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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위기일발


- 왜 이렇게 놀라세요? 남정근 과장님? 회사 건물 17층 남자 화장실 앞에서 마주선 정근과 김 대리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정근은 애써 김 대리의 눈을 피했고, 김 대리는 정근의 눈동자를 쫓느라 바빴다. 그렇게 잠시 대치상태의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김 대리였다. - 어, 아니. 당연히 놀라지. 여기 아무도 없는 층이고 게다가 남자 화장실 앞인데 김 대리가 서있으니. - 그러게요. 여기 아무도 없는 층인데, 남 과장님은 왜 화장실을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정근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김 대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기에 괜히 말실수를 했다가 이상하게 오해받거나 골치 아프게 엮여버릴까 걱정되어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 남 과장님, 화장실 안에 누구 있죠...? - 어, 어...? 누가 있냐니? 김 대리는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남정근 과장이 화장실 안에서 회사 사람 누군가와 밀회를 즐긴 것이라고. 분명 화장실에서 새어나오던 소리는 섹스를 하며 절정에 다다른 신음소리였다. - 누구에요? 설마...장영아 과장님은 아니죠...? 설마... 정근은 순간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해야만 했다. 김 대리가 묻는 말로 추측해 보건데 자신이 자위를 하는 소리를 누군가와 관계를 한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그렇다면 절정의 신음소리를 들은 것은 분명하다. 여기까지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혼자 딸딸이를 쳤다고 고백해야 하나? 정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무슨 소리야. 장 과장이라니. 장 과장은 여잔데 남자 화장실에 왜 있어? 그것도 나랑? 말도 안 되는 상상이네. - 어머, 그럼 남자랑 했어요????? 김 대리의 상상력은 인생이 고달플 정도로 풍부했다. 타짜의 아귀가 이 상황을 봤으면 혀를 내둘렀으리라. 정근은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김 대리가 조용히 이 상황을 덮고 넘길지, 얼른 수습해야했다. - 남자랑 하긴 뭘 해요. 김 대리님... 어...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잖아. 화장실 안에서 있던 일까지 내가 김 대리한테 설명해야할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정근은 최대한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목소리도 평소와 같이 침착하고 낮게 말했고, 김 대리의 눈도 피하지 않았다. 상사로서의 권위로 이 상황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 그죠. 과장님 말이 맞네요. 저한테 설명하실 필요는 없죠. 그럼 당사자가 말씀하시기 싫다하니 회사 사람들한테 물어봐야겠네요. 다들 17층 남자 화장실을 가본 적 있는지, 혹시 이상한 소리 들은 적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김 대리가 판단하기로 정근이 대답하는 자세나 말투로 보아 바람을 피운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절정에 달하며 내는 신음소리였는데. 김 대리는 정근이 혼자 자위를 했다고 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 주이나 주임, 재택근무 한다고 하고선 매일 17층 남자화장실로 출근하나 봐요? 과장님이랑 하려고? 맞죠? 이거 주 주임이나 과장님이나 근무태만 아니에요? 김 대리는 정근에게 쏘아붙이자마자 재빠르게 정근을 지나쳐 남자 화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 주 주임!! 나와!! 지금 뭐하는 거지? 불경스럽게 말이야. 어? 신성한 회사에서! 정근은 김 대리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결론지었다. 혼자 딸딸이 친 게 가장 편안한 상황이 맞구나. 어차피 다들 성인이니 솔직히 말하고 이 상황을 끝내리라 결심했다. - 김 대리, 주이나 주임님이 왜 거기서 나오겠어요. 헛다리 제대로 짚었어.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김 대리는 그제야 눈치를 챈 듯하다. 그리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시선이 정근의 몸 중앙으로 향했다. 