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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가 죽었다구요?


나에겐 두 살 어린 여자 친구가 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군대를 다녀오니 벌써 스물 둘이었고, 복학해서 바로 내 눈길을 사로잡는 여자가 있어 몇 달의 빌드업 끝에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사귀기 시작한 지 2년. 나는 아직도 동정이다. 내 성 기능에 문제가 있냐고? 아니, 오히려 너무 팔팔한 것이 문제였다. 동양에서는 절대 나오지 못할 피지컬. 그것이 나를 동정으로 만들었다. 소설이나 야한 만화에서나 나오는 자박꼼? 그건 정말 소설이나 만화일 뿐. 현실은 달랐다. 너무 커도 불가능하다니... 190cm 98kg 의 떡대 넘치는 피지컬의 소유자인 나와 다르게 여자 친구는 153cm의 왜소한 몸. 그리고 이 격차는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데이트 코스의 마지막은 모텔이었다. 오늘만은 반드시. 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도 역시나. “으으, 아파... 역시 무리야... 입으로 해주면 안 돼?” 이쯤 되면 평생을 못 하는 것이 아닐까. 허탈한 마음에 터덜터덜 걷는다. 횡단보도 앞에서 카톡을 하며 신호를 기다린다. [집에 들어왔어. 나 이만 잘게 오빠♡] 끝에 잊지 않고 붙이는 하트까지. 그것만 하지 못했지 참 기특하기도 해라.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고개를 들어 신호를 확인한다. 횡단보도 건너편을 지나가는 여자 친구. 응? 방금 카톡 보냈잖아. 집이라며? 여자 친구 옆에는 같은 대학 후배. 내가 잘 알고 있는 후배였다. 평소 친해서 가끔 찜질방도 같이 가서 놀던 놈. 니가 왜 내 여자 친구랑 같이 있어? 순간 머리가 띵- 아찔하게 흔들린다. 지나가는 저년놈들에게 시선을 따라가다가 흔들리는 시야 속으로 분명하게 비친 초록 불. 멀리 가기 전에 잡아야 해. 횡단보도를 건너려 딱 두 발자국 앞으로 나간 순간. 빠앙--! ** 아, 나 그때 죽은 건가? 멍하니 내 죽기 직전을 회상하고 있다 보니 앞에선 저승사자가 갓을 벗고 갑자기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척 쓰고 나를 바라본다. “아... 자세히 보니 얼굴이 다른 것 같기도...” 그나저나 저 안경 안 쓴 얼굴... 어디서 봤는데. “같기도? 13호야. 죽고 싶냐?” “아... 아하하.” 어색하게 웃는 저승사자. 아, 생각났다. 저 얼굴. “너... 이 새끼, 날 친 트럭을 운전하던 그놈?!” 마지막 사고 직전, 커다란 트럭의 클랙션 소리에 돌아본 운전석에는 분명 저놈이 타고 있었다. “서프라이즈.” * “그러니까, 트럭으로 치기 전에 렌즈를 빼놔서 이름이랑 얼굴을 잘못 봤다고?” “네.” “그리고 진짜 김현우란 놈은 그 횡단보도에, 하필 얘 옆에 서 있었고, 네가 환각을 잘못 걸었다는 거지?” “네.” “와... 명계를 아주 뒤집어 놨구나 니가.” “하하, 감사합니다.” 어떻게 저런 태연한 얼굴로 저딴 말이 나오는 거지? 현실로 따지고 본다면 자기 아주 커다란 미스로 이슈가 되어 자기 회사를 말아먹게 생겼다는 뜻 아닌가? “그럼 저승사자의 미스니까 저는 다시 살아나나요?” 아무래도 진짜 신인 것 같으니까. 일단 존댓말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이 어이없는 상황에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억지로 화를 억눌러가며 천천히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도 신인데. 미스 정도는 해결해주겠지?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내 믿음을 아주 화려하게 깨부쉈다. “아, 미안. 나 신이란 거 구라. 아직 견습이야.” 이건 또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지? 그리고 또 하나 내 복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이어진다. “아, 이러면 나 진급 못 하는데 큰일 났네...” 사람의 목숨을 미스로 빼앗아 놓고 진급 걱정? “지금, 이 씨벌놈이 뭐라고 하는 건지 잘못들은 것 같은데 다시 말해 줄래요?” 