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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혼돈의날


문식은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젊은 매춘녀와의 정사가 떠올라서가 아니다. 그 자체로 잘못 됐다는 것은 이미 인정한 상태였다. 다만, 매춘녀에게 ‘아빠’라는 소리를 듣자 미치도록 흥분한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잘못을 상쇄하고자 민선에게 최대한 봉사하려 했지만 이미 둘의 성적취향은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동안에 두어 차례 위기가 왔었던 것은 진짜 권태기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문식은 인생 최대의 위기, 민선과의 관계에 지독한 권태와 마주하게 됐다. 문식은 오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며칠 전 민선과의 마지막 관계가 서로 민망하게 끝난 이후 문식은 되도록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딱히 할 건 없었다. 그렇다고 그 젊은 매춘부를 다시 찾지도 않았다. 그저 퇴직을 한 여느 가장처럼 쓸쓸하게 거리를 배회할 뿐. 문식은 오늘도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길거리를 떠돌았다. 민선의 몸으로 회귀한 이나는 축 쳐져있는 아빠가 안쓰럽긴 했지만, 그 때문인지 관계를 요구하지 않아 며칠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오늘도 슬그머니 일어나 몰래 밖으로 빠져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슬픔이 흘러나왔다. ‘휴... 아빠 옷 세탁소에나 맡기고 와야지. 매일 같은 옷이네. 엄마는 아무리 내가 됐다지만 신경도 안 쓰나.’ 이나는 문식의 옷장에서 손 때탄 외투 여러 벌을 챙겨 세탁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간만에 여유 있는 한낮이었다. 이전에 뒤바뀌었을 땐 들킬까봐 전전긍긍했고, 뒤바뀐 뒤에는 정근에게 범해질까 두려운 시간을 보냈었다. 고작 빨래를 맡기러 세탁소에 가는 게 전부인 외출이었지만 한낮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문득 행복이 별 게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감정도 잠시, 세탁소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젊고 예쁜 20대의 이나가 아니라 40대 엄마 문선의 모습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어머, 이나엄마 오랜만에 오셨네. 웬일이셔? 살림꾼이라 세탁소는 일 년에 한 번이나 맡길까 말까한 양반이?” 세탁소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니 엄마가 참 알뜰히도 살아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살림에 영 관심이 없어서 빨래를 어떻게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는데, 그 몫을 엄마가 다 떠안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잠시라도 자신의 몸을 빌려주어 젊음을 즐기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거 이나아빠 옷이에요. 깨끗하게 해줘요.” “어멈머 서운하네, 이나엄마. 내 실력 몰라? 이나아빠가 말 안 해? 얼마 전에도 이나아빠가 옷에 잔뜩 빨간 물을 들여와서 맡겼는데 내가 싹 지워줬잖아.” 얼마 전에 문식이 이곳을 다녀간 모양이었다. 순간 이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세탁소에 직접 옷을 맡겼다니. 살림을 잘 도와주는 아빠긴 해도 빨래나 다림질 같은 것은 전적으로 엄마 담당이었다. 아빠는 그저 평생을 엄마가 칼각을 잡아 다려준 와이셔츠를 입고 다녔던 게 다다. 근데 그런 아빠가 세탁소에 직접 옷을 맡기다니. 게다가 빨간 물이 들었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빨간 물...? 옷에? 아니 왜요?” “어머, 이나엄마 몰랐어? 겉에는 별로 안 묻어있어서 그냥 깨끗하게 해드리겠다고 하고 보냈는데, 가고 옷을 펼쳐보니까 안쪽에 온통 빨간 물이 들어있더라니까. 처음에 피인가 싶었는데, 피는 아니었고. 그래서 나는 뭐 화장품을 엎었나, 아님 다른 옷에서 물이 들었나 그렇게만 생각했지.” 세탁소 아주머니의 말을 들을수록 상황은 더욱 의아했다. 집에서 빨간색 색조 화장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집에 물감이 있을 일은 더더욱 없었다. 무엇 때문에 문식의 옷이 빨간색 범벅이 되었던 것인지, 이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 있네, 여기. 이게 범인이었구만. 이나엄마, 이거 봐. 안주머니에 이런 걸 넣고 다니시니까 옷이 빨갛게 되지. 자, 가져가.” 세탁소 아주머니가 아빠 문식의 자켓 속주머니에서 꺼내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빨간 가루약이 들어있는 봉투였다. 하지만 이나가 그 약의 정체를 알 리 없었다. 심지어 약이라는 것도 추측할 수 없었다. ‘이게 뭐지...?’ 일단 빨간 가루 약 봉투를 받아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분명 심상치 않은 물건임은 분명했다. 이나는 혹여 누가 볼까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문식의 서재로 들어가 빨간 가루약의 정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뭐야, 아무 것도 안 나오는데...어, 설마?!” 이나는 순간 엄마 문선이 아빠에게 차분해지는 약을 먹였다는 말을 떠올렸다. 때문에 빨간 가루약이 그것일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그러자 이내 약의 효험이 궁금해졌다. 아무리 정근과의 강간당하는 듯한 섹스가 괴로웠긴 했지만 분명 몸의 희열은 느꼈기에 며칠 동안 관계를 하지 않은 상태라 또 다시 보지가 근질거리고 있었던 이나였다. 때문에 그 약은 자신에게도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다. ‘많이는 좀 그렇고, 조금만 먹어볼까?’ 이나는 그 약이 민선이 구해온 차분해지는 약이라는 확신이 들자 거칠 것이 없었다. 바로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음... 약간 톡 쏘는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신기하네.” 