정근은 김 대리의 시선에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 그럼...? 어머, 과장님... 정근은 애써 시선을 피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 대충 안 것 같으니까 이제 이 얘기는 덮는 걸로. 오케이? 신체 건강한 성인이라 이해하지? 자자, 얼른 타. 내가 오늘 밥 살게. 무슨 뜻인지 알지? 김 대리는 똑똑하니까. 김 대리는 정근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듣는 정근의 칭찬에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 아침운동을 간다는 핑계로 사위 정근과 함께 오전 일찍부터 집을 나선 문식은 또 다시 어디론가 향했다. 이번에도 약장수를 만나러 가는 것인지 아침부터 ATM기에 들러 현금을 꽤 많이 뽑아 얼른 지갑에 챙겨 넣었다. 문식은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욕망을 배출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효과가 열흘이나 지속된다는 검은 알약을 먹은 후였기에 매일이 벌떡 선 상태로 괴로워해야만 했다. 빨간 가루약으로 민선과 뜨겁게 즐기려 했지만 그마저도 딸 이나의 방해로 물거품이 되었다. 지금 남은 빨간 가루약은 4회 분량, 아직 충분하다. 그렇다면 문식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것도 빨간 가루약을 품은 채 말이다. 문식이 주위 눈치를 보듯 두리번거리며 들어선 곳은 다름 아닌 낡은 DVD방이었다. 그곳은 비디오방이라고 칭해도 어색함이 없을 만큼 예스럽고 퇴폐적인 외관을 하고 있었다. 간판은 흐릿해져 있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군데군데 깨져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태였다. - 아까 전화하신 분? 방 키는 여기 가져가시고. 예약할인가로 30분에 10만원. 선불. 지하 DVD방에 들어서자 늙수그레한 남자하나가 문식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열쇠를 건넸다. 그리고 돈 통을 앞에 흔들어 보이며 고개를 까딱였다. - 여, 여기. 20만원. - 한 시간? 가능하셔? 30분 걸어놓고, 10분 안에 나오면 2만 원 정도는 돌려드리는데. 이렇게 처음부터 시간 많이 잡으면 환불 없수다. 문식은 늙수그레한 주인장의 퉁명스런 말투에 대꾸도 하지 않고 16번이라 쓰인 방 열쇠를 집어 들었다. - 아, 콜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얼마요? 문식의 질문에 주인장은 눈을 위로 치켜뜨며 문식을 잠시 바라보다 문 옆 냉장고를 향해 턱을 들어 보이더니 한 캔 그냥 가져가서 마시라며 선심 쓰듯 말했다. 문식은 어쩐지 떨리는 손으로 500ml 콜라 패트 병을 꺼내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 지금이 9시 30분이니까, 10시 30분까지. 시간 지키쇼. 연장...아, 연장은 어차피 못하겠지만 만약 할 거면 중간에 다시 계산하고 해야 하고. 뭐, 만에 하나. 참고하시라고. 그럼 들어가 보셔. 문식은 떨리는 마음으로 16번방을 향해 걸어갔다. 복도는 어둡고 컴컴했다. 복도 양쪽으로 오래된 DVD들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제 기능을 하지는 못하는 듯 다 낡고 바래있었다. 16번방으로 가기 전, 문식은 뒤를 돌아 주인장의 동태를 살폈다. 늙수그레한 주인장은 많이 피곤했던 듯 카운터에 앉아 그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문식은 그 틈을 타 주머니에서 콜라를 꺼내들고 조심스레 뚜껑을 따서 주머니에 품고 있던 빨간 가루약 1회분을 재빨리 털어 넣고 다시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16번방을 향해 조심스레 걸어갔다. 16번방은 복도 맨 끝에 위치해있었다. 쾌쾌한 통로를 지나 복도 끝으로 향하던 중 8번 방 즈음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하아아아앙!! 하악] 그 소리에 문식이 잠시 발길을 멈췄다. 잠시 주춤하던 문식은 다시 16번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16번방 문 앞에선 문식. 자물쇠 구멍에 방금 전 카운터에서 받았던 열쇠를 천천히 밀어 넣어본다. 딸깍. 문식이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 어서오세요...... 마침내 방 안에 들어서자, 문식의 딸뻘 정도 되어 보이는 20대 중반의 아가씨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문식을 맞이했다. * 김 대리를 비롯해 다른 직원들 몇몇과 함께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정근은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책상 의자에 털썩 기대앉았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도중 몇몇 직원들을 만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김 대리와 단 둘이 어색한 점심시간을 보낼 뻔 했다. ‘하... 