신, 그러니까 견습 신이라는 놈이 저승사자를 바라본다. “야, 그러니까 내가 일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보라고 그랬지? 13호. 너 저승사자 되기 싫어? 클레임 걸리면 너나 나나 끝이야 끝.” 저기요, 그래서 나는요? 자칭 신이라 구라를 치던 견습생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시 나를 돌아보며 느끼한 윙크를 찡긋 건넨다. “미안 해, 앞으론 절대 이런 실수 안 할 테니까 봐주라.” “저기요 씨발놈씨. 앞으론 이런 실수라뇨. 나 뒤졌다며?” “아니, 너 죽으면 또 이리 올지도 모르잖아.” 오 제발 주여 저 신을 한대만 패게 해주세요. “미안해진짜. 그 대신 내 특권을 하나 써줄게. 다음 생에 특별한 특권을 쥐어 줄게. 어때?” “하아...” 이미 죽어 버린 몸, 내가 뭐라 한들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겠지. 나도 내가 놀라울 정도로 급격하게 침착해졌다. 되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걸까. 그래, 어차피 죽었다면 특권이라는 것을 받기라도 해야겠지. “그게 뭔데? 특권이란 거.” “뭐든지 네가 원하는 조건으로 태어나게 해 줄게. 그게 뭐든지 말이야.” “뭐든지라고?” “그래, 뭐든지. 금수저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초- 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최면 능력을 가지게 해주세요 같은 거.” 아무래도 내가 클레임을 걸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 마음을 어떻게든 돌리려는 것 같았다.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그나저나 뭐든지 라고? “아니면 이건 어때? 이 세상에서 너 혼자 레벨업을 한...” “그럼, 다음 생은 날 소추로 태어나게 해 줘.” “뭐?” 그의 말을 끊고 뱉은 말. 소음이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되묻는다. “소추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13호야. 사전좀 꺼내 봐라. 소추가 내가 알고 있는 것 말고 다른 뜻이 있나?” “아마 그거 맞는 거 같은데요?” “진심이냐?” 뭔가 화라도 난 것처럼 인상을 찌푸려가며 내게 되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정상적인 대물을 가지고 태어나는 바람에 내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중고등학생 시절엔 별명이 꼬X 왕꼬X 등등, 온갖 추잡스러운 별명들이 붙지 않았던가.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좋아하는 사람 하나 잡지 못해, 소추에게 애인을 빼앗기지 않았나. 이것은 나에겐 흉물이었다. “예, 진심 맞는데요.” 내 대답을 듣고 견습 신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진다. 다짜고짜 13호라 불리던 뺨을 가볍게 툭 때린다. “악! 뭐 하시는 겁니까?” “아파하는 걸 보니까 이거 꿈 아닌데.” “그래서, 됩니까?” “왜 굳이 소추가 되려고 하는 건데?” 왜냐고? 당연하잖아. “쓸데없이 커봤자 정말 쓸데없어요. 커봤자 괜히 불편하기만 하다는 걸 경험하고 왔거든요.” ** 미스로 잘못 오게 된 저 인간이 내 신경을 박박 긁어대고 있었다. 처음에 날 보고 미친놈이니 뭐니 할 때부터 솔직히 좋게 보고 있지 않았었는데 13호의 실수로 잘못 왔다는 말에 어떻게든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할 판이었다. 이 사실조차 굉장히 기분이 나빠져 있는 상태에서 건방진 인간에게 들려온 말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아, 그래. 물론 가능하지. 네가 바라는 대로 소추로 태어나게 해주는 것쯤이야 손쉽지.” 그 정도야 충분히 가능했다. 소추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날 태아에게 그를 넣어 주기만 하면 끝나는 일. 하지만 그의 건방진 모습이라거나 건방진 말들. 그것이 나를 꼴 받게 만들었다. 그래, 어차피 저 인간이 다시 여기로 돌아오려면 다시 죽어야만 올 수 있지 않은가. 네가 바라는 것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건방진 인간놈아. 