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프로토타입의 행방(1)
꼬맹이의 게걸스러운 식사 장면을 끝까지 눈을 때지않고 지켜보던 나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내일 또 가져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어어어...”
마치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주듯 길게 울음소리를 내는 꼬맹이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어준 다음 지상으로 올라와 근처에 있던 가구들을 전부 이용해 지하실의 입구를 완전히 틀어 막아버렸다. 이정도로 충분할까?
“스읍...하아 이정도면 충분해 그럼 그렇고 말고”
[이 정도로는 꼬맹이를 지켜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거 너도 잘 알고있잖아? 차라리 같이 가는 게 어때? 위험하지 않을거야 그냥 산책이라고 생각해]
정신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셨음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이 악마처럼 속삭여 왔지만, 꼬맹이를 대리고 밖으로 나갔을 때 겪었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사라진 의사와 학교에 남아있을 경찰관과 게이도 챙겨야 하는 상황, 밖같은 충분히 위험했다.
“좇까 이 정도면 충분해...그러니까 내앞에서 당장 사라져”
이게 꼬맹이를 위한 일이라고 억지로 마음을 다잡으며 게이에게서 돌려받았던 약통을 열어 입안에 털어 넣어 환청을 몰아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이 정도로 충분하다니 혹시라도 기회를 엿보고 있을 약탈자들이 있을지 모르잖아 정신 차려 상황을 똑바로 보라고]
흐릿해져 가는 환각과 환청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보이고는 약발이 더욱더 빨리 올라오기를 바라며 집을 나섰다.
◆
약물을 한번에 다량으로 삼켜버린 부작용 탓에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겨우겨우 편의점 앞까지 도달하자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불까지 질렀는지 우리 집과는 다르게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폐가로 밖에 보이지 않는 편의점의 입구... 만약 여기서 의사가 남아있었다면 그대로 타죽어 버렸겠지.
“하아... 이 정도까지 지랄을 해놨는데 살아있으려나 모르겠네 아오 빌어먹을 진짜”
크게 한숨을 내뱉은 뒤 적어도 시체 정도는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깨져 있는 현관문을 뛰어 넘어 의사가 틀어박혀 있던 창고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죽었으면 적어도 백신이라도 남겨놓고 갔길 바란다. 엿 같은 군의관 새끼야”
한 걸음 내딛자마자 스산한 한기와 사람이 떠났음에도 악착같이 남아있는 메케한 의약품들의 냄새에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 불에 의해 완전히 녹아내려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창고의 철문을 발로 걷어차 부순 뒤 주변을 살폈다.
비가 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열기를 막아준 철문 덕분일까?
철문으로 막혀있던 창고의 안은 불타올라 잿더미처럼 변해있던 바깥과는 달리 비교적 깔끔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종이들과 방치되어있는 비커, 현미경들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뭐야 떠나기 전이랑 별반 다를 게 없네 쯧 청소 좀 하라니까”
찌푸려졌던 얼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그렇게 열심히 하고있었으니 죽는 그 순간까지도 백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겠지.
방금까지 의사가 필사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책상을 쓰다듬던 도중 서랍에 달려있던 자물쇠가 손에 걸렸다. 이런 자물쇠가 전에도 있었던가?
[백신의 개발, 성공적... 필요]
뭐라도 숨겨놓은 것이 있는 건가 싶어 철컥하고 살짝 힘을 주어 서랍째로 자물쇠를 뜯어내 책상 위로 올려놓자, 여전히 내가 알아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글자가 적혀있는 세장의 종이가 들어있었고 그 사이로 반짝거리는 희망적인 단어들이 나의 이목을 끌었다.
“백신이 성공적? 진짜... 진짜 만들어 낸 건가?!”
나는 기대감으로 부들거리는 손으로 종이 하나를 들어 올려 자세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는 우리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보균자, 그중에서도 이성을 확실하게 유지하는 개체가 필요했고 나는 운이 좋게도 도시에 도착한 뒤 얼마지나지 않아 곧바로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안정한 정신을 가진 그에게 접근해 상호간의 신뢰, 혹은 의존관계를 만들고 나서 백신의 개발에 착수 하는 것이….]
