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15화 - 동창회(2)
세상에는 정말 수없이 많은 기업이 존재한다.
다른 나라와의 무역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돈 넣고 돈 먹는 회사도 있고, 제품을 설계하거나 제작, 유통, 생산하는 회사도 있다.
요즘 시대에 발맞춰서 각성자 또는 신에너지로 사업을 확장하는 기성 기업도 있고, 꿈을 가진 자들이 새롭게 건립하는 신생 벤처 기업도 있다.
심지어, 종교도 기업이라 하는 세상이다.
그러한 각각의 특성을 가진 여러 기업이 상생하며 만든 결과물로 현대사회가 굴러간다.
…반면에,
이 세분된 수많은 일을 오로지 단 한 기업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우린 그것을 ‘대기업’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위도 있다.
‘초거대기업’.
나라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기업을 우리는 초거대기업이라 부른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대한민국에도 그러한 기업이 하나 있다.
'가온그룹'.
세상 꼭대기에서 세상을 아우른다. 마나와 공학을 결합하는 혁신적인 첨단 기술력만으로.
마법공학. 본래, ‘마나공학’이라 하는 것이 맞지만, ‘마법공학’이라는 말이 더 많이 퍼진 이유. 제품들이 하나같이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마법공학 제품을 처음으로 만든 기업이.
바로, 가온그룹이었다.
< 15화 – 동창회(2) >
“…그래, 강성아. 옛날 일은 옛날 일이지. 나도 후회 많이 하고 있어. 진짜. 네가 이렇게 먼저 말해주니 좀 고맙네.”
김훤홍은 표정의 변화 없이 덤덤하게 말했다.
예전부터 녀석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아니, 한 번도 본 적 없다.
“……그래.”
그래서 더 무서웠다.
맞는 것도 물론 아팠지만 표정의 변화 없이 그저 주먹을 내지르는 녀석의 모습은 다른 애들과는 뭔가 결이 다른 공포였다.
그랬던 녀석이, 방금 자신이 행했던 일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
물론 알고 있다. 거짓말이란 걸.
저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려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절대 나를 때려선 안 됐다.
오랜만에 봤음에도.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내 모습에도 녀석은 날 거리낌 없이 때렸다.
그것이 녀석의 본성이었다. 몸에 밴 습성. 포식자의 위치에서 피식자를 노려보는 시선.
어이없게도 녀석은 내가 각성자가 되었단 사실을 알자마자 귀신같이 태도를 바꿨다. 만약에라도 자신보다 강하다면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얄팍했다. 너무 치졸했다.
‘…….’
솔직히. 복수하고 싶다.
지금도 후회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은 녀석의 얼굴을 주먹으로 뭉개고 싶었다.
그렇지만, 몸은 뜨거워도 머리는 차가워야 했다.
PTSD? 그런 게 아니다. 아까 맞을 땐 확실히 PTSD가 오긴 했지만. 오히려 맞고 나니 김훤홍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당장 김훤홍의 얼굴을 뭉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확한 정보를 모르니까.’
문경식, 김훤홍, 그 외의 도민준 패거리 잔당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변화한 세상 속에서 걔들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또 어떤 뒷배가 있는지 지금의 나는 전혀 모른다.
정보가 필요하면 필연적으로 교류가 필요했다. 그 전에, 굳이 내 패를 먼저 깔 필요가 없단 생각이었다.
――짝!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을 때, 바로 옆에서 손뼉을 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자자! 애들아. 서로 안부 인사는 이쯤 하고! 모처럼 좋은 날인데 얼른 파티나 즐기러 가자고! 응?”
문경식이 분위기를 환기하며 앞장섰다.
“…안에서 보자.”
김훤홍도 문경식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나는 둘의 그늘진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문경식. 각성자가 됐다고 했지. 그런 문경식이 아직도 김훤홍의 눈치를 본다라……. 그렇다면 김훤홍도 각성자인가?’
…뭐, 대화 좀 하다 보면 알겠지.
그렇게, 나 또한 둘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건물은 대체로 어두웠다.
‘차라 호텔’. 이 건물의 이름이었다.
서울 각성동에 위치한 이 호텔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정·재계 인사들이 비밀리에 회의하거나, 가끔 연예인과 각성자들이 모이는 파티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헛도는 찌라시일 수도 있지만.
쨌든, 그런 소문이 도는 장소에서 동창회를 연다니.
‘…….’
얼마나 돈이 많으면 이런 장소를 대실 할 수 있는 걸까.
나처럼 녀석들도 망한 인생을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혼자만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터벅. 터벅.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히야~ 드디어 도착했네. 너무 음습한 곳에 있는 거 아니야?”
드디어 여러 사람이 보이는 어느 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왔냐.”
‘……!’
나를 괴롭혔던 집단의 수장.
정도를 나누라면 가장 악질인 새끼.
도민준 패거리의 그 도민준을.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어떻게 잊을까. 저 얼굴을. 아마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꼬불꼬불한 검은 장발 머리. 남성미를 상징하는 뚜렷한 T존. 검은 셔츠 검은 바지. 그와 대비되는 와인 색 넥타이.
머리 스타일은 조금 바뀌었지만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는 내가 아는 그 도민준이 맞았다.
‘…….’
