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학교
도서관의 여성과 함께 거점으로 귀환한 지 이주일이 막 지나가던 시점이었다. 여성이 어찌어찌 내 주변에 머무르며 생활하는 것에 슬슬 적응해가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안정화된 거점에서 대머리가 세력을 불리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있어서는 엄청나게 미묘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 미묘한 시간, 멍하니 시간만 보낼뿐인 무료한 시간, 진전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나날. 그게 이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반복되어 제자리에서 헛바퀴를 돌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정도일까?)”
꼬맹이를 닮은 여성을 품에 안으며 가까스로 안정감을 되찾고 있긴 했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일 뿐 언제 정신병이 재발할지 알 수도 없었기에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음에도 의사가 만들고 있는 백신의 상황도 꼬맹이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녀석들을 쫓을 단서를 찾는것조차도 어느것 하나 진전이 없었다.
“초조한 건가?”
마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느낌이 가슴 한복판에 가시처럼 박혀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키에에엑!”
“형 조심해요!”
멍하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던찰라, 좀비들이 달려들어 나를 붙으려했고 순간적으로 가슴 한복판에 박힌 초조함이 눈녹듯 사라져버렸다.
“그래 이렇게 아무 생각도 하지않고 싸우는게 마음편하네”
[펑!!]
“우와 무슨 야구공처럼 머리가 날아가네! 언제봐도 굉장한 힘이라니까요! 아하하”
“... 차라리 좀비들이나 한꺼번에 몰려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는 것 같네 좋지않아”
“엥? 좀비들이 몰려왔으면 좋겠다니 형이면 모를까 저는 죽을 맛이니까 그런 말 마세요”
나에게 달려들던 좀비의 머리통을 단숨에 날려버린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조금 떨어져 있던 게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냥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생각할게 너무 많아서 그러는 거니까... 좀비들이랑 싸울 때는 적어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거든”
“아하하 머리가 맑아 진다니 무슨 명상같네요 저는 이제 슬슬 바퀴벌레처럼 생각하게 되서 귀찮아 죽겠는데, 솔직히 그렇지 않아요? 요즘 들어 변종들도 잘 안 보이고 긴장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 그렇게 방심하다 한번이라도 물리면 죽는걸 기억해, 그 새끼들 중에 생각을 할 수 있는 변종이 있다고 계속 말했잖아 아마 병사를 집결시켜서 뭔가를 하고 있겠지”
“에이 또 그 이야기에요 형? 그냥 시체들인데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여요 기분 탓이 나리니까요~”
처음에는 생각할 수 있는 변종이라는 말에 벌벌떨던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웃어넘길정도로 현실감이 없어져 버린건가?
“키에에엑!”
“...뭐 두고 보면 알겠지!”
거점 근처로 몰려든 좀비 무리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녀석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 으깨버린 뒤 담배를 입에 물자, 게이가 쪼르르 다가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 새끼는 어째서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스러워지는 것 같냐?
“하아... 백신이 언제쯤 만들어질지도 모르겠고 대머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 쯧”
강아지처럼 옆으로 다가온 게이에게 담배를 한 대 권하며 시체들이 쌓여있는 곳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 한숨을 내쉬며 불만을 토로했다.
“...형 기운 내세요. 의사가 필사적으로 개발하고 있잖아요?”
내 얼굴에서 피곤함을 읽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게이가 진중한 태도로 위로를 건네왔다. 진심으로 걱정되는듯한 표정을 하는 게이의 얼굴...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담배 연기를 하늘 위로 뿜었다.
“너는 가끔가다 어울리지도 않게 진중한 표정을 짓는단 말이야 참 신기해”
“에이 저도 생각은 한다고요~?”
“푸후 의사가 성공할지도 알 수 없는 게 문제지 진짜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져서 표류하는 기분이라고 대머리라는 상어가 언제 나를 뜯어먹을지 모르는 바다말이야... 빌어먹을 괜히 또 우울해지잖아 오늘은 이걸로 마지막이지?”
“예 형 이걸로 마지막이고 나머지는 노예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방벽의 보수나 시체처리나~”
“그럼 돌아가자 꼬맹이랑 여자가 기다리겠다.”
“에이 덩치는 빼는 거예요? 이제 그럭저럭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친해졌고”
“작은형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큰형님께서 중앙 회의실로 오라고 하십...”
“야 조금 정도는 분위기 파악하고 끼어들어 새끼야 지금 막 청소가 끝난 참이라고? 온몸이 피 칠갑 된 게 안 보이는 거냐? 눈깔이 장식이야?!”
“케엑,케엑!”
