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빌런은 역시나 빌런이었다.
마침내 끝난 영업시간. 각자 청소하러 들어간 동안 나는 카운터에서 열쇠를 정리하고 있었다.
당연히 없어지면 안 되는 것들 이기에 아티팩트를 꼼꼼히 챙겨 정리한다.
아티팩트에 새겨진 번호에 맞춰 보관함에 하나하나 걸어 둔다.
“하나 비는데?”
혹시 어딘가에 흘리진 않았겠지? 카운터 안과 그 바닥도 꼼꼼히 훑어보았지만 여분의 열쇠는 나타나지 않았다.
비어 있는 열쇠는 여자 키 47번.
저번호 왜 낯이 익지?
많은 사람이 왔다가는 와중에 유독 번호 하나가 낯이 익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가 그 번호들을 하나하나 기억할까.
뭔가 생각이 날듯 말 듯 희미하게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기억.
그때 마침 내 의혹을 해결해주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왜? 이 씨발년아. 여기서 자라고 만들었다며? 그래서 쳐 잤는데 뭐가 불만이야?”
“잠깐 쉬고 가시라는 것이지 여기서 숙면을 취하시면 안 되죠!”
“씨발 년이 곱게 쳐 자는데 지랄이네. 뭘 그딴걸 꼬치꼬치 신경 써? 사내 새끼야?”
덜그럭- 텅-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이미 신경이 쓰여 죽겠는데 물건이 쓰러지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오자 참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탈의실을 지나 탕 내부였다.
“무슨 일이야. 스텔라?”
탕 내부에는 이곳저곳에 아직 정리를 다 마치지 못한 바구니와 의자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탕 한쪽에는 선배드 위에 누워 있는 알몸의 여자와 그 앞에서 아직도 말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스텔라가 있었다.
“사장님, 저 손님이 장사가 끝났다고 말해줬는데도 여기서 잠을 자고 있더라구요.”
“영업 끝났다고 제대로 이야기했죠?”
“네, 그랬는데도 무작정...”
“괜찮아요. 그럼 됐어요.”
“오, 네가 사장이었어? 얼굴은 곱상하게 생겨 가지고 제법이네.”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제 알몸을 훤히 드러내면서도 당당하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진다.
아니, 농이 아니라 저건 진심이 아닐까.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났다. 음료를 가지고 들어가려고 해서 입씨름을 했던 그 손님이 아닌가.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제가 음료를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씀 드리지 않았던가요?”
그래, 분명히 네년이 알겠다고 말하지 않았니?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년아?
복근에는 선명하게 그어진 11자 복근과 팔뚝에도 제법 붙은 건강미 가득한 여자.
용병 일을, 특히 힘쓰는 일하다보면 이런 체형으로 변하는 여자가 자주 있다고 들었지만 내가 본 용병이라곤 어머니 뿐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근육이 잡힌 여자의 몸은 예전 인터넷 짤로만 보던 것뿐이라 신기했다.
“이 새끼봐라. 사장이라더니 이렇게 혼자 남은 여자한테 꼬리치려고 이런 장사를 하나보네. 여자 가슴 처음 봐? 애새끼처럼 빨게 해 줄까?”
이런 타입을 어디서 봤더라. 대놓고 성희롱을 하는 것이 서슴지 않는 배려 없는 행동과 썰렁한 농담을 뱉으며 혼자 쳐 웃는 모습.
“어쭈, 진짜 빨고 싶나보네. 따먹어 줄까 애기야?”
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사내 새끼들은 그냥 누나~ 하면서 안기면 돼. 무슨 장사야 장사는. 때려치우고 누나 품에 안겨.”
포차에서 거하게 취하고 여기저기 시비트는 중년 꼰대의 모습이었다.
“여자 하나 잘 잡고 애기씨나 잔뜩 뿌리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잖아.”
이제 보니 선배드 옆에 놓인 작은 병 두 개. 아마 여기서 마신 모양이었다.
“손님, 제가 분명히 음료는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마시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아직는 내 이성을 잘 붙들고 있었다.
이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진상 손님을 몇 상대해 본 경험이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이야.
“왜, 씨발. 내가 멋대로 마시면 안 돼? 그리고 이거 음료수 아니야. 술이거든. 꼽냐?”
“손님, 음료나 술이나 둘 다 안 됩니다.”
“여기서도 우유도 팔고 음료수도 팔더만. 사가지고 들어오는 건 안 된다? 아하~ 이거 상술이구만?”
“손님, 음식점에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되듯이, 여기는 목욕과 음식을 둘 다 판매하는 곳입니다.”
“아하, 그러세요? 그럼 음식점에 음식을 가지고 가면 안 된다는 법이 있냐고. 엉?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냐?”
신이시여 저년의 싸대기를 한 대만 때리게 해주세요.
그녀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고 내 몸을 뒤로 밀쳐 낸다.
“사내 새끼답게 쪼잔하기는. 이러니까 사내 새끼는 그냥 여자 다리 밑에 안겨서 앙앙 울기나 하면 된다는 거야.”