도민준까지 만나니 확실히 느껴진다. 그때의 공포가.
무한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 숨이 턱턱 막혀 산소가 뇌로 전달되지 못해 머리가 텅 빈 듯한 그런 느낌.
그래. 이게 진짜 PTSD였다.
“…옆에 그분은 누구야?”
“하하! 민준아. ‘분’이 아니라 걔야 걔. 구강성. 그 좆돼……아니, 왜 우리 친구 중에 좀 뚱뚱하던 애 있었잖아. 얘가 걔야! 어때, 좀 놀랐냐?”
나는 놈을 기억하는데, 놈은 날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해한다.
만약 내가 예전처럼 뚱뚱했던 상태라면 바로 떠올렸을지도 모르지. 내가 봐도 나는 많이 바뀌었으니.
“……구강성?”
…그러나,
녀석의 다음 말은 내 어림짐작을 아찔하게 뛰어넘었다.
“…그게 누군데?”
“…뭐?”
“…….”
내 이름을 듣고도, 녀석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도 놀랐지만 문경식과 김훤홍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문경식은 나와 도민준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 왜 그 있잖아…! 수정이 팬티 입에 물던…… 아, 됐고! 어쨌든 얘가 이번에 각성자…….”
애미 씨팔―.
“……!!”
맹수가 그르렁거리듯.
화를 한계까지 압축한듯한 낮고 강한 음성이 도민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뭐라고?”
“…어?”
“방금 뭐라 했냐?”
“어… 내가 뭐라 그랬…….”
“수정이 팬티. 그게 뭔 개소리냐고 이 씨발롬아. 귀 안 열어?”
“…….”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문경식을 추궁하기 시작한 도민준.
그런 도민준의 몸은 거대했다. 내가 기억하던 때보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그 거대한 몸에서 오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스윽,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문경식이 보였다. 문경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문경식이 언급한 그 사건. 그 사건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었다. 오줌이 묻은 해진 팬티. 그 팬티를 강제로 내 입에 물린 성수정. 그런데,
‘……정말로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 하는 건가?’
…도민준은 대체 왜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하는 걸까.
도민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저 개새끼가, 수정이 팬티를 입에 물었다고?”
“…어? 어… 그, 그렇지?”
비릿하게 웃으며 말하는 문경식.
문경식은 성수정이 강제로 물리게 했단 사실을 덧붙이지 않았다.
놈은 그저, 자신의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는 거에 만족했다.
이윽고,
“너, 뭐냐?”
이글거리는 도민준의 시선이 문경식에서 나로 바뀌었다.
…나였다. 도민준은 지금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너 뭐냐고 이 씨발 새끼야.”
그리 말하며 조금씩 다가오는 도민준.
“…….”
도민준. 옛날 모습 그대로의 그 도민준이었다.
화가 나면 그 자리에서 화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먹이사슬의 최고봉. 그 먹이사슬은 현재까지도 바뀌지 않고 이어졌나 본지 아무도 그런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쿵쿵거렸다. 그런 도민준의 모습이 가까워진다.
‘…….’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근거 없이 차 있던 내 자신감이 빠르게 사라져갔다.
도망치고 싶다. 이젠 뭐든 됐다. 녀석들이 잘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싶어졌다.
저들과 나는 태생부터 다른 존재였다. 그릇이 달랐다.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
저들은 육식 동물 중에서도 맹수에 속했으며, 나는 초식 동물 중에서도 소형동물에 속했다.
포식자는 사냥하기 위해 사냥감을 찾고, 피식자는 사냥당하지 않기 위해 포식자에게서 멀리 도망 다녀야 한다.
자연의 섭리. 저들과 나는 거스를 수 없는 그런 먹이사슬의 관계였다.
그런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몸이 바뀌었다고, 각성자가 됐다고, 반신이 됐다고 이곳에 찾아온 내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이곳에 왜 온 걸까. 복수? 호기심? 아니면… 성수정 때문에?
그게 뭐였든 나는 이곳에 와선 안 됐다. 하지만 이미 왔고 포식자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사냥이다. 그 포식자는 나를 찢어발길 듯이 노려보며 걸어온다.
온통 포식자들로 가득 차 있는 이 공간은 도망칠 곳도 없었다.
그렇게, 도민준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졌을 때.
‘…….’
그가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말해라. 성수정이랑 무슨 관계냐. 만에 하나 거짓말한다면…….”
도민준의 손은 거대했다. 그리고, 맹수처럼 손톱이 날카롭게 자라나 있었다.
그의 거대한 손이 내 목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렇게, 그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목을 얕게 찔러 들어오던 그 순간―
.
.
.
부우우우우우욱――!!
갑자기, 무언가가 찢기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
처음엔 내 몸이 찢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감았던 눈을 뜨니 도민준이 손을 멈춘 채로 옆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
무언가를 바라보는 그의 동공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민준의 저런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도대체 뭘 봤기에 저럴까.
그 도민준의 시선을 따라가자…,
‘…….’
바로 옆. 허공이 찢기며 유려한 우주의 아름다움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 공간 안에 있는 자들 전부.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두렵게 바라보고 있었다.
【…….】
그것은…….
【…여긴 각성자가 많군요.】
준비되면 연락을 주겠다던.
“…….”
차원의 여신 헤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