해맑게 웃던 게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하더니 우리에게 다가온 노예의 멱살을 들어 올려 흔들어댔다. 매일같이 내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행동하면서도 노예들 앞에서는 기강을 잡으려고 괜히 센 척을 한다니... 이제는 슬슬 풀어줄 때도 되지 않았나? 피곤할 텐데
“너나 좀 진정하고 물러나 적어도 이야기는 해야 이해할 거 아니야? 야 너, 진짜 급한 문제 아니면 대머리보고 기다리라고 해 씻고 밥도 좀 먹고 가도 충분하잖아? 빨리 꺼져”
흥분한 게이를 진정시키며 멱살을 잡혀있던 노예를 풀어주자 노예는 마른기침을 토해내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쿨럭, 쿨럭 하, 한시가 급한 일이라고 큰형님이 그러셨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게이 형님”
“게이가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그렇게 부르는 거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냐? 쯧…. 형 먼저 가세요 저는 이 새끼랑 말 좀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너도 내 옆에 있으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네”
“에이 그건 기분 탓이에요 형, 제가 얼마나 순한데요. 아하하”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던 게이가 억지로 미소를 짓는 것을 본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피했다. 등 뒤에서 노예의 비명이 들리는 건 그냥 기분 탓이겠지. 응 그렇고말고
...
무척이나 급한 일이라고 하였기에 곧장 달려온 것이었지만, 막상 회의실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듯한 표정으로 주변에 벌거벗은 여성 노예들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는 대머리의 칠칠치 못한 얼굴이 제일 먼저 보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적어도 이렇게 갑자기 찾는 이유는 뭔지 말이라도 해주지 그래?”
“푸하하하 동생 몇일만에 보는건데 너무 딱딱하잖아~ 여자라도 안으면서 천천히 가자고?”
“저기 오빠 나 오늘 안전한 날인데 어때? 아. 옆에 있는 애는 위험 일이니까 임신시키고 싶으면 이쪽~”
“에헤헤...오빠 피로 범벅되있는거보니까 나 흥분한 것 같아”
“...좋은말로 할 때 내몸에 손대지말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라?”
“히익..”
“조,죄송해요!!”
내팔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으려던 여성들에게 살기를 흩부려 쫓아버린후 준비되어있던 쇼파에 앉아 대머리를 바라보았다.
“아아 맞아 어제 요리사가 우리그룹에 들어오고싶다고해서 받아줬거든? 음식맛이 확살아났으니까 한번 먹어봐”
아주 내 눈앞에서 섹스까지 할기새로 벌거벗은 여성 노예들과 입을 맞추던 대머리는 음흉한 미소를 띄워 보이며 마치 개에게 밥을주듯 접시 위에 아름답게 플레이팅 되어있는 음식을 나에게 건넸다.
통조림으로 만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을 잠시 내려다보던 나는 혀를 차며 슬럿지 해머를 들어 올려 식탁에 내려쳤다.
[쾅!!]
“용건이나 빨리 말해 쓰잘대기 없는거면 나는 돌아간다.”
“큰형님 괜찮으십니까?!”
한방에 무너져내린 식탁에서 나는 커다란 소리에 뒷문에서 수십 명의 노예들이 무장은 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쇠몽둥부터 시작해 도끼 심지어는 권총을 가지는 경찰관까지 들어오는 모습에 아마 자신이 위험해질까 작정하고 대기시켜놓은 모양이었다.
“야야 됐으니까 나가 내 가 장난 좀 쳐서 그래”
대머리의 손짓에 일사불란하게 나가는 노예들, 확실히 훈련을 잘시키는 모양이네.
“그래도 대장인가 뭐신가 따라 하는 거면 한참 모자라는데?”
“... 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야성에 가까워지냐? 야 우리 사람이야 사람 정신 차려”
내 말에 대머리가 발끈한 듯 품에 안고 있던 여성 노예에게 주먹을 날렸다. 자그마한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담담하게 주먹을 맞는 노예는 어딘지 모르게 무척이나 익숙한 표정이었다.
“하아... 너도 나가 있어”
“네”
무차별적으로 맞던 노예가 곱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대머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주변에 합류할 수 있는 사람은 전부 합류시켜서 동생 사람은 충분해 무기도 어느 정도 챙겼고 그 새끼들 거점을 치려면 지금이야”
“...내가 싫다면?”
“그 새끼들 쳐부수고 거점을 먹으면 그 다음은 네가 원하던 군부대를 찾을 거다 우리가 한 계약은 그거잖냐? 넌 복수를 위해 나는 권력을 위해”
마치 사악한 뱀과도 같은 역한 속삭임은 내가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꿰뚫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