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서혜진 (2)
서혜진이 잠시 화장실로 간 사이, 나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10시 34분. 곧 11시였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빈 술병의 수를 눈으로 세었다. 지금 마시고 있는 병까지 총 합해서 4병. 짧은 시간에 둘이서 많이도 마셨다.
내일 출근을 위해서 더 이상 마시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지금도 충분히 무리한 상태다. 내일 제대로 출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나는 벗어 놨던 겉옷을 입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내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려 할 때, 어디선가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다.
내 핸드폰인가 싶어, 확인해봤지만 내 알림이 아니었다.
“내 건 아닌데… 혜진이 건가?”
진동은 계속 울렸다. 문자가 아닌 전화가 온 것 같았다.
나는 그러면 안 되지만,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서혜진의 핸드폰의 켜진 화면을 확인했다.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서혜진의 핸드폰의 켜진 화면을 본 내 얼굴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화 온 사람의 이름을 보고 경악했고,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듯했다.
정신을 차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앉은 나는 잠시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후우… 제대로 똥 밟았네.”
대충 현재 상황을 이해한 나는 내 핸드폰과 지갑을 우선 챙겼다. 머리가 아팠다.
“...일단 집에 가자.”
그때, 때 마침 서혜진이 자리로 돌아왔고, 짐을 챙기는 내 모습을 보고서는 테이블 위에 빈 술병을 잡아 들고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갈 거야? 한 병만 더 하자. 시간도 아직 남았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더 있다가 무슨 꼴을 당할려고.
“너무 많이 마셨어. 이제 그만 가자.”
“흐응… 조금 아쉬운데.”
“기회는 다음에도 있으니까. 짐 챙기고 나와. 계산하고 있을게.”
나는 아쉬워하는 서혜진을 자리에 두고 계산서를 챙겨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을 끝마친 나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잠시 후 서혜진은 가게 문을 열고 나왔고, 비틀비틀거리며 내가 있던 곳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내 왼팔을 꽉 붙잡고 머리를 내 가슴팍에 묻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서혜진이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쳤다.
바로 집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붙잡히고 말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담배연기한번 푸욱- 내뱉었다. 그리고 서혜진을 향해 말했다.
“담배 냄새 나. 떨어져.”
“으으… 나 담배 냄새 익숙해서 괜찮아. 나 힘들어서 조금만 기댈게.”
정말 머리가 아프다.
“...무슨 자신감으로 한 병 더 마시자고 한 거야?”
“아쉽잖아…”
“아쉽기는 개뿔…”
“오빠, 뭐라고? 나 못 들었어.”
“아냐. 혼잣말.”
“흐응… 나 너무 지금 아쉽단 말이야.”
나는 다 핀 담배를 꽁초쓰레기통 용도로 사용하는 것 같은 빈 알루미늄 캔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서혜진에게 말했다.
“뭐가? 뭐가 그렇게 아쉬워?”
그녀의 비밀을 알아버린 나로서는 그녀의 아쉽다는 말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그냥 지금 분위기도 좋고… 집에는 정말 가기 싫고… 많이 아쉽지. 그런데 지금 내 꼴 보니까, 오빠 말대로 그만하는 게 좋겠다. 토할 것 같아… 오빠, 나 정말 진상이지?”
“...뭐.”
진상이 아니라 쓰레기라고 생각하는데.
“칫, 나 원래 잘 마시는데, 이번 주가 마법의 날이라서 그런 거야… 다음에 두고 봐.”
“...두고 볼게. 자취방 어디야? 데려다줄게.”
“저기 사거리 조금 넘어서 산동빌라…”
나는 산동빌라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마치 고목이라도 된 마냥 매미처럼 달라붙은 서혜진은 그대로 딸려 왔다.
데려다줄 생각은 없었는데, 어차피 앞으로 안 볼건데, 마지막으로 배웅이나 해주자 라고 생각했다.
서혜진은 자기 집으로 가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무말하지 않고 그냥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산동빌라 근처에 도착했다.
앞에 보이는 골목만 돌면 바로 산동빌라가 우뚝 서 있었다.
그때 서혜진이 내 팔에서 떨어져, 내 정면에 섰다.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 휘청거리며 서 있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룸메가 볼 수 있으니까, 이제 나 혼자 갈게.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아, 알겠어. 조심히 들어가.”
“아, 오빠.”
“응?”
서혜진은 내게 다가와 내 몸을 꽉 안았다.
밑을 내려다 보니, 그녀의 정수리가 보였다. 향기로운 샴푸 향이 순간 느껴졌다.
잠시 그러고 있던 우리.
서혜진은 내게 떨어지며 말했다.
“...다음에 또 봐. 잘 가.”
그래도 몸을 돌려 골목길로 사라지는 서혜진.
나는 그녀가 사라진 골목을 잠시 바라보다, 그대로 그녀의 갔던 길을 따라서 골목을 돌았다.
돌자마자 5층으로 이뤄진 산동빌라가 보였고, 잠시 후 산동빌라 4층 오른쪽 집 창문에서 불이 켜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담배는 입에 물었다. 그러면서 4층 창문을 계속 관찰했다. 그렇게 한참 있다 보니, 그 창문을 열고 한 사람이 얼굴이 보였다. 서혜진이었다.
