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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이도희 (1)


“...흐음. 목적이라.” 어플을 처음 시작할 때 목적은 동네 친구를 만드는 거였다. 그렇게 시작한 어플에에서 서혜진과 채진아를 만난 것이고. “동네 친구 만들기?” 내 대답에 채진아가 비웃었다. “푸읍, 동네 친구는 무슨 웃기고 자빠졌네. 너 여자 한번 만나고 싶어서 한 거잖아.” 살짝 찔렸지만 바로 반박했다. “뭐래, 나 진짜 동네 친구 만들려고 하는 거야.” “그래, 그래. 동네 친구. 동네 친구 만들거면 소모임을 나갔어야지. 왜 소개팅어플에서 동네 친구를 구하고 있어? 바보야?” “그렇긴 한데.” 저 말이 맞다. 내가 왜 동네 친구를 왜 소개팅어플 구하려고 한 거지? 소모임 어플에서 구하는 게 더 빠를텐데. 내가 수긍하는 듯 하자, 채진아는 더 놀렸다.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채진아의 특유의 놀리는 말투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한번 치고 싶게 만들었다. “에휴, 음흉한 우리 정진이. 동네 친구를 구실 삼아서 여자랑 친해진다음에 확- 잡아먹으려고. 내가 네 속을 모를 것 같니?” 물론 남자보다는 여자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은연히 있었기에 차마 저 말에도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잡아먹는다는 생각마저 안 했지만. 채진아의 연타에 ko가 된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저 카페 바닥의 대리석을 보며 한숨을 푹 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 계속 놀려라. 놀려” “봐봐, 나만 해도 그래. 막 처음에는 친구처럼 굴다가 결국에 나랑 잤잖아. 왜 너는 동네 친구랑도 자?” “...좀 조용히 말해줄래. 이제 그만 놀리고 나가자. 밥이나 먹자.” 내가 일어나려고 할 때, 채진아가 말했다. “...흐음, 당장 힘들 것 같은데, 저기 오는 사람 봐봐.” 채진아는 손가락으로 내 뒤쪽을 가리켰고, 나는 앉은 것도 아닌, 일어난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뒤 쪽을 바라봤다. 그곳을 보니, 어떤 양아치 느낌 나는 남자가 성큼성큼 이쪽으로 박력있게 걸어오고 있었다. 이를 꽉 깨물고 미간을 찌푸린 채 오는 게 결코 좋은 일 있어 보이진 않았다. “설마 이쪽으로 오는 거 아니지?” “이쪽으로 오는 거 맞아. 내 전남친이거든.” “...뭐?”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던 남자는 어느새 나와 채진아 앞에 서 있었다. 금발에 구릿빛 피부에 건장한 몸을 가진 남자는 나를 한번 노려보고는 채진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채진아! 왜 전화를 안 받아?” 구릿빛 남자의 큰 소리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채진아는 그저 자기 쇄골을 글적글적 긁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왜! 우리 헤어진 사이잖아. 헤어진 사이에 무슨 전화를 받아? 구질구질하게.” “헤어지긴 누가 헤어져! 네가 일방적 통보한 거잖아! 진짜 예의라는 게 없냐!? 커플 사이에도 예의란 게 있는 거야!” “지랄! 너 같은 양아치가 무슨 예의!” 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자,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카페에 사람들은 적었고, 이곳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몇몇 없었다. “그래! 예의!” “예의? 예의가 네 입에서 나와? 진짜 어이없네. 나이도 처먹을 대로 처먹은 새끼가 여친도 모르게, 자기 급에도 안 맞는 외제 차를 할부로 지르는 짓은 나에 대한 무슨 무슨 예의야? 어? 말해 봐!” “시발, 내가 너보고 차 할부금 내달라고 했어? 내가 내가 번 돈, 내가 아껴서, 할부금 낸다고 했잖아. 네가 거기에 뭘 보태줬냐고! 그리고 내가 차 사면 나만 타? 너도 옆에 탈 거 아니야!” 큰 소리가 계속 오가자, 채진아는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푹 감싸며 뒤로 넘어질 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 상태로 몇 초 있더니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다시 큰 목소리가 나왔다. 손가락 사이에서 살짝 보이는 채진아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게 보였다. “승용아! 네가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알면 생각해 봐. 너나 나나 내일모레 서른이야. 결혼을 슬슬 생각해 봐야 할 나이라고. 네가 나랑 미래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해봤다면, 돈 한 푼이라도 제 목숨처럼 아꼈어야 했다고. 