 꼬맹이와 함께 품 안으로 끌어안아 수많은 뼛조각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푸흐…. 씨발 거 존나게 아프네”
입을 꽉 깨물었음에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신음이 나올 것만 같아 억지로 허세를 부리면서 총잡이를 안은 채 몸을 일으켰다. 생겨난 상처에서 끝임없이 피가 흘러나왔고 안그래도 옅어진 신체의 감각이 완전히 마비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진작에 돌아갔어야지]
“...푸흣 그래 진작에 돌아갔어야 했네! 꼬맹이가 이년을 구하라고 할지는 몰랐단 말이야.”
“어..?”
“아직더 싸울 수 있었는데 괜히 돌아가야 하겠다는 말이다. 빌어먹을 여자야”
“쿠아아악!!”
고통에 따라 아드레날린으로 머리가 핑핑 돌아가고 있던 와중 들려온 변종 특유의 꺼림직한 울음소리, 뇌는 아마 지금이 우리를 죽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좀비로 체력을 빼고 변종들로 마무리하려는 거겠지. 시체 주제에..!”
“너, 너 괜찮은 거 맞아 혼잣말도 하고 몸도 만신창이잖아. 도망칠 수 있겠어?”
맞은 어깨를 감싸 쥔 채 오들오들 떨면서 나를 올려다보는 총잡이의 눈동자는 기분 나쁜 절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뒤지고 싶겠냐? 닥치고 입 닫아라 괜히 혀 씹어서 뒤지지 말고”
조금만 힘을 풀면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은 몸을 이끈 채 나는 한쪽 어깨에는 꼬맹이를, 다른 한쪽에는 총잡이를 매단 채로 우리가 내려왔던 장소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으어어..!”
밧줄을 내렸던 장소까지 아직 멀었건만 거센 숨을 몰아쉬며 악착같이 달리고 있음에도 조금씩 가까워지던 좀비들이 내 바로 등 뒤까지 따라온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달려봤자 따라잡혀 죽을 거라면 차라리...
[타-앙!]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커다란 소음이 머릿속의 고민을 장렬하게 날려버렸다.
“뒤쪽에 가까이 붙는 녀석은 내가 쏠 테니까! 멈추지 말고 달려!”
“어깨를 다친 것도 모자라서 매달린 채로 쏘겠다는 거냐? 씨발…. 오케이 알았다고 귀가 터질 것 같은데 어떻게든 참아보마!! 그러니까 잘쏴”
“나도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거든 잘쏘긴 뭘 잘쏴?!”
타앙 타앙 멈추지 않고 쏘아대는 탄환과 쓰러지는 시체의 소리, 게다가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마치 기계처럼 재장전을 하는 완벽한 움직임이 선명하게 느껴져왔다.
“허억...너, 뭐하던 년이길래 이렇게 총을 잘 쏘는 거냐? 전직 군인이라도 되냐?!”
“....아버지가 클레이 사격장을 운영하셨어서 총이랑은 원래부터 친했어, 뭐 권총은 몇 번 만져 본거랑 몇 달간 쏴본 게 다긴 하지만 말이야.”
뭔가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작은 목소리로 물음에 답해주는 총잡이. 사격장이면 사격장이지 클레이 사격장은 또 뭔지...
“그러냐? 올라가면 자세히 알려줘라.”
“야 갑자기 그러지 마! 그거 사망 플래그야?!”
“푸핫! 그것도 그렇네! 좋아 그러면 방금 한 말은 취소하지.”
어느새 우리가 내려왔던 밧줄 앞까지 도달한 나는 꼬맹이와 총잡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칼을 뽑아 들었다.
“보나마나 우리가 같이 올라가는 순간 저새끼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서 줄을 힘으로 끈어버릴거야. 먼저 올라가 막아줄태니까”
[평범하게 좀비들만 있었다면 같이 밧줄을 잡고 올라가서 곧바로 따돌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익숙한 환청이 나를 비웃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닥치라고 소리쳤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씨발 내가 아무리 힘이 넘쳐도 일단 인간이긴 하거든? 한쪽 팔이라도 쓸 수 있어야 어떻게든 기어 올라갈 거 아니야 두 사람 다 들고는 절대 못 올라가”
“좀비를 밟고 2층 난간까지 기어 올라오는 괴물이 인간은 무슨....”
“야야 벌써 정이라도 들었냐? 내가 그놈 반병신 만든 거 잊은 거 아니지?”
“....죽지 마 궁금한 거 전부 말해줄 테니까”
“그래그래 나는 1초만에 기어 올라갈 수 있으니까 너만 빨리 올라가면 살수있어 작작하고 빨리 꺼져 병신년아”
나는 제일 선두로 달려온 좀비의 머리통에 칼을 꽂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