환생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인간의 앞에서 그의 영혼이 들어갈 태아를 찾았다. 여기 있네. 아주 좋아. 소추? 절대 안 되지. 평민의 씨앗, 장래에는 23cm가 될 존재. 얼굴은 조금 잘생기게 태어나겠지만. 뭐, 그래도 좋아. 오히려 그게 더 고통받을 거다 인간놈아. 심지어 그가 태어날 세상은 남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세계가 아닌가. 속으로 큭큭 웃으며 쪼잔한 복수를 준비했다. “자, 그럼 눈을 감고 환생을 준비하자고. 넌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돼.” 눈앞에서 건방진 인간의 영혼이 천천히 사라져간다. “조만간에 또 보자고 건방진 인간아.” ** 내 나이 열아홉, 벌써 성인이 되어 버렸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는데도 이 세계가 어색하다. 그도 그럴게, 이전 기억을 다 기억한 채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여타 다른 아이들처럼 울지 않는 내가 이상해서 신전에 데려가 나를 검사할 정도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연기하며 살아왔다. 순수한 아이인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 세계를 체험해가며 직접 공부했다. 그리고 난 알 수 있었다. 이 세계는 정말 최악이라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신분이 정해진다. 성별이 결정지어지는 그 순간부터, 남자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성공의 한계는 정해져 있었다. 여자에게는 무궁무진한 미래가 펼쳐진 방면, 남자는 기회조차 없었다. 유일한 성공은 잘난 여자를 잡아 결혼하는 것뿐. 결혼이라도 하면 정말 다행이지. 남자에게는 성인식의 기회조차 없었다. 그 비용까지도 아까울 정도니까. 이 쓰레기 같은 세계에서 그나마 나는 축복 받은 몸으로 태어났다. 얼굴, 솔직히 말하면 평민으로 태어난 남자 중 나만한 외모를 본 적 없다. 내 주변의 친구. 남자는 남자끼리 어울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나에겐 여자 절친이 한 명 있었다. 귀족까지는 아니지만 잘 사는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솔직히 외모는 이쁘긴 해도 가슴이 납작해서 내 기준에선 탈락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진가는 외모보다 능력에 있었다. 귀족들이 다니는 아카데미에 들어갈 정도로 마법적 재능이 넘치는 아이. 빨간 양 갈래머리를 한 작은 여자아이는 내 앞에서 멈춰 서서 나를 꼭 껴안는다. “어떻게 편지 한 통 없어 리비드?” 리비드, 내 이름이다. 성도 없는 평민. “남자한테 편지 받았다고 소문이라도 나 봐. 너 쪽팔리잖아.” “에이, 그래도 편지 오면 좋지 왜. 난 별로 신경 안쓰는데.” “됐어, 그보다 부탁한 건?” “아, 으응. 준비됐지. 만드느랴 힘들었지만 발동은 완벽해.” “그래? 다행이다. 고마워 세실라.” 살짝 뺨을 붉히는 모습. 남자 같은 성격을 가진 모습에 같은 여자들에게 왕따라도 당하는 것은 아닌지 몰라. “그래서 아카데미 생활은? 친구는 생겼고?” “으응, 다, 당연하지.” 노골적으로 말을 더듬는 모습에 역시 그렇구나 싶었다. “에휴, 됐어. 뭐 그럴 줄 알았어. 무사히 졸업만 해.” “응, 그래야지... 그렇구나, 역시 리비드도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기억? 약속? 무슨 소리지? 내가 그녀와 무슨 약속을 했던가? “아아, 응. 그렇지.” 일단 여기선 알겠다고 하는 게 맞겠지? “뭐, 일단 그것보다 우선 집으로 가자, 우리 어머니가 너 기다리고 있었어.” “아, 정말? 그럼 뭐, 우리 집보다 리비드네 먼저 들러야겠다.” 배시시 웃는 모습.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정말로 여자 같은 여자. 네가 유일한 희망이다 세실라야... 그렇게 그녀와 도착한 우리 집은. 화르르륵- 커다란 장작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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