그런데 60개월 할부로 외제 차를 사? 내가 언제 차 있었으면 좋겠다고 너한테 말했어? 난말이야! 네가 차가 없어서 싫은 게 아니라, 미래가 없어서 싫은 거야! 너가 애초에 나를 별거 아닌 걸로 생각하는데 내가 왜 너한테 예의를 차려야 해? 말해 봐? 그 좆 같은 입이 달려 있으면 말이란 걸 해 보라고!” 채진아가 울부지듯이 따지자, 카페에 모든 사람은 여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구릿빛 남자는 눈치를 살피더니, 채진아의 옆 의자에서 살며시 앉았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는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로 옆에 앉은 채진아에게 말했다. “...그건 내가 미안 하게 생각해. 진아야, 앞으로 내가 잘할 테니까, 나 용서해주라.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채진아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늦었어. 지금 안 보여? 나 남자 친구랑 있는 거? 남자 친구가 불편해하니까 어서 가.” 채진아의 말에 구릿빛 남자가 나를 죽일 듯이 쳐다봤다. 그러더니 채진아에게 하던 말투가 아닌 위협적인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남자 친구? 그쪽이 진짜 채진아 남자 친구 맞아요?” ‘하아…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이딴 피곤한 상황은 전력으로 피하고 싶었지만, 아까부터 채진아가 도와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기에 이 번 한 번만 도와주기로 했다. 이렇게 도와 줬는데, 또 놀리기만 해 봐라. “예. 제가 진아 남자 친구입니다.” 그래, 도와주기로 맘 먹은 거 당당하게 나가자. “하아, 그쪽이 정말로 진아 남자 친구라고요?” 내 당당한 태도에 구릿빛 남자는 뭐가 그리 웃긴 지, 피식 웃었다. 저 새끼가? 웃어? “예.” 구릿빛 남자는 내 단호한 ‘네’에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나와 채진아를 범죄자 같은 눈으로 계속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시발’이라고 지껄였다. 그러더니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시발 환승 당했네. 걸레 같은 년.” 그 말에 열이 받은 나는 일어나서 구릿빛 남자 앞에 섰다. 내 모습에 채진아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말 함부로 하시지 마시죠.” “뭐? 말 함부로 하지 마? 어디서 남의 여자랑 붙어먹는 새끼가 나보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마?” 구릿빛 피부의 남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구릿빛 남자는 카페 한가운데에서 서로 대치한 꼴이 되었다. 몸은 좋아 보였지만, 키는 내가 조금도 컸기에 그리 꿀리지 않았다. 이래 봬도 나 성질 있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 선문고 불주먹 에이스로 불린 나다. 어디서 감히? 두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다시 한번 말해줬다. 멍청하게 생기긴 했지만, 방금 했던 말도 까먹다니. “말 함부로 하.지.마.” 그 말과 함께 나는 한 발자국 다가가, 당장에라도 한 따까리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구릿빛 남자도 물러서지 않는 게, 정말로 주먹다짐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 시바 이건 아니잖아. 술 먹은 것도 아니고. 다 큰 남자 둘이 카페에서 싸우자고?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자, 채진아가 벌떡 일어나서 내 손을 잡아다. “정진아, 이제 그만해. 우리 이만 가자. 그리고 송승용 너 말이야. 여기서 당장에라도 안 꺼지면 네가 했던 짓, 승아 언니에게 다 말할 거야. 승아 언니는 아직 모르지? 승아 언니 명의로 네가 오백만원 대출 받은 거.” “야! 그건!” “한 마디만 더 해 봐. 바로 언니한테 카톡 보낼 거야.” 채진아의 말을 들은 남자는 흠칫 거리더니, 욕지거리를 내뱉고 뒤돌아 도망갔다. “...시발! 걸레 같은 년. 그래, 내가 꺼져줄게. 내가 존나 아깝지.” 도망가면서도 개소리하는 구릿빛 남자를 내가 쫓아가려 하자, 채진아가 내 잡은 손을 더욱 꽉 잡아 막았다. 그러면서 그만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 하아…뭐 저런 놈이 사겼냐.” “그러게. 내가 미쳤었나 봐. 일단 나가자. 사람들 다 여기 쳐다보고 있어.” “알았어.” 우리는 황급히 카페를 도망가듯이 나왔고, 채진아는 조금 전 일에 고맙다며, 밥을 사준다고 했다. 