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45. 삼면초가
'이거 큰일났다.’
꼬일대로 꼬여버렸다. 왜, 하필, 지금 당장 민서와 윤아가 이곳에 있는 것일까? 머릿속에서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래. 생각해보면 탈출구는 언제나 있었다. 꼬인 실도 침착하게 잘 보고 엉킨 부분에 힘을 주면 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마치 높은 빌딩 사이에서 줄넘기 줄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어디로 발을 딛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먼저 어떤 말을 해야하지? 어떤 말을 하면 안되지?
나는 나를 노려보는 6개의 눈을 겨우겨우 견디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말하는데, 누나 아이라는건 당연히 누나 남편 아기 말하는거야 무슨 생각을 한거야? 그리고 얘들아 인사해, 예전에 우리 부모님 마트에서 일했던 지윤누나야. 연우야, 넌 기억하려나?”
“뭐... 뭔..? 아, 설마... 지윤언니?”
“뭐야... 연우니? 언제 그렇게 컸데? 너무 이쁘게 커서 몰라봤네?”
“......”
이제 3대 1. 민아는 내 눈치를 보며 지윤누나와 연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너희는 무슨 일이야? 그것도 둘이서 여기까지 올 일이 있었어?”
“우리도... 근처에 놀러온거에요...”
나는 민아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우연히 우리가 마주칠 확률은 0에 가까웠으니...
‘나 몰래 숨겨둔 무언가가 있다는거겠지. 위치추적기라던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지금 상황을 생각하고는 겨우 몸을 추스렸다.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오빠, 지윤 언니가 아이를 가져야한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지윤언니... 무슨일 일어요?”
연우는 여전히 미소지은채였지만 말투는 날카롭게 나를 찌르며 다가왔다. 나는 외줄타기를 하면서 겨우 몸을 비틀어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했다.
“누나의 개인적인 일인데... 말해도 되나?”
내가 누나의 눈치를 보자, 누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진실과 거짓을 반 섞어서 해명한다.
“요즘 누나와 누나 남편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이야기 한거야. 아이를 가지려고 해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뭐야... 그게 해결책이 맞아?”
연우는 머리를 기울이면서 물음표를 띄웠지만 겨우 납득하는 듯 싶었다. 그 뒤로는 지윤 누나와 연우의 서로 근황 묻기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민아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민아야... 요즘 많이 힘들지? 나중에 한번 따로 볼까?”
“...좋아요...”
민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고, 나는 다시 깊이 생각에 빠졌다.
민아와 연우가 같이 왔다는 것은 우리 셋의 관계를 민아와 연우 둘 다 눈치를 챘다는 것이었다.
내가 양다리를 ―물론 양다리 정도가 아니긴 하지만― 걸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꽤 치명적이지만, 연우는 우리 사이가 근친이라는 약점이 있고, 민아는 자신이 스토커라는 약점이 있다.
물론 지금은 둘다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지만 작정하고 파고들면 둘의 약점은 언젠간 다시 그녀들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어찌됐든 제가 할말은 이것 뿐이에요. 잘 생각해봐요. 누나.”
“하지만...”
나는 단호한 눈빛을 보내며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눈치를 주었다. 눈치빠른 누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나도 더 생각해볼게.”
“네. 그래보고 다시 연락주세요. 누나.”
누나는 그렇게 더 이상 긴말 하지 않고 헤어졌다. 카페 앞 누나가 차를 주차해놓은곳 까지만 나와 연우 그리고 민아가 배웅해주었다.
“언니!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응, 연우야 너도 잘 있어. 또 보자,”
언제봐도 이런 갑작스런 만남에 어색하지 않게 서로 인사하는 여자들이 조금 무섭다고 생각되었다.
부우우웅-
.
.
.
누나의 승용차가 가고 떠난 뒤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오빠. 그래서 진짜는 무슨 일인거야?”
여동생이 그 침묵 사이에 대뜸 핵심을 찔러왔다. 나는 정곡을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척을 하며 대답했다.
“응? 말했잖아. 누나가 부부관계 때문에 나와 상담한거라고...”
하지만 연우는 내 말을 전혀 안믿는 듯이 대뜸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웃겨. 그런 얘기를 왜 오빠랑 얘기해? 게다가 그렇게 애정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실인걸.”
연우는 눈을 흘기며 조잘거렸다. 연우는 누나와 나의 관계를 확신하면서 말한다.
“흥. 지윤언니와 친한거 같깄는 했는데, 언제 또 그렇게 그런 관계까지 간거야?”
연우가 그렇게 까지 말하니, 나는 더 이상 발뺌하기 힘들어서 사실대로 실토할 수 밖에 없었다.
“5년전. 여름에.”
“그쯤이면... 언니 결혼할때랑 얼마 차이가 안나는데?!”
