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프로토타입의 행방(3)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여성과 나는 무척이나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한 명의 인물에게 씌어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라거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해 가슴의 안쪽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져 무너지는 점이라거나…. 심지어는 나와 생각하는 방식마저도 비슷해 역겨울 때도 종종 있었다.
“헤헤….”
“어째서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건데”
그렇기에 나에게 목이 졸리면서도 웃고 있는 여성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내가 꼬맹이의 환영을 계속 보는 것처럼. 여성 또한 나를 자신의 남자친구 혹은 자신을 지키려다 죽은 덩치를 보고 있는 거겠지.
“웃지마 뭐가 좋다고 웃는거야”
여성을 보면 볼수록 역겹고 추악한 나의 민낯을 그대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하기만 하고, 멍청하게 배신당하는 혼자가 되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제 불능 쓰레기….
[죽여! 전부 죽여버려!]
[푸읍, 푸하하하 너 진짜 대단하다 지금 발기하고 있는 거야?! 나중에 시체를 보면서 자위라도 하려고? 아니면 강간하려는 건가?]
[하긴, 그런 연약한 꼬맹이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할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오나홀은 무슨 오나홀이야 우하하하]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환영들이 나타나 나를 비웃었다.
“시끄러워 닥쳐!”
[그저 자위라는 쾌락으로 현실에서 도피했던 네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자위하는 원숭이일 뿐이야]
꼬맹이를 지켜주지 못한 힘없는 내가 미웠다. 방에 틀어막혀 현실을 외면한 채 자위라는 쾌락으로 도피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일찍 과거를 털어내고 방문을 열어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나 자신이 한심했다. 여자 친구를 믿었던 동료들에게 빼앗긴 내가 병신같았다. 야구선수라는 꿈을 간단하게 포기해버린 내가 경멸스러웠다. 오나홀이라고 부르면서 자위도구로 이용하려던 꼬맹이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어버린 내가 혐오스러웠다. 배신자와 대머리를 조금이나마 믿어버린 내가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싫었다.
...이런 나 자신을 몇백 번은 찔러 죽여버리고 싶어 견딜수없었다.
“나도…. 같이”
머리가 지끈거리며 극심한 한기가 온몸에 퍼져나가던 도중,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과 함께 따뜻한 무언가가 내 얼굴을 쓰다듬어왔다.
“뭐 하는 거야…. 손때 내 몸에 손대지 마!”
나에게 목이 졸려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려 죽어가는 와중이었음에도, 여성은 살기 위해 저항하기는커녕 그저 묵묵히 나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눈을 마주 보았다.
“당신은...왜그렇게...”
그 탁한 눈동자는 죽은 남자친구도, 자신을 지키려다 죽은 덩치도 아닌 순수하게 자신을 죽이려 드는 나를, 나만을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손길이 너무나도 따뜻했기에 꼬맹이와 비슷한 감촉이었기에…. 나는 결국 여성의 목에서 손을 떼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씨발 씨발 너 도대체 뭐야 어떻게 한거야”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내 감정을 좀먹어가던 초조함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방금까지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눈앞의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여성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도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그 무엇하나 알 수 없었다. 그 썩은 시체와도 같은 눈동자로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콜록, 콜록….”
자신을 지키려던 덩치가 남친과 비슷하게 보였던 거냐,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튀어나온 거냐, 아니면 홀로 꼬맹이와 하룻밤을 보낸 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거냐, 다양한 의문들이 있었지만, 괴롭게 기침을 토해내며 숨을 들이키는 여성의 모습을 보자 모든 말들이 목구멍에 막혀 튀어나오지 않았다.
“왜…. 어떻게 갑자기 나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거냐”
겨우겨우 튀어나온 한마디가 앞뒤를 전부 잘라먹은 멍청한 질문이었음에도 여성은 깊게 고민하는 듯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어이없는 말을 내뱉었다.
“제가 보던 환상마저 저 멀리 날려버릴 정도로 당신이 너무 못생긴 표정을 지어 보였으니까요.”
“장난치지마 그딴 게 무슨 이유가…!”
“에헤헤 이렇게 보니까 전혀 닮지 않았네요 훨씬 못생겼어요. 진짜 자살을 하려고 하는 절박한 원숭이 같다니까요 거울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여성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꼬맹이와 겹쳐 보일 만큼 해맑게 웃는 그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수 없었다.
“당신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망집에 사로잡혔던 거겠죠 이 사람에게만은 버림받고 싶지 않다고.”