그냥 어찌저찌 상황은 넘겼는데, 앞으로 김 대리 얼굴을 어떻게 보나. 생각할수록 쪽팔려 미치겠네.’ 담담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던 정근이지만 회사 후배에게 자위하는 것을 걸리다니. 그것도 같은 팀 여자 후배에게, 게다가 정근 부부에 대해 온갖 루머를 퍼트리고 다니는 입 싼 김 대리에게 걸리다니. 이제 회사 생활은 다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설마, 김 대리가 이나에게 말하는 건 아니겠지?’ 무엇보다 걱정됐던 것은 김 대리가 아내에게 자신이 회사 화장실에서 자위하는 사실을 말하진 않을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김 대리라면 충분히 오해하게끔 이상한 뉘앙스로 말을 전달할 것이 뻔했다. - 남 과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셔요~? 호호호호. 김 대리는 쌍년이 분명하다. 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타나서 말을 걸다니. 분명히 양반은 못될 년이다. - 어? 어. 점심 먹고 났더니 좀 나른해서. 하하... - 나른하실 만도 하다. 이해해요. 남 과장님은 신체 건강한 성인이니까! 똑똑한 제가 다 이해해 드릴게용~ 정근은 할 수만 있다면 김 대리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었다. 저렇게 얄미울 수가. 게다가 말끝에 한쪽 눈을 찡끗 감아 윙크를 날리더니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는 김 대리의 뒷모습은 재수 없음의 표본 그 자체였다. 김 대리의 본마음은 정근이 생각한 것과 달랐다. 약 올리는 것이 아니라 꼬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근의 눈에 김 대리가 들어올 리 없다는 것을 김 대리만 모르고 있었다. 정근의 약점을 잡았으니, 게다가 혼자 회사 화장실에서 자위를 할 정도로 부부관계가 소원하다 생각했기에 김 대리는 지금 자기가 살살 잘 꼬시기만 하면 정근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 과장님, 점심 둘이 못 먹었으니까 저녁에 퇴근하고 맥주 한 잔 사주실래요? 원래 점심 먹으면서 하려고 했던 얘기들을 못했잖아요. 호호. 약점이 잡혀도 단단히 잡혔구나. 정근은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단 칼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김 대리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이나의 귀에 무슨 말이 어떻게 흘러들어갈지 몰라 걱정이 앞섰다. 그렇다고 김 대리와 퇴근 후 술을 마시자니, 그것도 이나를 두고 안 될 말이었다. - 어...술은...좀... - 네? 안 돼요? 진짜? 에이~ 이따 퇴근하기 전까지 다시 생각하고 말씀해 주세용~ 호호. 김 대리의 눈빛은 맑은 눈의 광인 그 자체였다. - 자기야, 점심 맛있게 먹었어? 자기는 점심 뭐 먹었어? 나는 오늘 남 과장님이랑 부찌 먹었어. 부찌~ 부찌 어감이 좀 그런가? 호호호 부.대.찌.개! 자기 무슨 상상하는 거야. 호호호호. - 왜 그러세요, 또. 무섭게. 그리고 부찌가 뭐요. 부찌가 뭐가 이상해요? - 그...부..라..ㄹ 아니, 아니다. 자기는 아직 애기라 이런 말 하면 안 되지~ 미안. 나중에 크면 말해줄게. 그건 그렇고 자기야, 나 오늘 저녁 약속 있어서 자기랑 퇴근 같이 못해. 미안~ - 네? 이 또, 뭔. 언제 저랑 같이 퇴근하신 적 있어요, 김 대리님이? 원래 이상하셨지만 오늘따라 더 이상하시네. 이제 말시키지 마세요. 저 기획안 퇴근 전까지 해야해요. 정근은 뒤에서 떠들어대는 김 대리의 목소리가 어쩐지 협박처럼 느껴졌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 것일까. 정근은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한편, 이나는 재택근무를 마치고 정근이 돌아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일주일 만에 다시 안기는 날이다. 이나는 밤새도록 정근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한참이나 정성껏 몸을 씻었다. 부드러운 샤워볼로 거품을 내어 젖가슴을 문질러 내리자 이내 조개가 움찔거리며 뜨거운 물을 토해냈다. 이나의 뜨거워진 아랫도리는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흘러내리자 더없이 촉촉해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흥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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