연우는 경악하며 소리쳤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쯤에 지윤 누나도 지금 남편분이랑 사귀기 시작한거니까. 걱정마 정리는 잘 했어.”
“잘 했기는 개뿔. 지금 무슨 일 있는게 분명한데...”
“작가님...”
연우는 의외로 촉이 예리했다. 하지만 ‘그 사실’까지는 말 할 수 없다.
“나는 정리 했고, 칼같이 거절했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마 연우야. 그나저나. 너희들 여기까지는 왜 쫒아온거야? 날 걱정한건 아닌거같고.”
“흥. 오빠는...”
“작가님은...”
두 여자가 나를 보며 동시에 소리쳤다.
“누가 더 먼저야?” “누굴 더 사랑하시나요?”
나는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두 여자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무..무슨 소리니 얘들아?”
내가 당황하면서 얘기하자 연우가 앞으로 나와 질문했다.
“다 알고 왔어. 민아한테는 최고로 사랑한다고 했다며? 난 오빠에게 뭐야?”
“그야... 사랑하는 여동생이지?”
“최고로?”
“여동생 중에서는?”
그러자 눈초리를 날리는 연우를 뒤로 밀어내고 민아가 말했다.
“저만 사랑한다면서요! 거짓말쟁이...!”
“아니... 그야 그땐 그랬지.”
“지금은... 안그런다는 거에요?”
“그건 아니고...”
퍽!
민아의 주먹이 내 복부로 날라왔다. 나는 갑작스레 날라온 주먹에 명치를 맞고는 반쯤 쓰러졌다. 민아는 심연과 맞닿은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작가님은... 거짓말쟁이에요....”
연우도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빠는 쓰레기야. 분리수거도 안되는..."
나는 처절하게 단언했다.
“아.. 아니 증명할 수 있어... 한번만... 한번만 기회를 줘...”
“어떻게 증명 할건데요...?”
“오빠가 어떻게 할건데. 흥.”
나를 전혀 믿지 않는 두 여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밖에 남지 않았다.
“세...섹스로?”
나는 여러모로 몰려있었다. 내가 증명할 수 있는건, 자지로 두 여자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뿐. 둘 다 사랑하는 내 동생들이다―하나는 친동생은 아니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더욱더 싸늘한 시선들이 나를 향한다.
그 표정을 보고 나는 포기했다. 두 여자는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고, 얼마 안가 나를 찢어 죽일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 항상 맞지는 않았다.
두 여자애는 서로 부끄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오...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한번 만 뭘 할지 봐줄 수는 있어! 흥! 만족 못시키면 바로 엄마 아빠한테 날 덥쳤다고 꼬질러버릴꺼니까 그런줄 알라고!"
라고 연우가 말하며 재빨리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고,
민아는 더욱더 심연의 기운을 풍기면서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작가님은요... 섹스밖에 모르죠..."
꿀꺽.
"하지만... 전 그런 작가님이... 좋아요♥ 알아요? 저에게는 작가님 밖에 없다는 걸..."
"으응. 알지?"
"지금은 한번만... 단 한번만 봐드리는거에요. 연우 언니를 봐서요... "
"그...그래?"
"연우언니와는...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요... 친동생과는 결혼같은건 못할거니까... 어차피 결혼은 저와 할거죠? 그렇죠?"
나는 민아의 물음에 바로 답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 스치는 한 여자가 있었기에. '그녀', 규리의 얼굴이 순간 스쳐 나는 말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작가님?"
"으...으응...?"
"어. 차. 피. 결. 혼. 은. 저. 와. 할. 거. 죠?"
"으...으응..."
내 성의 없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민아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뭘라 할려던 찰나, 연우가 갑자기 소리쳤다.
"예약했어!"
"뭘?"
"어디쪽이죠?"
"어디 쪽이라니?"
내가 당황하며 묻자, 여동생과 민아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증명해야지!" "증명한다면서요..."
연우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번쩍이는 커다란 호텔이 있었다.
"1일 숙박으로 했으니까 각오해. 오빠."
"누가 더 사랑스러운지 증명해주세요. 작가님?"
둘은 이제 서로를 노려보며 말하고 있었다.
"오빠는 내꺼야. 알아? 함께한 시간이 다르다고!"
"작가님과 사랑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죠... 애초에 사랑에 친동생이 낄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흥, 우린 그런걸 초월했거든? 그렇지 오빠?"
나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새차게 끄덕였다.
"작가님...? 진정한 사랑의 섹스는 저와 나눈거죠?"
이 또한 역시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으니, 둘은 열불이 터져서 서로에게 소리쳤다.
"누가 먼저 작가님을 가게 하는지..."
"오빠가 누굴 더 사랑하는지!"
.
.
.
"승부야!"
그렇게 둘 사이에서 쥐어짜일 일만 남은 난, 불타고 있는 둘 사이에서 몰래 정력제를 꺼내 먹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