그렇게 난 동네 초밥집에서 밥를 얻어먹었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채진아의 출근 시간이 다 돼서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던진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채진아의 오늘 고맙다는 카톡이 와 있었다. [친구 사이에 뭘. 괜찮아.] 채진아에게 답장을 보내고, 나는 확인 못한 알림을 확인했다. 수많은 알림 사이에 서혜진의 카톡도 보였지만 ,나는 옆으로 스와이프해서 지워 버렸다. 남친도 있는 얘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흐음. 매칭됐네? 이번에는 어떤 애일까?” 소개팅어플에서 매칭됐다는 알림이 있었다. 나는 알림을 눌러 어플로 들어가 매칭상대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닉네임은 ‘도히’였고, 나이는 비공개였다. 프로필 사진은 웃는 얼굴만 나온 사진이 달랑 한 장이었다. 조금 마르긴 했지만, 그래도 예쁜 얼굴이었다. 웃는 얼굴이 귀엽기도 했고. 나는 도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도히와 약속을 잡았다. 다음 주말 오후 2시. 도히가 일기예보를 보니 주말에 날씨가 좋을 것 같다고, 산책하자고 먼저 제안 했다. 장소는 저번 서혜진과 있었던 공원이었다. 난 이 사실을 채진아에게 말했다. 아니,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숨기는 것도 이상하고, 만약 말없이 만났다 들키는 것도 이상할 것 같고. 좀 그래. 채진아의 반응은 별다를 것 없었다. 여자에 미친놈이라고 날 놀릴 뿐이었지. 그렇게 약속 날짜가 되어 약속 장소로 나가 보니, 프로필 사진과 한 치도 다름없이 똑같이 예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녀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 “ 내가 첫 만남부터 말을 더듬자, 닉네임 ‘도히’는 귀엽게 웃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다 오빠 같은 반응이었어요.” 그 웃음을 보니, 당황했던 게 조금 가라앉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 좀 걸을까요? 공원에 왔으니까, 산책하고 싶어요.” 도히는 전동휠체어를 조작해 산책로로 휠체어의 방향을 돌렸다. 나는 전동휠체어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쳐서 걸었다. 걷는 동안 도히는 그럼 나를 보며 끊임없이 웃어 주었다. 우리는 그제야 통성명했다. “ 제 이름은 이도희라고 해요. 오빠는요?” “저는 한정진…”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제가 한참 어려요.” “몇 살인데?” 프로필에 나이가 기재돼 있지 않아, 나는 도희의 나이를 알 수 없었다. 도희는 오른손으로 브이 표시했다. 그 모습이 정말 스무 살 다워 귀여웠다. “올해 스무 살이요. 오빠는 스물여덟 맞죠?” “응.” “지금은 뭐 해요?” “회사 다녀.” “혼자 살아요?” “응, 회사 때문에 혼자 자취해.” “부럽다.” 부럽다니, 내 처지에서 스무 살이 부러우면 부럽지 스물아홉이 부럽지는 않을 것 같다. “뭐가?” “오빠는 어른이잖아요.” “어른? 내가?” “네, 어른.” “나도 어른이고,도희도 어른이지. 도희도 이제 스무 살이잖아. 스무 살이면 어딜가서나 어른이지.” 도희는 내 말 슬며시 웃더니, 정면을 보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말했는데요. 어른이랑 성인은 완전히 다른 거래요. 성인은 나이만 먹으면 성인이지만, 어른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진정한 어른이래요. 오빠는 지금 혼자 다 책임지고 있잖아요.” 하긴 어른과 성인의 뜻은 비슷해 보여도 같지는 않다. “직장도 다니고, 혼자 살면서 빨래도 자기가 하고, 밥도 알아서 챙겨 먹고. 완벽하게 자립했으니까 오빠는 누가 봐도 어른이에요. 저는 그게 너무 부러워요.” “너무 부러울 정도야?” “네. 저는 정말 부러워요. 저는 책임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심지어 제 몸도 책임질 수 없어요. 어딜 가더라도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려고 해도 도움을 받아야 하고. 씻는 것조차도 혼자 못 씻어요. 그래서 어른이 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오빠가 너무 부러운 거죠.” “...그렇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저 표정을 보니,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저렇게 어른이라고 띄어 주니 조금 부끄럽기도하고. 난 내가 진정한 의미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플로 여자 만나고 다니는 행위 자체가 그닥 어른 답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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