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애니멀 플레이 _ 5화
애니멀 플레이 _ 5화
잠시 후 또 한 번 팻캠을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까지 참을 거야?”
나는 그 팻캠이 양방향 통신이 가능하다는 걸 떠올리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지… 말아줘…”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 팻캠을 통해 살짝은 피식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더욱 부끄러워진 나는 얼굴을 붉히며 째려봤다.
“알겠어. 알겠어. 안 보고 있을게”
“진짜지?”
“한… 10분 뒤에 보면 되려나?”
“응…”
“그래 알겠어!”
그의 모습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더 이상 팻캠을 통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나는 쿠션에서 일어나 여러 장 깔린 배변 패드 앞으로 다가갔다.
순간적으로 그냥 목줄을 풀고 화장실을 다녀올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서는 이 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데다가 왠지 그가 실망을 할 것만 같았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마치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듯 겹겹이 쌓여있는 배변 패드 위에 올라가 앉았다.
역시나 자꾸만 깜빡이는 팻캠의 조명이 신경 쓰였지만 최대한 등을 돌리고 몸으로 가리며 소변을 볼 준비를 한 나는 천천히 아주 조금씩 내보내기 시작했다.
차마 아래를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혹시나 패드를 벗어나 바닥으로 흐른다거나 내 몸에 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억지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변을 보던 나는 순간 자괴감이 밀려들었고, 수치스러움에 소름까지 돋아 버렸다.
여차저차 소변보기를 마친 나는 그대로 패드를 꾸깃꾸깃 접었고, 그가 돌아와서 치우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쿠션 밑으로 소중하게 숨겨 버렸다.
그래도 마음이 한결 나아진 나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쿠션으로 돌아가 앉았고, 몸에 얇은 담요를 덮으며 멍하니 집을 둘러봤다.
“어이구~ 우리 강아지 오줌도 잘 싸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그가 팻캠을 통해 내가 소변을 보는 과정을 지켜봤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어차피 소통이 원활하지도 않으니 나름 짜증의 표현 방법으로 쿠션을 주먹으로 내려친 나는 또다시 팻캠을 등지고 앉으며 팔짱까지 껴 보였다.
“지켜봐서 삐졌어?”
나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팻캠에 보여주고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쿠션 위로 드러누웠다.
잠깐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 이제 도착해서 일 좀 보고 올 테니까 얌전히 잘 지내고 있어!”
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쿠션에 누워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정말 팻캠에서는 아무런 소리조차 흘러나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팻캠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목줄이 닿는 데까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고, 순간적인 적막이 흘렀다.
방금까지도 혼자 있다는 사실은 여전했지만 그나마 소통하던 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게 부끄럽긴 했지만, 그것 마저도 사라져 버리니 덩그러니 혼자 남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특별히 할 것도 없어서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해도 잠은 오지 않았고, 핸드폰마저도 없는 상황이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전혀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집에 혼자 남겨진 반려견의 입장이 이해가 가고, 내가 정말 그의 반려견이 된 것처럼 주인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집의 거실에는 시계조차 하나 없어서 그가 집을 나선 이후로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데다가, 그가 몇 시간 걸린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이지 정확히 언제 돌아온다는 얘기조차 하지 않아 무작정 기다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급격하게 우울해진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멍하니 블라인드 틈 사이로 보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가끔씩 살랑거리는 풀잎들만이 내 관심을 끌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잠에 들지도 못하면서 굳이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중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블라인드 하나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하던 집에 갑자기 들려오는 소음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고, 창밖으로 갑자기 바깥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 이런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게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조용하던 팻캠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심심했지?”
나는 반가움 마음에 있지도 않은 꼬리를 흔드는 듯한 몸짓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그가 말을 이었다.
“일부러 밖이라도 보라고 블라인드 열어줬는데 괜찮지?”
물론 밖을 보면서 멍하니 있을 수라도 있으니 좋은 건 맞았지만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산책로가 있는 탓에 가끔 사람이 지나다닐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누가 지나가다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
“글쎄?”
“에…?”
“장난이야”
“뭐야…”
“나름 특수 유리라 바깥에서는 안쪽이 안 보여”
“정말이야?”
“진짜야… 안 그러면 그런 통유리에서는 못 살지”
“그렇지…?”
“믿어도 돼”
“알겠어…”
나는 그나마 햇빛이라도 받으려고 쿠션을 창가 쪽으로 옮겼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믿으라고 설득해도 조금은 걱정이 됐는지 몸이 다 나오지 않게 절반 정도만 창가로 꺼내뒀고, 그나마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잠깐만 나 일 좀 보고 올게!”
그렇게 잠깐의 소통을 끝으로 그는 다시 사라져 버렸고, 나는 슬슬 체념한 채 바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분명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풀들과 그 사이사이로 돌아다니는 곤충들, 그리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까지 모든 게 색다르게 느껴졌고, 아주 멀리서 사람들이 산책하며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잠깐의 낮잠에 빠져든 나는 여전히 쿠션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도 그 모습을 본 건지 말을 걸어오지도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이나 지나서 눈을 뜬 나는 여전히 내리쬐는 햇빛을 보고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는 걸 알고는 급격하게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몇 시간은 일을 보고 온다고 했으니 아직 해가 떠 있다는 건 그가 돌아오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뜻일 테고, 내가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이 그만큼 많이 남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눈을 반쯤 감은 채 밖을 바라보던 나는 우연히 산책하는 사람을 쳐다보게 되었고, 그나마 이렇게라도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산책 코스 때문인지 그가 점점 집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점점 집으로 다가왔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빠의 말대로라면 분명 이 유리는 안에서는 잘 보여도 바깥에서는 잘 안 보이는 재질이겠지만 혹시 모를 위험이 있으니 나는 창문에서 벗어나 벽 뒤로 몸을 숨겼고, 산책을 하던 남자는 계속해서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당 바로 앞을 지나가는 남자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내가 있는 쪽을 겨냥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것 같아 보였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혹시나 내 모습을 그가 본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고, 가슴을 콩닥거리며 벽 뒤에 숨어 숨을 죽이게 되었다.
그러자 그 순간 팻캠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밖에서는 안 보인다니까?”
“지금… 밖에 사람이 사진을 찍어대고 있다고…!”
“진짜야. 하나도 안 보여”
“근데… 왜 이쪽을 찍고 있는 건데 대체…!”
“찍어봐야 안 보인다니까?”
“혹시… 내가 들킨 거 아니야? 이런 모습을 본 거 아니야?”
그러자 그는 한참이나 웃은 뒤에 말을 이었다.
“가끔 우리 집 사진을 찍어 가는 사람들이 있어”
“대체 왜?”
“나도 궁금해서 몇 번 물어본 적이 있거든.”
“뭐라는데?”
“건물 구조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으로 찍어가는 것뿐이라던데?”
“아아…”
“그러니까 그 사람도 똑같이 그런 이유일 뿐이야.”
“그래도…”
“걱정하지 말래도?”
“알겠어…”
분명히 대답은 한 나였지만 그대로 여전히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뒤로도 몇 명의 사람들이 산책을 하는 건지 집 주변을 지나쳐 갔고, 그럴 때마다 흠칫거리며 놀라는 나였지만 특별히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는 한가지 시련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련인 소변은 어떻게든 해결하긴 했지만, 두 번째 시련은 뭔가 자존심이 걸린 문제 같았다.
물론 참으려면 참을 수는 있는 문제였지만 몇 시간이나 방치돼 오던 내 배가 점점 꼬르륵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눈에 사료처럼 보이는 시리얼이 들어왔지만 나는 차마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아까처럼 버터기에 돌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