의사가 그룹에 합류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했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나의 가설입니다만, 아마 당신들의 몸은 바이러스에 맞추어 진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고열뿐이었습니까?>
“하나의 가설이라더니…. 전부 알면서 했던 말이라는 거잖아 엿 같은 새끼 처음 구해줬을때부터 전부 알고있었어. 쯧 살아있으면 얼굴이라도 한 대 쥐어박아줘야 속이 후련하겠어”
꽤 옛날에 작성한 것인지 너덜거리는 종이에는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보고서처럼 다른 종이와는 달리 깔끔한 필체로 정리되어있지만,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내용이 적혀있기는커녕 의사가 나를 속였다는 것밖에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해 뒤로 던져버리고는 다른 종이를 손에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대해진 폭력성, 여자를 안고싶다는 성적 욕구의 증대화, 환청과 환각, 한 인물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를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인격적으로 불안정하게 변화해가는 보균자는 옆에서 보기에도 불안할 만큼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에 한번정도는 묵었던 감정을 분출할 필요가 있어 보여 조처를 했다. *그룹의 리더에게 단단히 주의를 받았던터라 은근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충고하겠습니다.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마세요>
“그따위로 말하면 어떻게 알아먹냐고 엿 같은 새끼….”
[이야기를 나눈 뒤 며칠 간격으로 괴로워 하긴 했으나 한 번의 감정 분출 이후 예상대로 잘 추스르는 모습이 확인되었으며 옛날보다 더욱더 바이러스에 강하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재 이후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지휘가 필요해졌다고 판단하였기에 앞으로 나섰을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은 추후 보고서를 작성하겠음]
“한 번의 분출 이후라면 꼬맹이가 감염된 것을 인지했을 때…. 안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건 잘 모르겠네 의사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던 건가?”
백신이 아닌 그저 나에 대한 관찰을 줄줄이 적어놓은 구겨진 종이 또한 뒤로 던져버린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피로 적셔진 종이한장을 바라보았다. 이것까지 백신에 관한 게 아니라면…. 이 방대한 종이를 전부 뒤지는데 더욱더 시간을 낭비하게 되겠지.
“쯧, 알아먹을수 있게만 적혀있어라”
[백신 개발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각기 다른 변종들에서 추출한 표본 그리고 바이러스의 변화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 되어있는 좀비들에게 Ganovo, Farxiga, Remdesivir. Lenzilumab 등등 기타 다양한 약품들(복귀 이후 지금까지 했던 일, 사용한 약품과 조합 방법들을 첨부하여 ‘상세하게’ 보고하겠음. 하루빨리 구조해주길 바람. 내부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기 시잭했음.)과 보균자의 혈액에서 채취한 극소량의 특수한 세포 및 항체를 이용하여 배합 아직 불안정하지만, 백신으로 부를만한 프로토타입…. 필요한…. 보균자에게서…. 창고….]
들어본 적도 없는 약품들의 향연에 정신이 아찔해 지던 것도 잠시, 짜증이 확 솟구쳐 올랐다. 종이에 묻은 새빨간 혈액으로 인해 중요해 보이는 끝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이후에는 마치 뚝 끊긴 것처럼 중단되어 있어 내용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시점에서 약탈자들이 습격한 모양인 듯했다.
“미치겠네….”
한참을 종이를 붙들고 끙끙대며 내용을 유추한 끝에 ‘프로토타입의 백신이 만들어졌고 창고 근처에 숨겨뒀다.’ 까지는 어찌어찌 유추할수 있었지만, 보균자에게서 뭔가 더 필요한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기에 힘이 탁 풀려버렸다.
“찾기만 한다면 가능성은 있나…?”
아무리 프로토타입이긴 해도 그렇게 감정 표현 이 없던 의사가 이렇게까지 희망차게 적어놓은 것을 보면 약간의 효능은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든 찾아낸다.”
의사가 탈출하면서 가져갔을 가능성, 약탈자가 부숴 먹었을 가능성 등 불확실한 백신의 프로토타입의 행방이었음에도 나는 결의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백신이 만들어졌다고 알아버린 이상 꼬맹이를 위해 그것을 필사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