뚝-
내 잘난 인내심에 결국 한계가 다가왔다. 눈앞에 있는 여자가 용병이든 뭐든 이젠 아무런 상관없었다.
“하여튼 용병 일이나 하는 계집새끼는 곱게 말을 해도 알아처먹지를 못 해요. 응? 그렇죠 손님새끼야?”
“무, 뭐? 뭐라 했냐?”
남자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처음 들었는지, 술에 취한 그녀가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떠 바라본다.
“아까부터 법 법 이지랄 하는데. 지금, 이러는 거 영업방해라는 죄로 벌금형이란다 씨발년아. 네가 말하는 그 잘나신 법에 위반되는 일이예요 무식한 용병새끼야.”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안 되지만 몸을 쓰는 거친 일하는 용병들이 무식하다는 이미지가 바로 이런 여자들 한 둘 때문에 생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없던 선입견이 생길 것 같았다.
“이 씨발놈이 누구 앞에서 욕을...”
“그럼 이 씨발년은 누구 앞에서 욕을 하고 지랄이세요?”
“이... 이 창놈 새끼가 뒤지고 싶냐?”
“뒤지고 싶은 새끼가 어디 있겠어요. 당연한걸 왜 물어보시죠 손님새끼씨? 생각 못 하시나요?”
그리고 이미 한 번 뒤진 몸인데요?
“이, 이 씨발...!”
그녀는 자기 분을 참지 못하고 본능처럼 등 뒤에 달고 다니던 칼을 뽑으려 했지만 로커안에 넣어 두었던 것을 뒤늦게 떠올린다.
“능지가 딸리니까 몸이 고생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자들이 용병을 하는 이유, 그것도 이런 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수준 낮은 용병들은 대부분 게을러서 검술을 제대로 연마하지 못했거나 마법에 소질도 없고 다른 방면으로도 노력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타고난 몸이 검술, 마법, 정령술 등등. 적어도 무엇 하나 정도는 그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지만 이렇게 도태되는 것은 달리 이유가 없었다.
“이 새끼가 계속...!”
내가 정곡을 찔렀는지 그녀는 화를 참지 못했다. 양손을 뻗어 내 가슴을 툭 밀치는 그녀.
그리고 그녀는 뒷걸음질을 쳐 뒤로 멀어져간다.
아닌데, 쟤는 가만히 있는데. 뭐지?
왜 쟤는 갑자기 저렇게 작아지는 거지?
나는 이 느낌을 어디선가 경험한적 있었다.
와 이거 정말 오랜만이네, 19년 만인가?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쿵-
“사, 사장님!!!!!!”
**
내가 눈을 뜬 것은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진 시간이었다.
“어, 일어났어요 사장님?”
“스텔라?”
“몸은 괜찮죠?”
“아, 네 괜찮아요. 고마워요 스텔라.”
아무래도 내가 일어날 때까지 간호해준 모양이었다.
잠깐, 그럼 그 년은 어떻게 되었지?
“그 무식한 용... 아니, 그 손님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 그분은 사장님이 날아가시는걸 보고 놀라서 술이 확 깬 모양이었어요.”
듣자 하니 자기도 화가 나서 나를 밀쳤는데 그렇게 날아갈줄은 몰랐다. 미안하다면서 제대로 사과하고 나갔다고 한다.
사과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내가 법을 운운해서 얌전해진 건가.
그나저나 나를 바라보는 스텔라의 시선이 왜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을까.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다가 물컹한 무언가를 덮썩 잡아버렸다.
“일어나자마자 이런 손길은 자극이 너무 쎈데요 사장님?”
그녀가 살포시 웃으며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다.
보드라운 감촉,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깨어나기까지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손에 잡히는 것은 그녀의 허벅지였던 건가.
나는 다급하게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안 해요 스텔라.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알아요. 장난이예요 장난. 당황한 사장님 모습 귀엽네요.”
“끄응... 찰리는 어떻게 되었어요? 퇴근했나요?”
“아, 소동이 있을 때 잠깐 내려왔다가 그 손님이 화를 내는 모습에 금방 돌아가서 일만 마치고 돌아갔어요.”
“스텔라는 퇴근하지 않고 왜 여기 있었어요. 고맙게.”
“괜찮아요. 시간도 얼마 안 지났는걸요.”
“그래도 약속한 근무시각은 이미 끝났잖아요?”
“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나랑 밥 한번 먹어요.”
뭐지 이거, 지금 나 꼬시는 건가?
이전 세계였다면 백프로 꼬시는 멘트였다.
솔직히 19년을 살았다곤 해도 내가 완전히 이 세계의 여자를 이해하기는 힘들어 그녀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먹을 수 없었다.
정말 밥을 같이 먹자는 것뿐인가?
그래도, 이 정도 배려를 받았으면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래요. 밥은 제가 살게요. 이 정도는 보답하게 해 줘요.”
"약속한거예요 사장님. 나중에 바쁘다고 빼기 없어요."
스텔라는 보기 드문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