나와 닮았던 그녀는 이제는 나와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 그녀혼자 나를 내버려둔채 앞으로 나아가 버렸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치사하네….”
“네, 네?”
“아니 아무것도…. 그것보다 미안하다 갑자기 목을 졸라서 나도 정신이 나갔었나봐”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당신에게라면 딱히 죽어도 상관없었으니까”
[치직]
그게 무슨 말이냐고 여성에게 되물으려 했을 때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을 졸랐을 때 떨어졌던 거겠지.
[여보세요 내 말 들려요? 형?!]
꼬맹이의 백신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학교 쪽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무표정을 유지하며 담담히 무전기를 들어 올리자 귀를 울릴듯한 굉음이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 잘 들리니까 목소리 좀 낮춰주라 머리가 어지러워서 토할 것 같아]
[와 금방 돌아온다고 하셨으면서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고릴라 여자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저희도 진짜 위험할 뻔했다고요?]
[고릴라녀…? 아 그년도 살아있었냐? 기억이 뒤죽박죽이라 생각이 잘 안 나네]
[참나 누가 고릴라야 고릴라가!? 진짜 너무한거 아니냐 사정사정 하길래 기껏 학교에 남아줬더니 이봐 듣고 있냐 괴물 양반 (잠깐 내가 말하고 있었잖아 당장 무전기 돌려…!) 여기는 우리끼리 최대한 버텨 볼라니까 몸 상태가 좋아지면 바로 돌아와 뭐, 그 정도 상처면 아직도 침대에서 골골대고 있었겠지만]
[이봐 형씨(아니 야 내가 지금 하고있잖아…!) 몸은 좀 어때?]
시끌벅적한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들에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미안 몸은 좋아졌는데 아직은 돌아갈 수 없어]
[엥? 기껏 학교를 탈환했잖아 형씨 아직 태양열발전기도 돌아가서 엄청 쾌적하다고? 살려면 여기가 좋아]
[그딴건 말안해도 알고있어 의사가 백신을 만든 것 같더라고 그것 좀 찾아야해]
[백신?! 지금 백신이라고 말한 거야 형씨? 잘못들은거 아니지?!(백신이라니?!) (엥 진짜 그런걸 만든거야 재미없는데...)]
“배, 백신이요?”
무전기와 등 뒤에서 깜짝 놀란 듯 큰소리가 오고 갔다.
[어 혹시나 의사가 살아있나 해서 편의점에 왔다가 우연히 잠겨있던 서랍장을 열었는데 무슨 보고서 같은 종이에 쓰여있더라, 프로토 타입이긴 해도 백신을 완성했다고]
[잠깐 그럼 그것만 있으면 좀비들도 전부 치료될 수 있는 건가?! 가령 꼬맹이라던가]
경찰관의 격양된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팠다.
[나도 몰라 있다는건 알아냈는데 찾지를 못했거든, 창고에 있는 약이란 약은 좀비 한 마리를 붙잡아서 전부 실험해봤는데 전부 꽝, 아니 실패야 오히려 치료는 커녕 돌연변이를 가속화시켰거든 쯧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어디에 숨겨둔 건지 원]
“...그에…. 그에 엘”
여전히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이제 좀비라고도 돌연변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괴생명체를 힐끔 바라보며 말하자 뒤에 있던 여성이 몸을 움찔거렸다. 이제야 발견한 건가? 시야한번 참 좁네
[의사가 가지고 도망쳤을 거야 형씨, 그 양반 은근히 얍삽하니까 약탈자들이 습격하기 전에 어떻게든 도망갔겠지 그런 사람이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
[(잠깐 줘보세요!) (야 갑자기 달려들지 마!!) 형 일단 여기는 저희 알아서 해볼 테니까 백신부터 찾으세요. 꼬맹이를 고쳐야죠]
[게이 말이 맞아(저 게이가 아니라니까요!) 여기도 어떻게든 잘 돌아갈 수 있겠더라고 살아남은 성노예…. 가 아니라 여성들이 도와줘서 그러니까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 도망친 의사부터 찾아 형씨 내일 정오쯤에 우리도 그쪽으로 사람을 보낼게]
[...알았어 간간이 무전으로 통화할 게 고맙다]
나는 잠깐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손에 쥐고 있던 무전기를 주머니 안으로 쑤셔 넣었다.
“학교쪽으로 합류하고싶으면... 지금이라도 태워다줄게, 나랑있으면 불편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