자신이 생각했던 쓰디쓴 약 맛과는 다른 맛이 나자 이나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과감하게 티스푼 반 스푼 정도를 입에 털어 넣었다. “와, 이거 톡톡 쏘는데. 심지어 맛있어. 조금만 더 먹어볼까.” 이나는 거기서 멈췄어야했다. 하지만 강력한 흥분제의 오묘한 맛에 맛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이나는 끝내 빨간 가루약을 1회분 용량보다 두 배나 초과한 2회분 분량을 먹고야 말았다. 약장수가 분명 분량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이나는 이 약이 무슨 약인지 알 길이 없었으므로 이미 벌어진 상황,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이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불을 부여잡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땀방울은 이내 이나의 젖무덤으로 떨어졌다. 이토록 아주 작은 땀방울의 자극에도 이나의 몸은 더욱 뜨겁게 반응하고 있었다. * 정근은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댓바람부터 17층 남자 화장실 변기에 앉아 좆을 부여잡고 있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정근은 금세 흥분했고, 성기도 이내 크게 부풀었다. 그리고 기둥을 문지르며 상상 속 나래를 펼쳐가고 있었다. “으...김 대리...보지 맛있을까....” 그러나 이번 상상의 대상은 이나가 아니었다. 바로 김소현 대리였다. 며칠 전 맞은편 여자화장실에서 들려오던 김 대리의 신음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는 김대리의 가냘프고 새하얀 다리가 정근의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진짜 처녀라면...으읏...이나랑 했을 때 해보지 못한 걸...으읍..헉헉..해보고 싶은 걸.” 정근은 상상 속으로 김 대리를 유린했다. 이나도 숫처녀였지만 그땐 자신의 취향을 몰랐기에 사랑스럽고 예쁜 첫 관계를 맺었었다. 게다가 여느 숫처녀들처럼 처녀막이 뚫릴 때 피도 나오지 않아 첫 느낌이 덜 했던 것도 사실이다. “김 대리 뚫으면 피가...나오려나...읍...헉...” 이나에겐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이나 한 사람 뿐이고, 김 대리는 상상 속 욕망의 도구일 뿐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아니 사실 맞는 말이었다. 아직 김 대리와는 손끝하나도 스치지 않았다. 야동 속 여배우를 상상하며 딸을 치듯 김 대리는 정근에게 그런 도구에 불과할 뿐이니. “보지 구멍이 얼마나 작으면...읏...손가락도 안 들어가...씨발...흐읍..!” 정근은 며칠 전 화장실에서 신음하던 김 대리의 대사를 떠올리며 김 대리의 그곳을 상상했다. 가녀린 여자 손가락 한 마디도 들어가기 힘들 만큼 작은 보지구멍이라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상상조차 어려웠다. “하...진짜 확인 해봐..? 으읍...헉헉..헉헉..김 대리...헉헉헉!” 마침내 정근은 김 대리의 보지를 상상하며 욕망을 분출했다. 실사가 아닌 게 조금 아쉽긴 해도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렇다고 김 대리와 바람을 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상상은 상상으로만 즐길 것이니 문제 될 것 없다. 오늘 밤 다시 이나의 구멍을 탐험할 생각에 김 대리의 생각은 어느덧 쉽게 잊혀졌다. “남 과장님, 어디 다녀오세요?” 재무팀 박 대리였다. 자위를 끝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정근의 자리에는 박 대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새초롬한 김 대리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 왜? 무슨 일 있어?” 사실 정근은 박 대리가 여전히 탐탁지 않았다. 분명 자신과 비밀 연애할 때부터 이나를 향한 박 대리의 뜨거운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결혼해서 이나는 자신의 것이 됐지만 그럼에도 젊고 다부진 체격의 박 대리는 왠지 경계의 대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본부 워크숍 가잖아요. 그래서 일단 부서별 예산에 싸인 하셔야 하는데, 기획팀 싸인이 안되어 있어서요. 과장님이 서명하셔야 경영기획본부장님께 결재 올릴 수 있어서...” “아, 그랬지. 결재해서 올린다는 게 그만. 지금 바로 전자서명 올릴게. 근데 그런 건, 전화로 하지 뭘 굳이...” 정근은 끝까지 박 대리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 과장님 자리 전화했는데 안 받으셔서...저도 위에서 계속 쪼셔서요. 죄송합니다.” 박 대리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떠났다. ‘뭐야, 저기 분위기 왜 저래?’ 이 모든 상황을 뒤에서 다 듣고 있던 김소현 대리는 약간 의문이 들었다. 젠틀하고 매너 좋고 후배들에게 후하기로 유명한 남 과장이 왜 유독 박 대리에게 날 선 분위기로 얘기하는지. ‘그러고 보니...’ 소현은 과거의 일을 더듬어봤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박 대리는 팀이 달랐음에도 기획팀 출입이 잦았다. 질문은 분명 남 과장에게 했지만 시선은 이나에게로 향해있었다. 그리고 남 과장은 그럴 때마다 묘하게 차가운 말투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오호, 재밌는데? 뭐야, 박 대리랑 주 주임이랑 무슨 사이였나? 그렇다면 난 더 땡큐고.’ 소현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 후면 본부별 워크숍을 떠난다. 경영기획본부 산하에는 기획팀과 재무팀이 있다. 때문에 그때가 기회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근이 질투하는 박 대리를 이용하면 정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슬슬 플랜B를 짜볼까나...’ 소현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소현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자리에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습 뒤에는 정근의 시선이 그녀를 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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