지금 나는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가 4층에서 내려다봤을 때, 내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한 명이 등장했다. 실루엣이 머리가 여자라고 보면은 너무 짧아 보였고 덩치가 꽤 있어 보였다.
“흐음… 룸메이트라더니 웃기네. 남자 친구랑 동거 중에 남자를 만나네. 참나.”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만약 아까 서혜진의 핸드폰을 확인 못했고,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술 한 병을 더 먹고, 혹시나 서혜진과 섹스라도 했으면 제대로 좆될 뻔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동거가 아닌 남편일수도.
그럼 바로 소송 걸리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다 핀 담배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한숨을 깊게 내신 후 머리를 긁적거렸다.
“...시발, 집이나 가야지. 어플은 지워 버리던가 해야지. 이게 무슨 지랄이야.”
집에 가서 어플을 지원 버리겠다는 맹세를 하며 나는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걸어갈 만한 거리이지만, 술에 취하기도 했고 몸도 몹시 피곤하기에 돈이 아깝지만 택시를 탔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기분은 역대급으로 매우 좆같았다.
***
똥개가 똥을 끊는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는가?
이튿날 나는 어플을 지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우려고 했지만 간간이 울리는 어플알림에 차자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매칭된 프로필은 없었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프로필들이 내게 신청한 알림만 울린 것이다.
주말이 되었다.
나는 도시 동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채진아였다. 채진아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일찍 왔네?”
“...뭐 어쩌다 보니, 너는 오늘도 레깅스네?”
채진아는 저번과 똑같이 후드티에 레깅스였다.
후드 티는 같은 옷이였고, 레깅스는 저번과 같은 디자인에 색만 검은색이었다.
“편하잖아. 그리고 나 방금 퇴근하고 온 거라 갈아입을 시간도 없고. 그런데 왜 커피가 두 개야? 누구랑 있었어?”
“아니, 네 거야. 어차피 아메리카노 먹을 것 같아서 미리 시켜놨어.”
“센스있네. 어떻게 알았어? 나 아아 밖에 안 먹는데?”
“뭐 헬스 트레이너니까, 카페에서 음료는 안 마실 거 같고 아메리카노 먹겠지~ 싶어서.”
“아, 오~ 천재야. 오~ 한정진. 다시 봤어. ”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는 채진아. 나는 멋쩍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내 앞 빈 의자을 가리키며 채진아 보고 앉으라며 제스처를 취했다.
우리는 남들이 느끼기엔 별 시답지 않은 대화하며 낄낄거리며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플 이야기가 나왔다.
“혹시 요즘에도 어플해?”
“소개팅어플? 너랑 내가 만난?”
“응.”
“아니, 깔려는 있는데, 알람을 꺼놨어. 왜 너는 아직 하고 있어?”
“나? 가끔 하지.”
순간 안 한다고 말하려다, 차마 그녀에게는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그냥 사실을 말했다.
내 말을 듣은 채진아는 팔짱을 끼고, 도끼눈을 뜨며 쏘듯이 말했다.
“오? 그래서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났어?”
“...뭔가 내가 바람피우는 것 같다. 우리 사귀는 사이였어?”
“히히, 알았어. 그만 놀릴게.”
“...내가 너 만나기 전에 여자 한 명을 어플로 만났거든?”
나는 채진아에게 서혜진과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어떻게 만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가 남자랑 동거한다는 사실을 추적 끝에 알아챈 일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걔 동거남 뭐라고 저장해놨는데?”
“이름으로 저장해놨는데,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고 남자 이름 세글자에 마지막에 하트 붙어 있었어.”
“와 그렇다고 집까지 따라갔어? 스토킹으로 신고 당하면 어쩌려고? 그리고 왜 따라간 거야? 그냥 안보면 되잖아.”
“당연히 숨어서 지켜봤지. 흠… 따라갔다니 그냥 바로 앞이었는데… 그냥 내가 오해한 건지도 모르잖아. ”
“와… 숨어서 보는 것도 이상해 보여. 그런데 레전드긴 하다. 남친이랑 동거하는데 어플로 남자만난 거야? 그것도 한정진이랑?”
“그것도 한정진이랑? 아니 내가 뭐 어때서, 나 정도면 괜찮지.”
“어이구, 우리 정진이 삐졌어요?”
“곧 서른인데 애 취급하지 마. 그리고 내가 생일 너보다 삼 개월 빨라.”
“어휴 어휴 진짜 삐졌네. 누나가 뽀뽀해 줄까?”
“...헛소리 그만하자.”
뽀뽀해준다는 말에 순간 혹했지만, 어차피 여기서 해줄 리는 만무하기에 정신을 차려 거절했다.
“그런데. 너? 어플 무슨 목적으로 하는 거야?”
“목적?”
목적이라.
“응, 무슨 목적이 있어서 소개팅 어플 계속하는 거잖아. 연애든 뭐든.”
“...흐음. 목적이라.”
나는 채진아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